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단막극의 울림은 여전하다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10월 4일 방송)

2017 KBS 드라마 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KBS 드라마 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에서 7년 전 현금을 들고 도주한 절도범 정마담(라미란)은 공소시효 만료를 일주일 앞두고 있다. 지난 7년 세상에 없는 것처럼 살기 위해 자장면 하나 시켜먹는 것도 망설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돈다발을 들고 캐나다로 갈 수 있다. 정마담의 계획은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대문 앞에서 자신이 먹고 남긴 자장면을 먹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아동학대를 목격한 것이 화근 아닌 화근이었다.

세상에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 지난 7년의 목표였는데, 그것을 흔들리게 만든 존재가 은미(신린아)였다. 결국 정마담은 은미를 집 안으로,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누구와도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정마담이 어느 순간 한 아이의 인생을 자발적으로 책임지기로 결정했다. 일주일만 버티면 공소시효가 풀리는 현실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 종종 충돌했는데, 그 순간 정마담의 인간미가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정마담을 연기한 배우 라미란이 가장 잘 표현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2017 KBS 드라마 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정마담과 은미는 함께 찜질방을 가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관계로 발전했다. 어른과 아이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지명수배자가 공소시효를 일주일 남겨놓고 7년간의 계획이 틀어질 정도의 중대한 사건을 만난다는 시놉시스 자체가 신선했다. 거기에 믿고 보는 배우 라미란과 아역 배우 신린아까지. 밑그림도 탄탄하고 붓을 쥔 화가도 능력 있고. 완성도 높은 그림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어른이 자신의 신변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다시 자신의 우주 속으로 숨지 않았던 이유는, 어릴 적 동생이 아동학대로 인해 죽은 기억 때문이다. 정마담이 은미를 외면하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시키는 사연까지 추가되면서 드라마의 설득력은 높아졌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결국 정마담은 은미를 지키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공소시효 만료를 고작 하루 남겨놓은 채. 경찰에 체포된 순간 놀란 은미를 위해 정마담은 후회하는 기색 전혀 없이 은미에게 웃으면서 “알지? 비밀요원”이라고 안심시켰다.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죽으러 가는 길 아들에게 이건 게임이라고 알려준 귀도처럼. 이토록 멋있는 퇴장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2017 KBS 드라마 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무엇보다 아동학대 소재를 ‘이용’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따뜻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의 의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정마담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바꾼 사건은 모두 아동학대였다. 비록 과거엔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나쁜 어른의 학대로부터 아이를 지켜냈다.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은 좋은 어른의 존재를 조명하면서 조금이나마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겉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아동학대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정마담, 그리고 아동학대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왜곡하지 않고 고스란히 잘 전달해 준 드라마.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다.

이 주의 Worst: ‘이론상’으로만 완벽했던 프로그램 <이론상 완벽한 남자> (10월 2일 방송)

여성은 매칭이 끝날 때까지 남성의 외모와 스펙을 전혀 볼 수 없다. 남녀 매칭 과정은 오로지 취향, 사고방식, 오감 같은 비(非) 스펙요소로 구성된다. JTBC <이론상 완벽한 남자>(이하 <이완남>)는 외모․스펙 지상주의를 탈피한 신개념 매칭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이론상 완벽한 남자>

<이완남>은 의뢰인 임다연 씨의 취향을 고려한 ‘개를 좋아한다’, ‘주3회 이상 운동을 한다’,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 같은 조건으로 사전에 8명의 남성을 걸러냈다. 스튜디오에서도 외모나 스펙 대신 취향이나 사고방식을 묻는 질문으로 의뢰인을 이상형을 골라냈다.

직업, 나이, 학벌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 의뢰인과의 매칭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취향과 다른 거짓 선택을 할 경우, 감정 분석 시스템에 의해 적발된다. 굉장히 개념적이고 과학적인 방송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이완남>이 다큐멘터리였다면 굉장히 흥미로웠을 것이다. 외모, 스펙이 아닌 다른 조건만으로 매칭하고, 출연자의 감정도 그들의 입이 아닌 기계로 판단하는 신개념 매칭 방식에 관한 다큐멘터리. 예고편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완남>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이기 때문에 재밌어야 하고, 연애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거나 공감할 여지가 커야 한다. <이완남>은 둘 다 충족시키지 못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이론상 완벽한 남자>

질문 자체는 정말 그들의 말대로 과학적이다. 개그코드, 연인과의 거리감, 승부욕, 혼전동거 같은 구체적인 취향을 알아보기 위해 촘촘히 설계된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서 파생되는 스토리가 없었다. MC 신동엽, 한혜진, 김희철과 전문가 집단은 그저 의뢰인이 몇 명의 남성과 대답이 일치했는지, 현재까지 매칭률은 어느 정도인지에만 집중했다.

출연진의 감정도 그들의 입을 통해 표현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감정 분석 시스템에 의해 나온 결과만을 가지고 이 사람이 지금 즐거운지, 짜증이 나는지, 분노가 치미는지 판단했다. 출연자의 사고방식조차 그들의 말이 아닌 감정 분석 시스템에 의존해서 그들의 사고방식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검증했다.

사람보다 기계, 실제보다 이론을 중요시하는 프로그램. 어찌 보면 지금껏 없던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다는 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모든 것을 이론과 기계에 의존하는 연애 프로그램이라니, 어딘가 모순적이다.

과거 매칭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들이 몰입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줬다. 두 남자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여성이라든지,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는 출연자라든지. 물론 외모나 스펙만을 중시한다는 비판이 있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몰입할 여지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이론상 완벽한 남자>

<이완남>은 철저히 이론 전문가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매칭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거나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몰입도와 관심도는 비례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시청자들의 관심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출연자와 매칭률이 높은지는 시청자에게 크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출연자에 대한 관심도가 낮기 때문이다. 출연자의 외모는 단시간 안에 시청자들에게도 몰입할 만한 요소가 되지만, 출연자의 취향은 연애 상대가 아닌 이상 단시간 안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완남>의 객관성이나 전문성이 높아질수록 시청자와의 심리적 거리는 멀어졌다. 외모, 스펙을 배제하는 대신 그것을 대신 충족할 만한 요소를 보완했어야 하는데, 너무 극단적으로 ‘비스펙’만을 강조했다. 게다가 여성 의뢰인을 위한 매칭이 아니라, 전문가의 실험을 위한 매칭에 가까웠다. 여성 의뢰인은 실험 대상에 불과했지, 결코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더더욱 몰입할 여지가 없었다. 이론상으로만 완벽한 프로그램의 수명은 얼마나 갈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