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명분도, 시기도 맞지 않았다. 구속도 아니고 조사를 위해서, 그것도 몇 차례나 조사를 받으라고 해도 무시한 끝에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을 언론탄압이니 장악이니 침소봉대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자유한국당의 국회보이콧이 예상한 대로 초라한 귀결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9일 강남 코엑스 주변에서 집회를 연 끝에 11일 월요일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복귀를 결정지을 예정이다.

결국 9일 집회는 대정부 투쟁을 위한 점화가 아니라 국회 복귀를 알리기 위한 봉화였던 셈이다. 여당이나 다른 야당 등을 자유한국당을 향해 국회 보이콧을 거두라고 말리기는 했지만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숨기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의 일탈은 여론의 지지는커녕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규모 집회를 통해 눈길이라도 끌려고 했지만 강남에 모인 사람들은 딱히 자유한국당의 집회 의도나 방향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안보와 공영방송 관련한 피켓을 준비했지만 일부 참가자들이 당에서 준비한 것과는 다른 피켓을 들고 나왔다.

자유한국당 의원과 전국 당원들이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앞에서 열린 '5천만 핵 인질·공영방송장악' 국민보고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거기에 적힌 것은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라!”는 글귀였다. 비록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자유한국당의 현실을 은유하는 장면이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집회를 통해 일치된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겠지만 결국엔 법원 근처에서 자주 보게 되는 흔한 박사모 집회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현장은 보수집회인지 극우집단 집회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로 험악했다. 동성애 혐오, 종북좌파 척결 등에 이어 5·18민주화운동 부정과 폄훼 심지어 장애인 비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또한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했다. 성과 없이 보이콧을 철회하는 상황에서도 노이즈마케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당운을 걸었다는 총동원 집회에 등장한 박사모 팻말로 인해 자유한국당은 입장만 더 꼬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위기를 지나고 있다. 그렇다면 야당의 공세가 먹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이 전혀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역시나 국회 보이콧도, 공영방송 탄압이라는 주장과 행동 어디에도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이은재,임이자,정진석의원과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앞에서 열린 '5천만 핵 인질·공영방송장악' 국민보고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국을 통해 만들어졌다. 촛불혁명은 바로 국정농단 세력 청산의 기치 아래 진행됐다. 시민들이 꼽은 적폐는 검찰, 언론 등의 순이었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 공영방송 기자들과 카메라는 민망한 꼴을 당해야만 했다. 야유의 대상이 되고, 쫓겨나고, 숨어서 리포트를 해야 했다. 언론이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것은 논쟁의 여지없는 상식이다.

그런 분명한 개혁대상인 공영방송을 제자리에 돌려놓겠다는 방송사 구성원들의 자각과 행동을 탄압이라는 어불성설의 주장이 먹힐 것이라고 설마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빈손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을 통해서 얻은 것은 야당이라고 누구나 투쟁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마주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슬그머니 국회 보이콧을 회수한 자유한국당에 대해서 시민들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오히려 국회에 복귀하는 것이 더 불만이라는 반응이다. 민심을 잃고 정당과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는데, 무리하게 벌인 국회보이콧은 자유한국당이 민심을 읽지도, 얻지도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지지율 걱정도 있지만 우리는 밑바닥에 와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면서 민심 무서운 줄 모르고 시작한 '아몰랑' 투쟁의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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