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19일 17대 대통령 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각 후보 진영의 미디어 관련 공약과 정책은 뚜렷한 쟁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발표한 공약집에도 언론 분야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고, 있다고 해도 원론적인 입장과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정책과 공약을 제대로 준비해 검증과 평가를 받겠다는 후보들은 없고, 발생하는 현안과 쟁점에 대해서만 그때그때 필요한 의견을 표명하거나 답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을 통해 보도된 간단한 의견과 원론적인 답변을 바탕으로 각 후보의 미디어 관련 철학과 정책을 유추할 수 밖에 없다.

<미디어스>는 지난 11월 각 대선 후보 선거 캠프에 방통융합 기구, IPTV 도입, TV수신료, 중간광고, 공영방송 민영화, 신문방송 겸영, 포털 규제, 미디어균형 발전 등 주요 미디어 정책과 현안 11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답변을 보내온 곳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유일했다.

다른 후보들은 '질문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답변하기 어렵다'(정동영 후보쪽) '미디어 관련 공약을 마련하지 못했다'(문국현 후보쪽) '대선 판도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 분야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고 미디어 정책의 경우 특히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민감하다'(이명박 후보쪽) 등의 이유로 답변하지 않았다.

지지율 5% 미만의 일부 후보 캠프에서는 "미디어 분야를 잘 모른다"면서 "우리가 어떻게 답변을 하면 좋겠느냐"는 상의를 해오기도 했다. 미디어 정책의 '부재', 미디어 정책에 대한 '무관심' 또는 '안일함'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현실에서 방송통신 융합, 미디어 공영성, 여론 다양성과 민주주의 등을 담보할 미디어 분야의 각종 정책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 삶의 질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 효율·경쟁·산업 논리를 우선으로 미디어 정책 방향이 설정되면 미디어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의 다원성과 다양성이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디어스>는 기존 언론 보도를 토대로 각 후보들이 TV토론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기자협회와 언론학회 주최의 미디어정책 토론회에서 각 후보 진영을 대표한 인사들이 발표한 내용 등을 정리해 대선 후보들의 미디어 관련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순서는 신문방송 겸영을 둘러싼 각 후보들의 입장이다.

보수 후보 "과도한 규제 없애야 " vs 진보·개혁 후보 "여론 독과점 심각"

신문과 방송의 겸영 문제는 사실 해묵은 논란 거리다. 한나라당과 주요 유력 신문사들은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신문법의 '신문방송 겸영 금지'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기차게 고수해 왔다.

▲ <표> 17대 대선 후보 '신문방송 겸영'에 대한 입장
이번 대선에서도 각 후보들의 입장은 '허용'과 '금지'로 양분되고 있다. 보수적 가치를 표방하는 대선 후보들은 대부분 '허용' 입장을 밝힌 반면, 진보 내지 개혁 세력을 자처하는 후보들의 경우 '금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제한적'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큰 방향은 '허용'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시대적 추세에 따라 과도한 규제를 없애는 것이 '선진 정책'이라는 논리다. 이인제 민주당 후보도 세계적인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겸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명박·이인제·이회창 후보, '큰 틀에서 허용 찬성'

이명박 후보는 지난달 21일 KBS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서 "신문과 방송, 통신 모든 것이 융합하는 시대에 이를 분리하는 것은 선진 정책이 아니다. 격차가 벌어지는 문제는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된다"며 신문방송 겸영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도적 보완과 관련해서는 "한 신문사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신문사가 몇개 합치면 참여할 수 있고 마이너 신문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면서 "당장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독점적 위치에 있는 신문이 바로 방송을 갖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후보의 미디어분야 자문위원인 박천일 숙대 교수도 지난달 21일 기자협회 주최 '대선미디어정책 토론회'에서 "신문의 지상파방송 겸영은 제외하되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에 대해서는 보도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을 신문이 겸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는 제한적인 겸영 허용을 검토하겠다면서도 겸영에 따른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반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여론 독과점 폐해를 이유로 '겸영 금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권영길·문국현 후보, '여론 독과점 심화…겸영 금지'

권 후보는 지난 11월 <미디어스>에 보낸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신문시장은 엄청난 자본력 투입을 통한 일부 신문의 여론독과점 현상이 엄청나며 기득권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편파왜곡 보도의 문제점과 이로 인한 사회갈등이 여전히 심각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게 될 경우, 언론재벌의 여론독점 현상은 더욱 심화돼 한국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 김동민 선대위 홍보미디어위원이 지난달 30일 언론학회와 스카이라이프가 주최한 '2007 대선 미디어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여론을 주도하는 신문사가 방송까지 겸영하면 여론 다양성이 위기를 맞게 된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명확하게 '허용'이나 '금지' 입장이 아닌 '시기상조'라는 답변으로 민감한 쟁점을 비켜나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언론학회와 스카이라이프가 주최한 '2007 대선 미디어정책 토론회'에서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은 "신문의 방송 겸영은 향후 그런 추세가 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다. 신문 독점이 철폐되고 다양성이 보장된 이후에 방송 겸영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반대' 입장으로 볼 수 있겠으나 양쪽 논리에 한발씩 걸치면서 향후 여론을 지켜보겠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정동영 후보, '시기상조…신문 독과점 해소한 뒤 허용'

신문방송 겸영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원칙적 금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독과점 신문이 방송시장까지 진출할 경우 여론 쏠림과 독점의 폐해가 심각해진다는 것이 이유다.

대선미디어연대가 발표한 '17대 대선 13대 미디어 개혁과제'에도 신문의 공공성 강화 및 여론다양성 보장을 위해 신문방송 겸영 금지 원칙이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선미디어연대는 "방송은 완전히 사유화된 독과점 신문과 달리 정부와 시민사회가 방송의 편성과 운영에 참여하는 공적 형태로 운영되면서 공공성을 보호하고 있다"며 "정부는 신문의 방송겸영 금지 원칙을 지켜 방송의 공공성을 보호해야 한다. 독과점 신문에 의한 신문 다양성의 위기가 방송으로 확대돼 민주적 여론형성을 위협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행 방송법 제8조 3항은 일간신문이나 뉴스통신을 경영하는 법인(특수관계자 포함)은 지상파 방송사업,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신문법 제15조 2항 역시 일간신문은 방송법에 의한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을 겸영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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