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동된 국정원 적폐청산TF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 온 JTBC <뉴스룸>은 연일 의도치 않은 단독보도를 내고 있는데, 26일에도 또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해냈다. 국군사이버사령부 503심리전단의 ‘심리전 대응활동 지침’이라는 것인데, 거기에 등장하는 사실들은 과연 비밀을 다루는 조직답게 첩보영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상황들이 열거되어 있었다.

다만 그런 첩보전이 북한이나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의 목표달성과 비난여론 불식’을 위한 것이었다는 위화감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지난 정권의 정체에 대해 깊은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명박산성을 쌓아 국민들의 접근은 원천봉쇄하면서 뒤로는 국가권력을 동원해 꾸민 일들의 실체였다. 도대체 지난 9년의 정권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공작을 진두지휘한 의혹을 받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26일 오후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중앙지검 별관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이명박 전문이라는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책과 다큐 영화를 동시다발로 공개하며 그 시절의 핵심인 MB에게로 시민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또한 MB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BBK사건의 경우에도 김경준이 출소하고, 이 또한 주진우 기자의 오랜 추적의 결과물들이 공개되면서 매우 느슨했던 추측과 소문들이 한 사람을 향하는 강력한 심증으로 굳어지고 있다.

결국에는 MB정부를 특정하는 고유명사화된 ‘사자방’ 비리로의 지름길을 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MB정부 이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고, 주진우 기자가 토로하듯이 심증을 확정할 증거의 발견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모든 것이 결국엔 MB를 향하고 있지만 그것을 입증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소위 사자방 비리에 대한 의혹이 적폐청산의 주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자방에는 아직 근처에도 가지 않은 상태만으로도 이미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다. 장차 사자방을 본격적으로 다룬다면 과연 그때 우리들은 또 얼마나 경악하고 또 분노해야 할지 눈에 선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대관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온 것인지 회의와 절망도 함께다.

그러던 차에 JTBC <뉴스룸>이 26일 보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기무사 테니스장을 주기적으로 불법 사용한 사실은 새로운 가능성 혹은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전 대통령은 과거에도 소위 황제 테니스로 물의를 빚은 바 있었다. 제 버릇 남 주지 못한다는 속담대로 이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군시설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 발각된 것이다. 올해만도 20여 차례나 된다고 한다.

참 터무니없는 일을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해왔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허탈감이 더 크게 다가서는 일이다. MB가 도대체 왜 몰래 군시설을 이용해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누구처럼 29만 원밖에 없다고 할 이유도 없는 MB라면 테니스 정도는 돈 주고 즐겼어야 했다. 권력의 사유화는 물론이고 권력의 영속화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만들어낸 착각들이 아닐 수 없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뉴스룸>과 인터뷰 한 김정민 변호사에 의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무사 테니스장을 무단 사용한 것은 “업무상 배임의 공동정범으로 극단적으로 의율하려면 의율할 수 있다”면서 그런 판례가 있다고도 했다. 즉, 기소하려면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로 이 전 대통령을 검찰로 부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에게 따라붙을 너무도 저렴한 구설수는 이 전 대통령 본인은 어떨지 몰라도 지켜보는 국민이 더 부끄러울 지경이다.

여전히 이런 사실들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예감을 피할 수가 없다. MB는 매우 꼼꼼하고 철저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잘못을 의심할 수는 있어도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말들이 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기무사 테니스 불법사용과도 같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일로 인한 망신처럼 무엇이 MB의 아킬레스를 건드릴 스모킹건이 될지는 역시 모르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화여대 학내문제가 정유라 부정입학으로, 다시 최순실 게이트로 발전할 것이라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처럼 말이다. 작은 구멍 하나가 결국 거대한 둑을 무너뜨린다는 옛말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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