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투명생활을 해오던 박지연 씨가 31일 끝내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이제 스물 셋. 이렇게 벌써 안타까운 희생이 8명 째로 이어지고 있지만 주요언론매체에서는 누군가 함구령을 내린 듯 ‘조용’하기만 하다.

박지연 씨는 누구인가?

박지연 씨는 삼성전자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갑자기 급성 백혈병에 걸려 투병했던 노동자였다. 고3의 나이로 200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한 그는 그곳에서 가열된 납 용액과 휘발성 화학약품을 다루는 일을 맡았다. 그러던 중 몸에 이상이 찾아온 것은 2007년 7월 병원을 찾은 그는 급성 골수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당연히 ‘산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전장치도 없이 백혈병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방사능에 상당량 노출됐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 등의 병을 얻은 사람이 박지연 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삼성은 “산재가 아니다”라면서 극구 부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100% 삼성의 말이 맞다고 친다하더라도 이상한 점이 있다. 왜 삼성반도체에서 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느냐이다. 정말 우연히도 22명의 노동자들이 그 짧은 기간에 급성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 조혈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산재가 아니라고 한다면 삼성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박지연 씨의 사망을 주목한 소수의 매체들

삼성반도체 사측과 노동자들의 입장차로 인해 많은 다툼이 있어왔고, 여전히도 진행 중에 있다. 그러다 이 같은 비보가 날아온 것이다. 그러나 박지연 씨의 사고를 주목한 매체는 손에 꼽혔다. 일단 지상파3사와 종합일간지 중 이 소식을 다룬 곳은 <한겨레> 뿐이다.

<한겨레>는 1일자 신문 ‘삼성전자 백혈병 노동자 8번째 죽음’이란 기사를 통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 쪽에서 파악한 바로는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 조혈계 암에 걸린 노동자만 2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한 이종란 노무사의 말을 인용해 “이들 가운데 이미 숨진 황유미, 황민웅씨 등에 이어 이번에 박 씨까지 모두 8명이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 분들은 투병 중”이라고 덧붙였다.

▲ 4월 1일자 '한겨레' 12면 기사

또한 <한겨레>는 “삼성전자 공장에서 백혈병 등의 환자가 계속 발생한 데 대해, 시민사회단체 쪽은 공장 작업환경 탓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삼성은 이를 계속 부인해왔다”며 “지난해 초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역학조사를 벌였으나 노동환경과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낮다고 판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앰코테크놀로지 등 반도체 제조3사 공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학조사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면서 “그러나 이들 회사는 조사의 신뢰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프레시안>은 “박지연 씨가 세상을 떠난 뒤 또 한 명의 피해자가 확인됐다”며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암을 얻어 사망한 사람이 최소 9명인 것으로 1일 확인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밖에 박지연 씨의 죽음과 관련해 주도적으로 다룬 매체는 <참세상>, 지역매체들 뿐이다. 참 쓸쓸한 모습이다.

박지연 씨 소식, 초계함에 묻혔나 아니면 삼성에 묻혔나(?)

최근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구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사면을 받은 지 3개월만의 일이다. 그리고 <중앙일보> 등 몇몇 매체는 이에 적극 ‘환영’의 뜻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현재 삼성 내부에서는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진 ‘전략기획실’의 부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솔솔 들리어오고 있다.

2010년은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KBS1TV <열린음악회>가 이를 기념하는 것처럼 꾸며져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삼성. 그 이름은 참으로 언론매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는 기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반도체'의 노동자였던 박지연 씨의 외로운 죽음에 대해서 대다수의 매체에서 외면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프레시안>은 ‘‘삼성 백혈병’ 박지연 씨 사망, 대부분 언론 ‘침묵’’ 기사를 통해 <매일경제>가 ‘‘백혈병 반도체 소녀 사망’…추모서명 잇따라’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매일경제>는 “기사에 문제가 있다면 정정을 하기도 하지만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며 “당시 속보부에서 지시를 내리던 선임자가 지금은 자리를 비워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른다”고 답한 것으로 나와 있다. 참으로 이상한 답변이다. 매체 이름을 걸고 올렸던 기사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내릴 수 있다는 말을 믿으라는 건지….

4월 1일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여전히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된 기사로 채워졌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박지연 씨의 소식은 초계함에 묻힌 것일까? 아니면?

“고 박지연 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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