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음악은 학이 아니라 악이다. 물론 여기서 악은 즐길 락(樂)이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는 반대로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심리학은 절대 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최근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의 국내 정치개입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 보도 속에서 더욱 참담했던 내용들이 있었다.

국정원이 조작해내는 많은 이미지나 말들이 심리학자들의 도움, 때로는 적극적 조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심리학은 적어도 이렇게 쓰라고 만들어진 학문은 아닐 것이다. 약이 독이 될 수도 있다지만 국가권력이 개인을 상대로 이미지 조작을 하는 데 동원된 심리학은 적어도 그들에 한해서는 학문이 아니라 독약이며, 폭력일 따름이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국정원 조작 비화! MB 블랙리스트와 어버이연합’ 편

보통 무도한 권력자들은 늘 그렇게 조력자 혹은 부역자들로 인해 괴물이 되었다. 괴벨스 없는 히틀러를 상상할 수 없듯이, 지난 정부의 국정원과 정보기관들이 힘없는 국민을 상대로 벌인 온갖 공작과 조작 역시도 ‘심리악자’들의 도움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학계 전체가 국민을 상대로 석고대죄라도 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검찰 수사 이전에 학계가 먼저 이런 상아탑을 더럽힌 인물들을 걸러내는 자정 노력 역시 보여야 할 것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각하의 비밀부대' 편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추적한 국정원 댓글사건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인 국가권력의 반역행위지만 그에 못지않은 충격을 가져다 준 것은 순수해야 할 심리학자들이 국정원 심리전단의 자문을 통해 대국민 심리전, 야권 정치인 및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등의 이미지 훼손을 위해 부역한 의혹이 제기된 사실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10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5년 미국 심리학자들이 미국 국방부 용역 및 의뢰를 받아 보다 큰 고통을 가하는 고문 방법에 대한 자문을 해준 의혹이 제기되어 미국 심리학회 차원의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호프만 보고서'라는 명칭으로 제출, 공개되었고 이에 따른 후폭풍으로 연루된 유명 심리학자들과 심리학회 집행부가 '심리학회 윤리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고 학회에서 축출되고 자격증이나 교수직 등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국정원 조작 비화! MB 블랙리스트와 어버이연합’ 편

표창원 의원은 이어 계속해서 “그나마 미국의 경우, '적' 혹은 전쟁범죄자에 대한 군사작전 및 수사신문 목적이었지만, 우리나라 국정원 사건의 경우 그 자체가 불법적인 범죄행위에 부역한 것입니다”라고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고 또 더 심각한 범죄성을 지적했다.

히틀러가 혼자서 괴물이 된 것은 아니었다. 권력자에게 세뇌가 됐든 아니면 권력으로부터 떨어지는 혜택 때문이든 그에 기생하는 부역자들로 인해 더 고약한 괴물이 될 수 있었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은 당연히 불법이다. 불법도 가장 질이 나쁜 것에 속한다. 군대가 적이 아닌 국민을 향해 무력을 사용하는, 다시 말해서 쿠데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 행위에 인간의 가장 나약한 곳을 잘 알고 있는 심리학자가 부역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배신감과 분노를 유발한다. 그래서 그들을 심리학자가 아니라 ‘심리악자’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인터뷰 한 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은 “심리학 배워서 왜 글 그런 거 하시냐?”고 물어볼 정도로 악행에 협조하는 심리학자의 모습은 정말 이상한 것이다. 사람을 더욱 모욕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표현과 방법을 국정원 심리전단에 제공하는 납품업자로 전락한 학문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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