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EBS <다큐 10> '미디어의 황제, 루퍼트 머독'편의 한장면이다.

<시사IN> 창간호는 신정아 씨 인터뷰로 세상에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표지를 차지한 인물은 루퍼트 머독이었다. <시사IN>은 해당 기사에서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월스트리트 저널 인수는 자본이 어떻게 언론을 장악하는지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루퍼트 머독은 우리나라에는 생소할 수 있지만, 주목해야할 세계적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뉴욕포스트, 타임스, 폭스 방송, 20세기 폭스, 스타 TV, LA다저스 등 52개 국에서 780여 종의 사업을 펼치고 있는 미디어 재벌이다. 주요 국가의 언론들이 그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번 방송은 우리나라도 신문사, 방송사의 겸영 허용 문제, 방송통신융합 문제 등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높은 시기니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미국의 미디어전문지 '페어'를 창간한 제프 코헨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폭스TV를 비롯해, 주요 언론에 관한 일침이다.

"미국의 뉴스는 대부분 오락쇼나 마찬가지에요. 조직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국민들에게 정보를 주는 시간이 아니죠. 뉴스라고 할 수 없어요. 오락을 제공하고 시청자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뉴스는 모두 쇼로 변해버렸고, 다들 흥미로운 뉴스꺼리를 포착해서 연속극으로 둔갑시켜 버리죠. 미국 국민 전체가 연속극의 주인공에 대해 잘 알게 만든 후 그 연속극에 열중해서 매 시간 눈을 떼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게 만들죠. 요즘은 안나 니콜 스미스에 대한 연속극이 한창 진행중이에요."

안나 니콜 스미스는 최근 사망한 전직 플레이보이 모델로 26세에 89세의 석유재벌과 결혼 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뉴스는 연일 그의 죽음에 대한 추측보도를 내놓고 있다고 한다. 제프 코헨은 이에 대해 마치 뉴스가 넬슨 만델라 사망사건을 다루는 듯 하다며 비꼬았다.

남의 일이아니다. 대작드라마 '황우석'편이 기억에 생생하며, 미니시리즈 '신정아'편은 아직도 번외편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대선에 관한 보도도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 들어가면 기업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미디어 기업이 대형화 될 수록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언론도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되는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루퍼트 머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국내에도 제2의 루퍼트 머독이 탄생할 경우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를 우려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면에서 볼 때 6일 방송된 EBS <다큐 10>은 약간 황당했다. 그가 미디어의 황제가 되는 과정,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 방식으로 다뤘지만 루퍼트 머독의 직접 인터뷰는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자료화면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루퍼트 머독 또한 언론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하고 있는 건물에 대한 촬영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와 현재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이번 편을 촬영한 프리랜서 PD의 말을 요약해보면 어떤 기자나 언제 그의 밑에서 일할지 모르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권력은 강했다.

결말은 더 황당하다. 방송을 보면 루퍼트 머독은 일부러 시민권까지 취득해가며 미국의 언론사들을 사들인다. 신문사에서 방송사, 인터넷 회사까지 모두 그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도구로 자신의 회사에 유리한 뉴스를 확대생산하고, 자신의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정치권과 기꺼이 손을 잡는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지만 방송은 그것을 견제하는 방법을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루퍼트 머독의 미래에 대한 예측 또한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현재 나이가 70대 중반이니 그도 결국 사망할 것이고, 그렇다면 특정 인물의 능력에 의해 커온 대형 미디어 그룹의 미래도 어찌될지 모른다는 애매한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외국에서 기획되고 제작된 프로그램을 EBS에서 방송한 사례다. 국내에서 별도로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기업 운영방식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루퍼트 머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시청자가 있다면 국내에서 발간된 그에 대한 서적을 구입하거나 <시사IN> 창간호를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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