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티비에 출연 못하며 생계에도 위협을 받는 소위 불우 연예인의 숫자가 2만 7천명인가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연예인은 요즘 들어 누구 부러울 것 없는 직업군에 당당히 올라섰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속에 한 비인기 개그맨의 가슴 아픈 굴욕이 벌어졌다. 누구나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 속에 오히려 소외되는 것은 동일 장르일 것만 같은 코미디언 혹은 개그맨들이다.

한국 예능계의 투톱 중 한 명이 공채 개그맨 출신이기는 하지만 실제 예능에서 활약하는 개그맨 출신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한도전만 놓고 봐도 현재 반반의 구성이며 하하까지 복귀한다면 그나마 50%의 비중도 깨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버라이어티의 출연을 개그맨으로 국한해야 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예능에 눌린 개그맨들의 위상이 간혹 안쓰러워질 때가 있다.

알래스카의 김상덕 씨를 찾아 나선 무한도전 유재석 팀은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 이제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결과를 또 다시 다음 주로 넘겨버렸다. 비싼 돈 들여 먼 곳까지 갔으니 3주 분량 빼는 것으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또, 지금까지 2주간 알래스카 팀이 거기서 거기인 반복적 영상으로 시간 때우기나 하고, 유재석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애초의 설정인지는 몰라도 번지 점프대에 올라간 박명수 팀의 지루한 모습도 다 그럴 수도 있고, 역설적인 재미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김재동이 온 후에 얼마쯤 지나고 mbc 개그맨 김경진이 가평에 도착했다. 선배인 박명수가 불러 경차를 직접 몰고 온 그는 미처 점프대에 올라가서 부른 사람 얼굴도 못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명수가 55m 위 점프대에서 설명하는 퀴즈를 1분 내에 다섯 개를 풀어야만 그곳에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을 미리 조건을 내걸었던 것은 아니다.

허나 문제가 심상치 않았다. 노홍철의 별명은 쉬웠지만 세계무역기구의 약자라던가 '노블레스 오블리쥬' 등의 문제로 인해 결국 김경진은 두 문제만 맞춰서 자격을 얻지 못했다. 악마 박명수도 그런 상황이 까마득한 후배 김경진에게 미안하고 민망했는지 평소와 달리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전편인 '죄와 길' 편에 이어 김제동을 볼 수 있어 반가웠지만 김경진의 굴욕에는 가슴이 아팠다.

문득 강호동을 불러서도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굳이 강호동까지도 필요 없다. 마치 이번 주에 나올 것처럼 예고를 했던 것과 달리 다음 주에 등장할 카라도 그렇게 문제를 맞춰서 올라오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절대로 아닐 것이다. 김경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가끔씩 무한도전에 얼굴을 내밀고, 하땅사에 출연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추노에서 뱃사공으로 까메오 출연을 했고, 최근 문제가 된 케이블 버라이어티 '박명수의 거성쇼'에도 출연했다.

지인들의 초청에 그를 부른 것은 분명 박명수와 친분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를 그렇게 돌려보낸 것은 부른 사람이나 돌아간 사람 모두를 난감하게 만든 일이었다. 그 장면에서 주변은 모두 웃었지만 박명수는 웃지 못했다. 웃기기 위해서 한 말인지, 진실인지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기름 값도 2만원밖에 없어서 3만원을 겨우 채워서 왔다는 김경진의 말이 더욱 가슴 아팠다.

설혹 이 모든 것이 웃기기 위해 설정된 것이라 할지라도 무한도전이 비인기인 개그맨을 함부로 대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설혹 제작진과 미리 말이 된 상태라 할지라도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힘없는 개그맨의 비애가 있었을 것이다. 쓸쓸히 돌아가는 좁은 차 안에서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무한도전은 분명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이다. 누구보다 호감을 주는 유재석이 있고, 괜히 정이 가는 박명수도 있다. 거기다가 김태호라는 개념 넘치는 프로듀서가 지휘하고 있다. 가끔씩 터지는 무한도전만의 기발한 발상과 신선한 도전에 감탄하고, 박수를 치게 된다. 때문에 비인기 개그맨인 김경진을 가볍게 대하고 멸시감을 안겨준 것은 의외였으며, 실망스러웠다.

무한도전은 부동의 예능 강자이다. 무한도전을 통해 여러 명의 스타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대단한 위력이다. 그러나 김경진을 그렇게 불러놓고는 굴욕적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무한도전의 매력은 권력이 되었다.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굴종케 하는 것이 바로 잘못된 권력이 폭력으로 변질되는 현상이다. 미리 양해 하에 했건, 리얼 예능답게 보이는 그대로였건 간에 무한도전은 힘을 남용했다. 그 잘못을 김경진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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