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핑크영화다. 노출 수위도 적나라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노골적인 관음증적 관점으로 다가오거나 에로틱하게 느껴지기보다 처연하게 느껴지는 건 영화가 함의가 에로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영화 속 세 남녀는 온전한 인물이 아니라 무언가가 모자란 인물들이다. 소설가는 알코올에 탐닉하거나 마약에 쩔어 지내고, 소설가와 동거하는 여자는 어린 시절 입을 덜기 위해 아버지가 딸을 유곽에 팔아치우는 바람에 오르가즘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빠진 인물이다.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은 병사는 아내와의 정상적인 사랑을 통해서는 성욕을 느낄 수 없다. 그가 성욕을 느끼고자 한다면 쌀을 구매할 수 있다는 구실로 여자를 유인해 목을 졸라 성폭행을 일삼을 때뿐이다. 세 남녀 모두 하나같이 정상이라는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증명하는 분야가 어디 한두 분야이던가. 그 가운데서도 발레는 우리의 몸이 빚어내는 육체의 향연 가운데서도 극한의 단련과 절제를 통해서야 빚어질 수 있는, 육체의 수도사가 아니면 결단코 숙성되게 빚을 수 없는 분야임에 틀림없다. 가령 무대 위에서 화려한 디베르티스망을 관객에게 선사하기 위해 무용수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땀을 연습실에서 흘려야만 하는가를 발레 종사자나 무용수가 아니라면 제대로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최정상급의 발레리나로 손꼽히는 강수진조차 하루 12시간 이상의 연습은 기본이요, 관에 누울 때에는 원 없이 쉴 수 있는데 무엇 하려고 연습을 소홀히 하는 게으름을 피우겠느냐며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주문을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도 꾸준히 해야 하는 육체의 수도승
마술사들의 어벤져스가 뭉쳤다. 이름 하여 ‘포 호스맨’. 독심술과 탈출, 재빠른 손놀림의 달인 등이 뭉친 이들 네 마술사는 불가능해 보이는 마술을 관객에게 펼친다. 무작위로 추첨된 관객을 한 사람 불러 그의 주거래 은행을 터는 말도 안 되는 마술을 선보인다.설상가상 무작위로 추첨된 관객의 주거래 은행은 미국도 아닌 프랑스에 있는 은행. 하지만 포 호스맨은 보란 듯이 마술에 성공해서 관중석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로화를 펑펑 뿌려댄다. 이쯤 되면 ‘하늘에서 유로화가 내린다면’이 된 셈이다. 일 년 전만 해도 남의 지갑을 털거나 사기 행각으로 푼돈이나 만지던 이들 네 명의 마술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제각기 살아가면 별 볼 일 없는 마술사 네 명이 누군가에 의해 한 장소로 모이게
엄마라는 이름은 언제, 어느 곳에서 되뇌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름이다. 로맨스 연극이 대학가에 난무하는 요즘, 이 연극은 무대부터 예사롭지 않다. 영정사진 같은 무대가 한가운데 뎅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갓 작고한 이는 주인공 ‘선녀’. 세 자녀를 위해 화수분처럼 무한정 퍼주기만 하다가 남편 사랑 한 번 변변히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엄마다.사실 선녀는 젊은 날에 일찌감치 이혼했어야 바람직했다. 중매로 결혼한 남편은 다리가 불편한 콤플렉스로 말미암은 열등감 투성이의 인간이다. 육체가 불편한 것이 자격지심이 되어 예쁘고 착한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는커녕 냉대하고 욕을 해대고 물리적인 폭력까지 휘두르니, 요즘 세대의 눈으로 보면 백이면 백 이혼 당하기 딱 좋은 진상 남편이다.선녀가 알뜰하게 모은
매스컴에서 연일 나오미 왓츠의 노출로 이슈몰이를 하는 영화 를 관음증적인 시선을 갖고 관람하면 낭패를 겪을 확률이 높음을 미리 경고한다. 은 남녀의 중요 부위가 수시로 노출되는 영화다. 하지만 에서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는 걸 밝혀둔다.릴(나오미 왓츠 분)과 로즈(로빈 라이트 분)는 소녀 때부터 우정을 나눈 친한 친구다. 이들 두 소녀는 어엿한 아가씨가 되어 맘에 드는 남성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릴은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릴과 로즈, 이들이 낳은 아들은 서로가 이모와 같은 친밀한 정신적인 유대감을 공유한다. 릴과 로즈는 장성한 두 아들을 보며 우리 작품이 맞느냐고 감탄할 정
