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심야 음악 프로그램 '김정은의 초콜릿'이 2주년을 맞았다. 심야지만 출연하는 가수들이 알토란같아 즐겨보는 애청자가 많다. 특히 김정은의 지극히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일관된 진행방식이 악플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말없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예능인도 아니고, 본격 MC로 전업한 것도 아닌 김정은은 2년이나 했으면서도 여전히 낯설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런 김정은의 어눌한 듯하면서도 관객들의 반응에 아주 솔직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전달된다.

김정은은 2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특별한 무대를 만들었다. 백지영과 옥택연이 불렀던 '내 귀에 캔디'의 백지영 역할을 한 것이다. 상대역 옥택연과 함께. 요즘은 뜸한 편이긴 해도 한때는 눈을 뜨면 김정은이 보이던 때도 있었던 만큼 그녀의 비주얼은 화면으로만 봐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2주년이라 특별히 개방(?)적인 드레스를 선보인 김정은은 배우답게 열려진 옷을 구태여 여미거나 하지 않아 오히려 눈길 두기가 편했다.

김정은의 진행 장점은 그밖에도 많다. 그녀의 연기에도 그런 면들이 빠지지 않고 보였듯이 어눌해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으면서도 절대로 뒷걸음치지 않는 묘한 공격성이다. 같은 연예계라 해도 가수와 배우들의 영역이 달라 배우 김정은은 가요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 맹점이면서 동시에 장점이다. 모르다보니 김정은은 대본에 주어진 질문이나 멘트에 대해 절심함을 잘 싣는다.

여배우들의 일상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 역시 동시대의 사람이기에 가수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있을 것이다. 자기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배우의 기능이듯이 김정은의 질문은 그래서 참 실감나게 전달된다. 조금은 다른 듯한 에피소드지만, 지난 연말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당돌(?)하게 무대 막을 마련해달라는 요청을 해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여배우가 갖는 케리어로 어떤 출연자가 나오건 결코 바라지 않는 아우라가 있다. 그래서 망가짐과 우아함의 경계에서 균형감각을 잘 유지한다.

그러나 김정은의 초콜릿의 가장 큰 미덕은 감동이다. 2주년 기념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리쌍과 정인의 무대 전에 깜짝 쇼로 진행된 정인의 남자친구 소개 그리고 리쌍과 정인의 남다른 끈끈한 정을 보여주는 등 김정은의 초콜릿은 무대의 화려함에 가려진 사람으로서 연예인들의 향기와 매력을 과장 없이 전해준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연이 있을 경우라면 잊지 않고 그 감동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에 김정은이 진행을 할 때만 해도 그저 아름다운 여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했던 초콜릿은 이제 김정은을 따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MC밀착형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탓에 지난해 연예대상에서 배우가 아닌 MC로서 상을 받기도 했다. 배우가 아닌 MC로서의 김정은은 아직 말할 것이 아주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초콜릿을 진행하는 김정은을 보면 요즘 연기보다 MC로서 활약하는 김원희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 모두 매력적인 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가진 매력은 서로 다르다. 또한 심야 음악프로의 잔잔한 진행이 거친(?) 예능에도 무리없이 적용되기 어렵다. 그렇지만 갈수록 넓어지는 예능 프로그램에 정작 그것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너무도 중복 되서 채널 돌리는 의미가 상실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만일 본인만 작정한다면 기대를 해봐도 좋을 입담은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원희의 뒤를 이어 김정은의 MC로서의 영역을 넓히는 것에 대해 은근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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