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대국민 약속을 내건 청춘불패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실천을 옮겨갔다. 다섯 가지 중에 첫 번째인 워낭소리의 약속 즉, 푸름이를 일소로 키우겠다는 것부터 실행했다. 푸름이를 일소로 키우겠다는 것은 기계화 영농의 흐름에는 반하는 것이지만 워낭소리에 대한 오마쥬로서 소 끄는 소녀(혹은 처녀)의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로 보여 진다. 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는 유치리에서 청춘불패 G7이 직접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분명 한계가 있다.

청춘불패의 다섯 가지 약속이 모두 본격 농사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은 취지와 지향의 문제일 뿐 그것을 정말 다하느냐 마느냐는 따질 수 없다. 진정성 혹은 리얼리티를 따진다면 청춘불패 제작진은 한 마디도 대답할 거리가 없다. 다만 청춘불패가 애초에 신 귀농일기라는 대전제 속에 시작했듯이 대국민 약속에 담긴 그들의 농사직설은 하나의 상징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푸름이의 일소 만들기는 또 다른 약속인 '공부하는 전문 농업인'이 되기 위해서 트랙터 등 농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우겠다는 것과도 사실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약속보다도 푸름이의 일소 만들기가 제일 처음 약속인 까닭은 그것이 농사에 대한 도시민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시각과 기대 때문일 것이다. 뉴스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농기계로 척척 해내는 그림으로 청춘불패가 원하는 감성은 줄 수 없다.

결국 푸름이를 통해 농촌에 대한 감성을, 기계화 영농을 통한 농사의 효율 두 가지를 동시에 노린 것이라 보여 진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다른 예능과의 차별성이 바로 감성이라는 부분이기에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며, 제대로 된 농사를 짓겠다는 다짐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기계를 활용하는 것 또한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마다 보고자 하는 것이 다르고, 보이는 것도 다르다. 21회 청춘불패는 써니의 눈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푸름이를 데려 오기 위해서 소똥을 치우는 일도, 그것을 손으로 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장본인은 써니였다. 게임을 통해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설정을 보였지만 그 후로도 푸름이가 써니를 잘 따르는 모습을 보여서 굳이 지분이라는 설정 없이도 푸름이는 자연스럽게 써니와 연결된다.

그리고 또 하나. 푸름이를 일소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일소가 아닌 경우의 소는 비육우로 2,3년 후에는 삶을 끝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소로 부리게 된다면 푸름이는 그 열배의 수명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푸름이를 일소로 만드는 것은 청춘불패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마도 청춘불패 시청자 대부분이 처음 봤을 소 코뚜레 장면이었다. 유치리의 해결사 로드리 삼인방이 역시나 출동했다. 유치리가 얼마나 외진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코뚜레 방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한편으로 반갑기도 했다. 앞으로 또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소 코뚜레 과정을 일부로라도 남겨놓고 싶다.
먼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막걸리를 한껏 먹인다. 그 다음에 고통에 소가 요동치는 일이 없도록 사방에 촘촘히 묶는다. 특히 머리 부분은 구유기둥에 단단히 묶어놓는다. 술기운이 돌았을 즈음 코 뚫는 기구로 머뭇거리지 않고 순식간에 꿇는다. 이때 흘러나온 노래가 참 적절하다. 강아지를 엄청나게 예뻐하던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좋아했던 양희은의 백구였다. 노래의 내용처럼 푸름이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노래의 느낌은 그때 써니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푸름이는 많이 아파하지 않았고, 출혈도 많지 않았다. 코를 뚫는 전 이장님의 솜씨가 아주 좋았던 것 같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은 처음 보는 신기 해 하는 모습이었지만 유독 써니만 처음부터 표정이 어두웠다. 말없이 과정을 지켜보던 써니는 등을 돌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신영이 달려가자 애기처럼 안겨서 흐느꼈다. 그런 써니에게 효민이 다가가 등을 토닥거리고, 태우는 삼촌이라도 된 양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도 보였다. 설혹 그것이 연출이었다 해도 따뜻한 의도라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써니의 눈물 그리고 몇 달 동안 유치리에서 함께 지내며 정을 쌓아온 가족 같은 친구들의 따스한 위로는 빵 터지는 웃음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었다. 언젠가 더 따뜻한 봄이 올 것이고, 그때쯤 푸름이를 한 손으로 끌고 아지랑이 유혹하는 봄 들녘을 걸어갈 써니의 뒷모습으로 워낭소리 들려오는 것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것은 작은 워낭소리 같은 풍경이 될 것이다. 참 정겹지 않은가?

지난주에 청춘불패는 우보천리라는 사자성어를 선보였다. 우공이산의 말과 거의 같은 말이다. 걸그룹이라는 출연진의 한계도 있겠지만 빵빵 터지는 웃음보다 이 우보천리의 자세를 택한 청춘불패는 우선 보는 사람에게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들이 다섯 가지 약속에 포함시킨 유기농 농산물처럼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착한 방송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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