숲이라는 공간은 인간이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약육강식의 법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연계의 축소판이다. 누군가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열심히 도망쳐야 하고, 둥지 안의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선 열심히 사냥을 해야 한다. 숲에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자연계가 먹느냐 먹히느냐의 이분법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의 세계관은 산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담고 있다. 숲의 생명력을 관장하는 타라 여왕이 선의 영역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맨드레이크가 있다. 맨드레이크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푸르른 숲의 생명이 꺼져가는 반면에 티라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꺼져가던 생명도 다시금 생기 있게 되살아난다. 타라와 맨드레이크가 대립하는 숲에서 인간은 사실 선와 악 그 어느 영역에
하정우가 연기하는 앵커 윤영화는 어느 날 라디오 진행을 하다가 질문과는 상관없이 뜬금없는 답변을 받는다. 윤영화는 라디오 방송의 원활한 흐름을 잇기 위해 동문서답하는 청취자의 사연을 무시하고 끊어버린다. 하지만 청취자의 전화는 끊긴 것이 아니었다. 끊기지 않은 청취자의 전화는 이내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협박 전화로 바뀐다. 윤영화는 이를 장난전화로 치부한다. 하지만 바로 그때 거대한 굉음이 울리고 마포대교가 폭발한다. 그 청취자는 테러리스트였고,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윤영화의 태도에 대한 보복이자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를 자행한다. 방송은 시청률에 목을 맨다. 시청률이 높으면 해당 프로그램의 광고 단가와 광고 편수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반대로 아무리 프로
봉테일의 반가운 귀환이 아닐 수 없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감독이 저지르기 쉬운 타협이란, 자신만의 색깔을 할리우드 상업주의 안에서 발현하지 못하는 타협이기 쉽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할리우드라는 시스템 안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고수하는 현명함을 발휘할 줄 알았다.설국열차의 뒷칸은 무산층이 탑승하는 칸이다. 가진 게 없기에 식량을 배급받아야만 하고 수시로 군인들에게 검열을 받는다. 반면 열차 앞칸에 탑승한 유산계층은 온갖 호사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아간다. 무채색에 가까울 정도의 어둠은 열차 뒤편에서 우울하게 살아가는 무산계급의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비루함을 강조한다.열차 뒷칸 사람들이 앞칸을 접수하기 위해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면서 영화는 밝은 색을 갖기 시작한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컬러
* 이 글엔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도 참 긴 이 영화, 요즘 영화들은 한 가지 혹은 길어봐야 두 가지 정도로 분석이 가능한 단세포적 영화들이 가득하지만, 이 영화는 다양한 각도로 조망이 가능하면서도 작품성이 탁월한 수작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한 사람은 범죄자 주인공인 루크(라이언 고슬링 분)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경찰 주인공인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 분)이다. 이 두 주인공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루크는 아버지가 없이 자란 떠돌이 오토바이 스턴트맨이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좀 더 안정된 가정과 직장을 가졌으리라고 믿는 루크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면 자신이 받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자식에게 물려주리라 다짐하는 남자이기도
연예기사를 보면 연예인이 ‘망언’을 하는 경우를 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망언이란 연예인의 무개념 발언이 아니다. 일반인보다 우월한 스펙을 갖고 있음에도 그 우월함을 비하하는 차원의 망언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음에도 자신의 외모가 보잘 것 없다고 비하하는 여자 연예인의 발언이나,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 실력을 가진 가수가 자신의 노래 실력이 하찮다고 자학하는 발언이 이에 해당한다. 의 주인공인 울버린도 이러한 망연 대열에 동참한다. 화가 날 때 손에서 뿜어 나오는 아다만티움 발톱도 모자라 불로불사의 자기치유능력을 갖는 울버린은 자신의 ‘불로불사’를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불로불사의 육체에 대해 고민하고 번민한다. 기존 시리즈에서 울버린이 가졌던 의문, 자신의 정체성에
