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미생>이나 <송곳>처럼 일본의 샐러리맨들에게 뜨거운 공감과 사랑을 받은 드라마가 있었다. <한자와 나오키>라는 드라마인데, 무려 42%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드라마에 자주 반복 등장하는 대사가 특히 공감을 주었는데, “부하의 공은 상사에게, 상사의 실패는 부하에게”라는 정도로 기억이 된다.

아직도 일본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상명하복의 문화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영향에서 또한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현실은 얼마나 다를까? 직장 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 역시도 이 드라마의 대사처럼 “공의 상사에게, 실패는 부하에게”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현상은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국회의원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추석 연휴로 모두가 들뜨고, 또 어지간한 뉴스는 평소와 달리 관심도 모이지 않는 상황에도 SNS와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이슈가 하나 있었다. 9월 30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렸던 한화그룹의 불꽃축제에 관해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SNS로 강하게 비난했고, 그 안의 팩트 문제로 네티즌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17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첫 번째 문제는 이언주 의원이 이 불꽃축제가 국가예산으로 치러지는 줄로 착각한 것에 있다. 이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지금처럼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막대한 혈세를 들여 불꽃축제 하며 흥청망청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라고 했는데, 이 여의도 불꽃축제는 명칭부터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로 국가예산과는 무관한 행사여서 오히려 빈축을 샀다.

이에 이 의원은 네티즌들의 반박이 이어지자 댓글을 통해 “한화는 보수편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좌파 편이고, 김대중 때 성장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글을 달았는데 끝에 '퍼온댓글'이라며 애매한 표현을 남겼다. 정부 욕하다 돌연 한화를 공격하는 것으로 태세전환을 하면서도, 만일의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댓글의 주인을 밝히지 않은 이상 그 말은 잠정적으로 이 의원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김대중 정신을 당의 기저로 내세우는 국민의당 의원으로서 과연 할 말인지에 대한 의심부터 들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한화불꽃축제가 국가예산과 관계없음에도 혈세 운운한 것과 마찬가지로 팩트가 불분명한 것이 더 문제였다.

두 번째 문제는 악화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이 의원의 글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자 명절 분위기에도 기사가 여럿 나게 되고, 언제나 그렇듯이 여론이 악화되자 이언주 의원의 SNS에 짧은 글 하나가 올라왔다. 그 내용이 너무도 놀랍고 또 참담했다. 앞서 언급한 일본 드라마의 대사 “부하의 공은 상사에게, 상사의 실패는 부하에게”가 떠오르게 한 말이었다. 이 의원은 “불꽃축제 관련글에 달려진 공유댓글은 비상시 관리하는 보좌진의 실수로 올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의견과 관련없습니다”라고 했다.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연 그럴까? 우선 보좌진의 실수라는 해명부터 신뢰하기 어렵다. 실제 바쁜 의원님들은 공사가 다망하시기 때문에 SNS 관리는 대부분 관리진에서 혹은 자원봉사자가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누가 하든 그 글을 읽은 사람은 전적으로 해당 정치인의 의견으로 받아들인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자신의 SNS 글은 모두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언주 보좌진이 직접 자신이 쓴 글임을 주장하고 있다. 보좌진의 과잉이 빚은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신뢰하긴 힘들지만 그 입장 표명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앙금은 남는다. 이번 해프닝은 반응이 좋거나 문제가 없으면 자신의 글이고, 잘못이 있거나 물의를 일으키면 부하 직원이 한 것이라고 하는 식의 부당한 상하관계에 대한 의심을 남긴 것마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다시는 보좌진이 실수했다는 ‘자백’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애초에 이언주 의원의 글을 인용보도한 언론들이 팩트 체크를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논란이다. 즉, 언론이 할 일을 다 했다면, 아니 최소한의 보도 의무를 지켰다면 굳이 네티즌들이 나서서 이원주 의원과 팩트 공방을 벌일 일도 없었을 것이며, 누군지 모를 미상의 보좌진이 '퍼온댓글'로 대응하는 '실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치인의 발언에 언론의 논조를 숨긴다는 의심도 없지 않다. 이 역시 비겁하긴 마찬가지다. 태만이든 비겁이든, 정치적 논란을 만드는 것도 발전시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언론이 하고 있다. 적폐청산의 진짜 장애는 전 정부가 아니라 언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 아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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