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8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지금까지 그 많은 돈을 갖고 군이 무엇을 했는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질책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북한과 남한의 GDP(국내총생산)를 비교하면 국방비는 45배 차이가 난다. 북한을 압도해야 하는데, 실제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며 오랜 시간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혹에 응답하듯 국방부에 쓴소리를 한 것이다.

요즘은 다소 하향세지만 ‘팩트폭력’이라는 말은 2016년을 대표할 만한 유행어였고, 그 말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대단히 컸다. 더군다나 그것을 대통령이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격세지감의 표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로서는 비판이나 불평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성역에 대해 대통령이 일갈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쾌감을 준다. 보통 정치인들이나 특히 대통령의 말에는 행간이 많다. 그렇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그런 것 없이 단어 그대로, 말 그대로 들으면 그만이라 무척 깔끔하다. 어린아이와도 대화할 수 있는 직설법의 습관. 결국 국민들에게 대형 사이다를 선물하게 된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 후 첫 '2017 국방부·국가보훈처 핵심정책 토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 동안 SNS를 떠돌던 사진 한 장이 기억난다. 군대의 형편없는 식판이었다. 군대 식단이 얼마나 형편이 없으면 한 커뮤니티에서는 교도소 식판과 비교한 사진까지 올랐다. 사실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비교가 공감을 얻을 만큼 국방예산에 대한 불신은 크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에 사자방 비리를 포함시켰을 때 시민들이 크게 환호한 것이다.

적폐청산은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혁명으로부터 받은 소임이다. 다른 부분의 적폐도 심각하지만 군대에서의 적폐는 그 뿌리가 너무도 깊다. 그래서 분노도, 절망도 큰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북한의 안보 도발이 잦을 때에는 더욱 국방 비리에 대해서 민감해질 수밖에는 없다. 그런 때에 딱 맞춘 대통령의 꾸짖음은 소식을 듣는 시민들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오비이락일까? 같은 날 한 매체는 심각한 군납비리를 보도했다. 뉴스1은 “군납용 식기세척기 사업을 독점하면서 기계 내부가 녹슬고 쥐가 죽어있는 중고품들을 겉면만 새것으로 교체해 납품한 예비역 소령 등 일당 5명이 재판에 넘겨졌다”고 보도했다.

어쩌면 우리가 압도적인 국력을 가졌음에도 북한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사건일지 모른다. 이런 것은 편린에 불과하다는 것은 군대 밥을 먹은 사람이라면 모두 피부를 느낄 수 있다. 군대에서의 모든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비리에 결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 후 첫 '2017 국방부·국가보훈처 핵심정책 토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사회에 팩트폭력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이유를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깊이 고민하지 않더라도 답은 나온다. 언론이 진실을 외면하고, 엉뚱한 소리나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시절의 유산인 것이다. 또한 평소에는 자화자찬에 열심이면서도 정작 정치적인 이유가 생길 때에는 갑자기 초라해지는 한국의 국방능력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이토록 미사일을 쏴대도 정작 휴전 중인 국가의 국민들이 가장 태평한 모습을 보이겠는가. 누군가는 안전불감증이라고 하지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권력자들에 의해 안전의 촉수를 마비당한 국민의 비극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군, 그 많은 돈 갖고 뭐 했나 의문이다”고 한 것도 일차적으로는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발언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만큼 무겁고 침통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적폐청산이 최우선 국정과제인 나라에서 바꿀 것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군대비리는 그중에서도 집중할 것이라는 의지를 “그 돈 다 뭐 했나”라는 말 한 마디에 담은 것이다. 대통령의 돌려 말하지 않은 직설의 팩트폭력이 국민들에게 또한 신뢰를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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