지구 생태계 최상위층에 있다고 자부하던 인간의 자부심이 추락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태평양 심해에서 출몰하는 거대 괴수가 마냥 안전하리라고만 생각했던 인간의 안식처인 육지를 순식간에 초토화했기 때문이다. 거대 괴물 카이주(일본어로 괴물)의 침략에 맞서 인류는 범국가적으로 거대 로봇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전투기만으로는 역부족인지라 철로 된 거인 로봇을 만들어야 괴물과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만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두 만화 작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나는 이다. 인간의 뇌 움직임을 통해 로봇이 움직이도록 만든다는 설정은 일찍이 에서 볼 수 있던 컨셉이다. 또 다른 한 작품은 이다. 거대 괴물 카이주의 침략을 막아내고자 거대한 장벽을 쌓는 모습은 마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범상치 않은 작품 로 5년 만에 관객을 찾아왔다. 프레디(호아킨 닉스 분)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이다. 그는 분노의 임계치가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높다. 보통 사람이 대개 9나 10의 자극의 수준에서 분노가 폭발한다고 가정하면 프레디는 불과 2나 3의 자극으로도 불같이 화를 내는, 분노의 임계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다. 1950년대 미국의 자화상, 풍요 속의 불안이 영화 속 인물로 형상화된 인물은 프레디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승전국이자 유럽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선진국으로 도약한 미국이지만 그 가운데 찾아온 정신적인 불안까지는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상황. 이러한 미국의 현실은 전쟁 트라우마 때문에 전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투우장의 황
프로그램 명칭을 잘못 잡았다. 가 힐링을 표방하는 예능이지만 정작 시청자에게 치유의 공명을 가슴 깊이 울리는 프로그램은 라기보다는 가 가까우니 를 로 이름 지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의 큰 미덕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점이다. 우리 세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길 바라는 시대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서툴기 쉽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는 좋아하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데 서툴다보니 진솔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세대가 오늘의 세대다. 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되 진솔하게 들어준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의
이번엔 캐리비안의 해적이 뭍으로 올라왔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조니 뎁은 여전히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왕’이지만, 해적 선장이 아니라 인디언 톤토로 캐릭터가 바뀌어 어린 백인 아이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젊은 시절 자신이 론 레인저(아미 해머 분)와 겪은 모험담이 톤토 당대에만 머물지 않길 마음에서 백인 소년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론 레인저의 계보를 후대까지 이어가고픈 심정을 표현한다.톤토 캐릭터는 와 계보를 같이 한다. 어떤 차원인가 하면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 분)가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에게 네오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니라고 각성시켜주는 선각자적 계보 말이다. 속 톤토 역시 모피어스와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론 레인저의 목숨을 구해
제목 그대로 백악관이, 미국 대통령이 곤욕을 겪는 이야기가 담긴 버디무비다. 대통령 경호원을 지원하지만 탈락하고 빈손으로 귀가해야 하는 존 케일(채닝 테이텀 분)이 때마침 테러리스트에게 공략당하는 백악관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존마저 없었다면 대통령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직면하고 말았을 것이다. 존 케일은 ‘소모품’이다. 한때는 미국을 위해 전쟁에도 참여한 파병군인이자 은성훈장까지 받은 혁혁한 공로를 자랑하는 전직 군인이만, 지금은 대통령을 경호하는 자격에도 못 미쳐 집으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 소모품 말이다. 소모품이 위기에 빠진 백악관과 대통령을 구한다는 의 설정은 마치 에서 MI6에게 소모품 취급당하던 제임스 본드가 상
