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SBS <지구촌 VJ특급>의 한장면이다.

"사람들은 순박하지만, 뭔가에 여간해선 미치질 않더라. 뉴질랜드? TV를 켜면 다트게임이 생중계되고, 신문에는 고양이가 13일간 갇혀 있다가 구출된 사건이 대서특필되더라. 아카카칵."

배우 송강호는 <남극일기>가 개봉되고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촬영 당시 우리나라는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으로 들끓고 있었다. 같은 지구위에 있어도 세상은 이렇게 다르다.

<지구촌 VJ특급>이 5일 첫방송을 내보냈다. 지난 주 폐지된 <결정! 맛대맛>의 후속 프로그램이다. 외국에 있는 VJ들을 활용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포맷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소재가 주는 힘이 강했다.

앞서 말한 송강호의 심정으로 본다면 '2천억원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편이 가장 인상깊다. 이 코너는 영국의 제72회 '런던-브라이튼 베테랑 자동차 달리기 행사'를 카메라에 담았다. 100년이 넘은 클래식 자동차 500대가 나와 경기를 벌이는 날이다.

방송이 사람 여러번 놀라게 한다. 무엇보다 도시 한가운데서 도로 한쪽을 막아버리고 저런 경기를 진행한다는 게 신기했다. 거기에다가 사람들은 날씨도 추운데 느려 터진 자동차경기를 7시간이나 구경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사람들은 참가자들이다. 방송에 따르면 100년 이상된 오래된 자동차들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한다. 제목을 괜히 '2천억원이 나가신다'라고 정한게 아니다. 차테크라고 불릴정도로 클래식차에 대한 투자에 관심이 높단다.

그런데 그 비싼차를 그들은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지 않고 끌고 나왔다. 5분에 한번씩은 멈추는 차를 끝까지 고쳐가며 7시간을 달렸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자 참가자들의 얼굴은 시커먼 기름범벅이 되어 있었다. 물론 적당히 운전해 주는게 차의 수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해가 훨씬 더 커보였다.

보고있자니 가슴에서 뭔가 불끈하는 의지가 솟아오르게 만든다. 그래, 돈자랑은 저렇게 하는 거다. 거실에 비싼 미술품 걸어놓고 혼자 감상하는 부자들 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왕이면 저런 부자가 되고 싶어졌다.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편도 감동을 줬다. 2007년 미스 프랑스 2위를 차지한 '소피 부즐로'는 청각장애인이다. 대회에서 수화로 진행자와 인터뷰를 하던 도중 '소피 부즐로'는 마이크를 빼앗아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스스로 다른 사람과 같은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리고 방송분야로 진출해서 청각장애인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만들고 싶어요."

이 장면을 보며 현재 우리나라의 '수화방송' 혹은 '자막방송' 비율 통계를 찾아보며 분개할 수도 있었지만 잠시 미뤘다. 잠깐 생각해보라. 방송에서 청각장애인의 목소리가 저렇게 그대로 나온적이 몇번이나 있었던가.

그동안 TV가 청각장애인을 묘사한 방식을 떠올려보자. 드라마는 가끔 청각장애인을 등장시킨다. 대체로 선남선녀다. 수화로 이야기하고 구화(입모양으로 말을 알아듣는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방식의 하나)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다. 그들은 청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밝아서 사랑에 빠지거나, 청각장애인이라보니 '보호본능'을 자극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

이때 청각장애인역을 맡은 연기자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다. 수화 연습 열심히 했다고 언론의 칭찬만 쏟아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해보면 그렇게 입 꼭 다물고 수화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들리지는 않아도 '소피 부즐로'처럼 말은 어느 정도 하는 사람도 많다. 말을 못하더라도 뚝뚝 끊어지는 음성들과 수화가 같이 나온다. 차이는 비장애인의 목소리처럼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것에 있다. 특수학교에 가보면 쉽게 이해된다. 청각장애학교가 의외로 가장 시끄럽다. 들리지 않으니 목소리의 높이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그러하다.

이는 제작진이 주인공을 아름답게 묘사하고자하는 배려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보면 청각장애인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연출로 보인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드라마안에서 청각장애인을 신비로운 캐릭터로만 한정시켜 묘사하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

역시 안방에서 해외여행을 다녀오니 느끼는게 많아진다. 방송은 홈페이지에서 '유료'(일반화질 500원)으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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