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준상 기자] ‘제작거부’에 돌입한 MBC 아나운서들이 지난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사내에서 자행된 ‘아나운서 잔혹사’를 폭로했다. 쫓겨난 아나운서들의 복귀와 김장겸 사장 등 경영진·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의 퇴진이 ‘MBC 아나운서국의 정상화’의 시발점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방송출연·업무 거부에 돌입한 MBC 아나운서 27명은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상암 MBC경영센터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출연 방해·제지 등 아나운서 업무 관련 부당 침해 사례 등을 발표했다.

방송출연·업무 거부에 돌입한 MBC 아나운서 27명은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상암 MBC경영센터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출연 방해·제지 등 아나운서 업무 관련 부당 침해 사례 등을 발표했다.

지난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11명의 MBC 아나운서가 부당전보 됐고 지속적·상습적 방송출연 금지 조치를 받아왔다. 또한 최근 10개월 동안 방송출연에 배제됐던 김소영 아나운서가 사표를 던지는 등 총 12명의 아나운서들이 MBC를 떠났다. 사측은 그 자리에 비정규직 신분인 11명의 계약직 아나운서를 채웠다.

김범도 MBC 아나운서협회장은 이날 “영상기자들의 ‘블랙리스트 문건’이나 고영주 이사장의 속기록 같은 물증이 확보되지 않았을 뿐, 가장 심각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자행된 곳이 바로 아나운서 국”이라며 “김 사장 등 현 경영진과 신 국장이 저지른 불법·위법 행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반드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사장 등 경영진과 신 국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나운서들은 국 안팎에서 자행된 사측의 블랙리스트 행위, 부당노동행위 등을 폭로했다.

신동진 아나운서는 파업 이후 사회공헌실로 부당전보 됐으나 법원의 무효 판결을 받고 2013년 4월에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제 15대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회장을 맡게 됐다. 신 아나운서는 당시 경영진이 아나운서협회가 발행하는 아나운서 저널에 최승호 해직PD와 박원순 서울시장·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등의 인터뷰가 실린 것에 불쾌한 입장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신 아나운서는 “당시 경영진들이 왜 하필 박 시장과 손 사장을 인터뷰했냐며 불쾌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두 명의 인터뷰에는 어떤 정치적 내용도 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신 아나운서는 2014년 4월 아나운서 직과 전혀 관련 없는 주조정실 MD로 발령 받게 됐다. 신 아나운서가 ‘부당전보를 낸 이유’에 대해 묻자 신동호 국장은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 아나운서는 “회사는 부당전보자들의 발령지 기준은 ‘그 사람이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며 “김 아나운서협회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스케이트장 관리인가”라고 되물었다.

신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잔혹사의 중심에 있는 신 국장은 아직까지 아나운서들의 부당전보·퇴사와 관련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무려 5년 동안 국장으로 있었다”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동료 아나운서들을 팔아치운 신 국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퇴사한 12명의 아나운서들이 ‘이번에는 꼭 승리해달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그 시작은 신 국장의 사퇴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 MBC 아나운서협회와 기자협회가 지난 2012년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2012년 파업 전까지 <뉴스데스크>와 <뉴스투데이> 등 MBC의 메인뉴스에서 앵커를 맡아왔던 손정은 아나운서는 “지난 5년 간 방송업무에서 거의 제외가 됐었고 ‘아나운서’라는 명칭을 쓰지 말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밝혔다. 손 아나운서는 “어느 날 그나마 진행하고 있던 저녁 라디오 종합뉴스마저 내려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후 임원회의에서 모 고위직 임원이 ‘손정은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고 그 때문에 라디오에서 하차하게 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날 그 고위직 임원과는 마주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손 아나운서의 잔혹사는 그 이후에 본격화됐다. 손 아나운서에 따르면 드라마 <몬스터> 제작진이 앵커역으로 짧게 출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신 국장이 ‘손정은 말고 다른 출연자는 없냐’면서 가로막았고, 라디오국 제작진이 DJ로 추천하거나 방송 PD들이 MC자리를 제안해올 때마다 신 국장은 이를 무산시켰다. 지난해 4월 손 아나운서가 사회공헌실로 돌연 발령되던 날 신 국장은 발령 공고가 뜨기 직전에 자리를 비웠고 아나운서들이 짐을 싸서 부서 이동을 할 때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손 아나운서는 “이것은 비단 아나운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MBC본부 조합원들이 겪은 일”이라며 “이같은 불행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MBC 정상화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MBC를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의 동기 이재은 아나운서는 “제 동기는 실력 있는 아나운서였다. 하지만 <뉴스투데이>에서 하차한 이후 지난 10개월간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섭외가 들어왔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배제됐고 떠밀리듯 퇴사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는 “선배들이 쫓기듯 회사를 떠나고 또 마이크를 빼앗기는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과 패배감 때문에 괴로웠다”며 “계속해서 (부당전보·퇴사가)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다음은 나일까. 옆자리에 있는 선배님일까’ 두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더 이상 겁내지 않고 MBC 아나운서들이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올 때가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MBC 아나운서 27명은 지난 17일 총회를 열어 파업을 결의한 데 이어, 이날 오전 8시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하지만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을 포함한 8명의 본부노조 비조합원들과 11명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동참하지 않았다. 허일후 아나운서는 ‘제작거부에 동참하지 않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에 대해 “그 친구들도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며 “조합이나 직능단체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불안한 신분인 계약직 아나운서를 뽑아, 아나운서들 사이를 갈라놓는 경영진이 거악”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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