강철수 화백이 그린 수많은 만화 가운데 라는 작품이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과거의 이야기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뉴스가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사건을 전파로 방송한다면 그건 뉴스가 아니라 ‘예언’이다. 주인공이 갖고 있는 라디오는 평범한 라디오가 아니다. 내일 벌어질 사건을 미리 뉴스로 예언하는 라디오다. 라디오가 전하는 내일뉴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실제로 일어나니, ‘말하는 대로’ 실제 사건이 벌어지게 만드는 신기한 라디오가 아닐 수 없다. 도 마찬가지다. 지윤(이시영 분)이 그린 만화의 설정대로 사람이 죽어나가니 형사 기철(엄기준 분)이 제일 먼저 지윤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신이 그린 만화와 똑같
영화 는 독창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장미희가 주연한 TBC의 드라마 , 혹은 김혜수 주연의 동명 타이틀의 영화 내용과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호러물이다.지훈(이종수)은 친구가 사랑하는 현진(구지성 분)을 상담하다가 현진에게 성적인 호감을 갖고 매주 일요일 3시가 되면 지훈의 집으로 찾아오도록 그녀에게 최면을 건다. 최면에 걸린 현진이 정확하게 일요일 3시만 되면 지훈의 집으로 찾아와 지훈과 육체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은 를 아는 관객이라면 기시감을 느끼게 만드는 설정임에 분명하다.하지만 와 판박이처럼 닮기만 했다면 이는 리메이크에 불과했을 터, 는 라는 기본적인 이야기에 두 가지를 얹어놓는다. 하나는 현진의
최근 할리우드 배우들이 한국을 찾는 빈도가 다른 해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윌 스미스 부자의 방한이나 꽃중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방한에 이어 ‘빵오빠’ 브래드 피트가 얼마 전에 내한했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한국 방문 빈도가 느는 이유는 단 하나다.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브래드 피트가 방한한 이유 역시 본인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를 홍보하기 위해서다.는 미국 필라델피아만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이스라엘, 그리고 맨 처음에는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엔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은 한글로 된 ‘이십오’ 혹은 ‘리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영화에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유나 방한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증
지구라는 생태계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인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엄연히 인간의 착각이다. 강력한 태풍과 토네이도, 혹은 지진과 해일과 같은 대자연의 재해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하여금 생태계 피라미드 최상위층으로 착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가 잇다. 바로 바이러스다. 20세기 초반 스페인 독감은 무려 전 인류의 3%에 해당하는 목숨을 앗아갔다.는 좀비를 양산하는 바이러스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 디스토피아의 처참함을 묘사한다. 맥스 브룩스의 밀리언셀러 를 원작으로 만든 는 가족을 볼모로 원치 않는 곳으로 파견되는 UN 조사관 제리(브래드 피트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제리는 필라델피아에서 창궐한 좀비 바이러스를 피해 간신히 구조될
슈퍼히어로물이 대세인 시대,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에 이어 슈퍼맨도 리부팅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리부팅된 이번 작품은 자신을 배척하는 존재를 어디까지 용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슈퍼맨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있었다.크립톤 행성으로부터 날아온 외계인 클락(헨리 카빌 분)은 어려서부터 가공할 능력과 힘을 타고났지만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년배 지구인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상급생이나 건달쯤은 손가락 하나로 날려버릴 만한 가공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클락은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꾹꾹 눌러 담기만 한다.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클락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고향별인 크립톤 행성에서 날아온 조드(마이클 섀넌 분)와 손을 잡고 지구인에게 복수할 절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