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회 법제사법외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권성동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한명숙 전 총리의 만기출소에 맞춰 여당인 민주당에서 당시 판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에 대해서 권 위원장이 비속어를 써가며 비판하자 이에 발끈한 박 의원이 사과를 요구하는 등 고성이 오간 것이다.

명색이 법조인 출신들의 법사위도 정치공세에는 원색적이 될 수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권성동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 출소사진을 펼쳐 보이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서 유죄선고를 한 13명의 대법관은 속된말로 제정신이 아니다, 또라이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거예요. 추미애 대표하고”라고 한 발언이 발단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 위원장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소영 법원행정처장 등에게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이 잘못됐다는 일부 목소리가 맞느냐고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 의원이 추미애 대표를 겨냥한 발언에 ‘또라이’라는 비속어까지 섞은 것에 박 의원이 참지 못하고 방어성 공격을 펼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었다. 여기까지는 국회 위원회의 흔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라이’라는 심했다. 24일 <썰전>에 출연한 MB정부 출신 박형준 교수 역시 요즘 야당들의 비판에 품위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어쨌든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여야의 입장은 천지차이인데, 야당은 이에 대해서 ‘사법부 부정’이라는 원론적 근거로 여당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한명숙 전 총리가 사법피해자가 정말 아닌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당시 5인의 대법관 소수의견이 분명히 있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판결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총 13명의 대법관 모두 3억원 부분은 유죄로 봤지만, 6억 부분은 의견이 8(유죄):5(무죄)로 엇갈렸다. 6억 부분에 대해 다수 의견이 압도적인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간신히 유죄를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8 대 5는 거의 동수나 다름없다는 일설을 여당도 알고, 야당도 안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의견의 논리가 매우 단단하다는 데 있다.

“다수의견은 법정진술보다 검찰진술에 우월한 증명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동의할 수 없다”

당시 유죄에 반대했던 소수의견의 반박인데 주목해서 볼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 행간에 우겨넣은 소수의견 대법관들의 의혹과 분노가 느껴진다. 계속 이어지는 검찰진술의 문제점 지적은 점입가경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며 소감을 밝힌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기관이 한만호에 대한 조사과정을 기록하지 않아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절차를 위반했기 때문”이라며 다수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한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한명숙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한신건영과 한만호에게 전년도 매출의 1/6가량이며, 당기순이익의 4배나 되는 9억 원이라는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것도 상식을 벗어난다. 게다가 뇌물을 1억 원짜리 수표로 건넨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허술함이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잘못된 증거와 수사로, 때로는 정치적 판결로 인해 세월이 지난 후에 판결이 뒤집힌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지난 10년을 지배한 적폐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사법부만 비켜간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없다. 그랬다면 현직 판사가 사법개혁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인, 사법부 초유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을 당시 한명숙 전 총리는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다. 비록 제 인신을 구속한다 해도 저의 양심과 진실마저 투옥할 수는 없다”며 “역사는 2015년 8월 20일을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날로 기록할 것”이라며 결백을 호소했다. 이렇듯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뭔가 허술하고, 한명숙 전 총리의 결백 주장은 왠지 설득력이 전해진다. 한명숙 전 총리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참 어렵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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