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등장했던 소재인 의학 드라마에서도, 그동안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었던 <산부인과>를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해왔던 드라마가 막을 내렸습니다. 비록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매 회 그들이 담아내며 이야기했던 주제들은 한 번쯤은 곱씹어 봐야할 내용들이었습니다.

16회-만약 운명 같은 게 존재한다면

어쩌면 운명은 이렇듯 드라마 같은 것

정식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반지를 건네려던 상식은 의외의 변수에 주춤합니다. 아이의 아빠인 서진을 만나러 나온 혜영과 엇갈리는 상식은 또 다른 오해로 마음을 감추고 맙니다. 태어날 아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서진과 이를 오해한 상식의 모습은 사랑에 서툰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던 남자와 아이를 버리기 힘들어했던 여자. 그렇게 엇갈리는 사랑 속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 사이에 한 남자가 들어와 여자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꾸준하게 일깨워줍니다. 사라질 수도 있었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 남자에게 마음이 다가가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나마 뒤늦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애정 없는 결혼에 종지부를 찍고, 혜영에게 결혼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이용해 태어날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는 서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제도에서 사랑과는 상관없이 짐 지워진 굴레 속에서 그들의 선택은 한정적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결국 사랑은 했지만 멀어진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고 핏줄에 연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태어날 아이가 가질 수 있는 불합리함을 어느 정도라도 없애기 위한 서진의 제안은 그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마지막 회의 소주제처럼 '만약 운명 같은 게 존재한다면'을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 환자들의 '죽음과 탄생'을 통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임신한 뇌졸증 환자와 심장질환으로 아이를 낙태해야만 했던 심장이식 대기환자의 모습은, 혜영과 상식의 사랑과 미래 그리고 <산부인과>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출산을 앞둔 상태에서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와 심장 이식 수술을 급히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 죽어가는 환자는 아이를 잉태하고 있고 아이를 잃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에게는 그 어떤 희망도 위태롭기만 합니다.

아무리 발을 동동거려도 누군가 심장을 기증하지 않는다면 결코 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정말 운명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뇌사 판정이 난 후 죽음을 선택한 가족은 의사들의 권유로 장기 기증을 결정합니다. 그렇다고 같은 병원에 입원한 채 심장 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그녀에게 기회가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KONOS(국립 장기이식 관리센터)에서 여러 가지 상태들을 종합해 결정하는 상황이기에 자신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했습니다.

드라마가 제시한 '운명'이란 게 있다면 그녀에게 심장이 전달 될 수밖에는 없었겠죠. 남편의 장기기증과 아픈 부인의 위중한 상태. 더불어 그녀보다 앞서 받을 수 있었던 환자의 상태가 좋지 못해 그녀는 운명처럼 새로운 생명을 선물 받게 됩니다.

그렇게 아이를 품고 죽어간 여인의 심장을 이식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환자는 조금씩 운동하는 게 심장에 좋다는 의사의 충고로 병원을 거닐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다름 아닌 자신에게 심장을 건넨 여자의 아이를 앉고 있는 상식 때문이었습니다.

원인을 알지 못하던 그녀는 병원을 떠나 시설로 가려는 아이와 운명적으로 조우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가슴에 품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는 아이 엄마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녀는 죽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기들을 통해 7명에게 새로운 삶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죽어서까지 미련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은 홀로 남겨진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운명처럼 끌리던 그들은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로 합니다. 소제목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비약이 심해 드라마적인 연결이 매끄러울 수 없었지만 삶이란 이렇듯 운명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서로를 엮어줄 수 있음을 행복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죽어가며 새로운 생명을 전해주듯 남겨진 아이는 자신의 장기를 이식받아 살아난 여인이 키우게 된다면 그들의 운명은 천년을 이어온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에 서툴기만 한 혜영과 상식은 오해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던 그들도 운명으로 맺어 새로운 삶과 인생을 살게 된 그들을 바라보며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상식이 끼워준 반지를 다시 돌려주며 "반지나 약속으로 묶어두는 것이 아닌 믿음"을 강조하는 혜영은 마지막까지 멋있었습니다. 서로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다음 만남에서도 지금과 같은 설렘이 유지된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는 그녀의 말은 천하무적 장서희다웠습니다.

어떤 명료한 해법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혜영은 <산부인과>내내 보여주었던 성격만큼이나 현실적이면서도 열정적이었습니다. 소극적이며 생각이 많은 상식을 리드하며 진솔한 사랑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들은 지금 당장 결혼이라는 틀 속에 자신들을 가두지 않고 믿음이 바탕이 된 사랑을 존중합니다.

송중기와 이영은의 결혼식에 당당하게 손을 잡고 입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회적인 틀이 제시하는 행복이 아닌, 믿음이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 안에서 행복한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핏줄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핏줄보다 진한 인연이라는 틀로 새로운 가족 관계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아쉬운 점들도 많았지만 매 회 다양한 문제를 가진 환자들을 통해 나와 주변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산부인과>라는 공간이 주는 '사회적 폐쇄성'이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지는 알 수 없지만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을 장기기증의 중요성과 사랑을 하나로 묶어 '장기기증=사랑'이라는 등식을 멋지게 대입시킨 <산부인과>의 마지막 회는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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