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협박’을 한다. 아니 이 말은 잘못됐다. 삼성이 중앙일보를 통해서 ‘협박’을 한다는 게 좀더 정확한 표현이다.

중앙일보는 오늘자(5일) 8면에 이런 기사를 실었다. <삼성 “내년 23조 투자 특검 뒤로 보류”> 기사 내용을 짐작하는 일, 별로 어렵지 않다. 대충 추리면 이렇다.

△김용철 변호사의 의혹 제기에서 시작된 비자금 파문이 계열사 압수수색, 주요 사장단 출국 금지, 검찰의 특별수사와 특검으로 이어지면서 삼성의 경영 차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고 △애초 2008년에 연구개발(R&D) 투자를 포함해 총 25조원의 투자 계획을 세웠는데, 일부를 제외하곤 연기될 가능성이 크며 △상당수 계열사 사장들이 출국 금지 조치로 발이 묶여 버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현지에서 최종 면접을 통해 뽑는 수퍼급 인력 영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중앙일보 12월5일자 8면.
그래서 ‘삼성특검법’ 하지 말까

중앙일보가 전한 ‘경영 차질 우려’는 대기업 비자금이나 총수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나온 ‘단골 메뉴’라는 점에서 별로 새롭진 않다. ‘투자계획 유보’ 역시 노조 파업이나 정부에 대한 불만이 발생할 때마다 등장한 매뉴얼 가운데 하나다. 생산공장 해외이전과 같은 종류인데 이보다 좀더 ‘세련된 협박’으로 보면 된다. 그나마 새로운 게 ‘수퍼급 인재 영입 차질’인데 속내가 너무 뻔히 보인다. 출국금지 해제하라는 소리를 참 어렵게 한다.

‘삼성특검법’이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다음날인 오늘(5일), 이 기사는 중앙일보에만 실렸다. 묘하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제목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내년 23조 투자 특검 뒤로 보류”. 차기 정권을 누가 잡을지 모르겠지만 골치 좀 썩게 생겼다. 이런 식으로 대놓고 ‘협박’을 하고 있는데 특검을 제대로 진행시킬 수 있을까.

사실 중앙일보의 이 기사는 삼성의 ‘홍반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어디선가 삼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금 여파 때문에 삼성이 어려워지고 그래서 막대한 투자도 유보한단다. 그거 국가적으로 손해인데 그거 좀 안하면 안되니?’라는 ‘코드’가 중앙일보 기사에 집약돼 있다.

‘촌티’ 나는 협박은 이제 그만

▲ 경향신문 12월5일자 31면.
중앙일보의 이 기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칼럼’이 한신대 이해영 교수가 오늘자(5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삼성특검과 국가신인도>다.

이 교수는 “1980년대의 간첩단 조작이 군부에 의한 국가 테러의 결과물이라면, 2000년대의 국가신인도는 재벌에 의한 담론 조작의 산물”이라면서 “외환위기 당시 국민들은 국가신인도를 그 무슨 하늘의 심판처럼 여겼지만 이제는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누가 국가신인도를 들이대며 협박을 하더라도, 이를 그저 ‘촌티’ 정도로 받아넘기는 법도 배워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이 법칙만은 잊지 말자. ‘어디선가 재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국가신인도!’”

정리하면, ‘자꾸 이러면 우리 투자 안한다. 그럼 국가신인도에도 타격 입어’라는 ‘협박’ 자체가 재벌 위기대응 매뉴얼이 됐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다. 그리고 실제 이런 주장은 그동안 하도 많이 나와서 ‘면역’될 시점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데 삼성은 여전히 그 효력에 대해 ‘맹신’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에 ‘측은한’ 감정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좀 식상한 감이 없지 않을 텐데, 아직도(!) 이런 종류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세련된’ 느낌의 중앙일보에서 유독 ‘촌티’가 난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삼성 관련 부분이다. 중앙일보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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