모든 것을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 역시 누군가의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피해의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잔인하도록 처절하게 살기 위해 버텨야만 하는 존재들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저 살아있다는 생존본능만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삶은 그저 투쟁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지요.

시크한 이미숙의 악녀 본능

1. 사랑한다면 그들처럼은 ...

'은조야'라는 마법 같은 주문도 겉으로는 이겨낼 만큼 은조는 조금은 더 강해져 있었습니다. 자동 반사적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든 건 그녀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리움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독한 이야기를 퍼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그리움은 더욱 자신을 비루하게만 만들 뿐이지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딸로서 다가오지 않는 은조에게 이제 나가도 된다는 말을 하는 대성. 그런 대성에게 맞서서 나가겠다는 은조. 그런 그들 사이에서 과도한 몸짓으로 쓰러지는 엄마 강숙으로 인해 그들의 무모한 감정 대립은 막을 내립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자꾸 엇나가려는 딸 은조가 못마땅한 엄마 강숙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일을 저질러 버릴 딸이 걱정되어 쇼를 합니다. 제발 눈치껏 행동하라는 강숙에게 가족의 사랑이나 정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만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을 뿐 사랑은 아닙니다.

철저하게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효선은 사랑에 굶주려 사랑만을 갈구하며 살아갑니다. 그 어디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계모에게서 찾았다고 어렸을 때는 착각했었습니다. 그게 사랑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뱀보다 차갑고 냉혹한 엄마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하며 공허함으로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차라리 드러나게 자신을 싫어하는 은조가 자신을 버티게 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입니다. 그것도 증오인지 사랑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말이지요. 효선의 부족한 사랑도 은조의 허한 사랑만큼이나 크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랑의 저울추는 균등합니다.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돌아온 집에는 거짓말처럼 과거와 같은 세상이 열려있습니다.

진정 사랑하는 남자 기훈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 앞에 돌아오고 그렇게 효선은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훈이 여전히 은조를 좋아하고 있음을 엿보기 전에는 말이죠. 그렇게 어긋나버린 사랑마저 구걸해서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얻고 싶은 것이 효선의 마음입니다. 그만큼 기훈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가치이자 사랑입니다.

어린 시절 삶 자체가 의미 없었던 소년 정우는 성장해 자신에게 밥을 해준 유일한 여인 은조를 찾아옵니다. 그녀가 아무리 자신을 모른척하고 존재감 없이 대해도 그녀 곁에 있음이 행복할 뿐입니다. 그저 그림자처럼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정우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사랑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기훈은 대성 참도가를 떠난 지 8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순수한 의미가 아닌 아버지를 위해 참도가를 인수하기 위함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은조가 가슴을 저미게 만듭니다. 오해가 은조의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가둬버렸음을 알면서도 쉽게 풀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그는 아쉽기만 합니다.

그렇게 잊지 못하고 잊을 수 없었던 '은조'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불러보는 이름은 여전히 그녀에게도 자신에게도 마법과도 같은 단어였습니다. 자신과 너무 닮아 슬프고 아프기만 한 은조, 그래서 사랑하고 싶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그녀가 그립고 그리워서 아프기만 합니다.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대성은 모든 것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칠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딸 은조가 항상 마음 한쪽을 아프게 하지만 늦둥이도 생기고 참도가도 더욱 커가며 삶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저 은조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2. 사랑은 사치인가 생존인가?

외롭고 사랑이 고픈 건 강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떠돌듯이 살아가야만 했던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은조를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사는 것 자체가 위협인 상황에서 쓰레기통에서 주어 먹인 상한 음식으로 사경을 헤매 이던 딸 은조를 바라보며 그녀는 괴물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남자라도 마다하지 않고 떠돌던 그녀가 마침내 최고의 안식처를 찾게 됩니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남자 대성을 만난 건 그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자 행운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잡고 싶은 기회를 잡고 나서도 그녀의 허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대성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강숙에게 그런 삶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아닌 삶을 위해 선택하는 남자들에게서 안주하기 힘든 건 당연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자신과 딸의 생존을 위해 가식적인 사랑을 남발하고 구걸하는 그녀에게 사랑은 그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사랑이 그녀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이자 단 하나의 무기일 뿐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그녀를 만들어 놓은 그 지독한 습관은 세포 하나하나에 전달되어 민감하게 상황에 대처하며 사랑이라는 허울로 자신을 보호하기만 합니다.

살기 위해 언제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그녀는 죽을 정도의 쇼를 하지 않고는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명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자신의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은조는 그저 바보 같은 아이일 뿐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서 사랑에 저항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측은함이 드는 이유는 사랑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고 믿고 의지하는 순간 사랑 때문에 아파해야 하는 자신을 강숙은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죽음마저도 삶을 위해 이용하는 그녀에게 사랑은 어쩌면 사치를 넘어서는 허튼 바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은조의 모습은 여전히 여리고 청승맞기만 합니다. 사랑은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임을 그리고 그렇게 외치며 갈구하듯 찾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 생각하는 그녀에게 낯간지러운 사랑 타령은 우습기만 합니다.

우연히 문밖에서 모녀의 대화를 듣게 되는 대성. "뜯어먹을게 많아 좋다"는 이야기는 대성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그저 모진 그녀들의 삶이 가져다준 단순한 다툼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자신마저도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그런 강숙의 속마음을 알고 은조의 아픔을 깨닫는 계기가 될까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힘들어 하는 이들의 모습은 힘겨울 뿐입니다. 온 몸을 내던지며 사랑에 대해 거부하는 행위마저도 지독할 정도로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이 더욱 힘들게 합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하나의 도구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은 삶의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3. 이야기를 압도하는 그녀들의 연기 대결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인간 내면에 숨겨진 두 가지가 양립하며 다투듯이 나오는 감정의 선들은 <신데렐라 언니>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문근영의 지독할 정도로 진짜 같은 연기와 타고난 악녀 연기를 선보이는 이미숙은 드라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소드 연기(워터 프론트의 말론 브란도-국내에서는 김명민-의 모습으로 대중적인 단어로 각인된 메소드 연기는 극중 인물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연기 방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문근영의 모습은 여전히 전율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분노하듯 폭발하는 그녀의 연기는 소름이 돋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문근영과 함께 연기란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미숙은 6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였습니다. 천연덕스럽게 악녀 연기를 펼쳐 보이는 이미숙은 악이란 무엇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었지요. 자신을 위해 철저하게 타인을 이용하는 그녀는 타고난 악녀였습니다.

병원 입원실에서 보여준 그녀들의 연기는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임을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악녀인 이미숙과 악녀가 되어가는(?) 문근영의 연기 대결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둘이 나누는 연기를 통해 진정한 연기의 재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그녀들의 열연은 <신데렐라 언니>를 보는 의미였습니다.

무척이나 진부할 수 있는 내용을 그녀들은 미친 듯한 연기로 메워주고 있습니다. '결국... 뭐뭐 하게 되었다'는 식의 뻔한 공식에서 벗어나기 힘든 드라마에서 이미숙과 문근영이 보여주는 연기는 이야기를 압도한 채 극 전체를 살아 숨 쉬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시크한 이미숙의 연기에 감정이 복받쳐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문근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신데렐라 언니>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매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연기 대결을 선보인 그녀들로 인해 진정한 연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빨갛게 충혈 되고 온몸이 떨리며 우는 연기와 차갑고 냉혹하기만 한 눈빛 연기를 선보인 그녀들의 연기는 <신데렐라 언니>를 버릴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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