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형래 기자] 고 김광일·박환성 PD의 죽음으로 촉발된 외주제작 문제에 대해 독립PD협회가 ‘불공정 행위 청산’ 결의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20년 넘게 방송현장에서 일한 익명의 독립PD가 나와 EBS뿐 아니라 KBS에서도 독립PD들이 프로그램 제작비로 받은 정부기관지원금을 ‘송출료’로 떼 가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 A 독립PD는 “KBS와 맺은 두 건의 불공정 계약에 대해 폭로하고자 한다”면서 “정부기관으로 받은 지원금 가운데 한번은 40%, 또 한번은 25%를 송출료 명목으로 떼였다”고 밝혔다.

A 독립PD는 “정부 기관에 입찰해서 계약을 따내면 제작하기에 앞서 정부기관과 KBS를 연결해 줘야 한다”면서 “그러면 지원금 전액이 KBS 입금된다. 그 후 내가 KBS와 외주계약을 맺는다”고 말했다.

A 독립PD는 “내게 주어지는 제작비는 KBS가 일방적으로 책정한다”면서 “내가 따온 사업인데 KBS와 협상도 못하고 알아서 주는 대로 받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A 독립PD는 “따로 정해진 게 없다”며 “KBS가 (송출료로) 25%를 가져갈 수도 있고, 30%, 40%를 떼 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A 독립PD는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면서 신분이 드러날 경우 방송사로부터 받을 보복을 우려했다. 사회를 맡은 복진오 PD는 “KBS와 두 개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2개 프로그램을 모두 놓치면 일 년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신분 노출 금지를 거듭 당부했다.

또 다른 독립PD는 EBS 외주제작국 내에서 벌어진 ‘감금, 협박’에 대해 폭로했다. B 독립PD는 지난 2015년 외주제작사에 재직해 EBS ‘세계테마기행’을 제작할 당시 EBS 외주제작국 Y부장과 K팀장이 자신을 EBS내 한 사무실에 가두고 자신이 소속된 외주제작사 내부 문제를 추궁 당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B 독립PD는 눈물을 흘리며 풀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Y부장 등은 이 같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며 풀려나온 이후로도 4주간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쇠약해졌다고 회고했다. 지난 B독립PD는 8월 이 문제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B 독립PD는 감금과 협박을 당한 이유를 묻자 “당시 Y부장과 친밀한 제작사가 이 프로그램을 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독립PD협회와 시민단체가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공동 행동 선언'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독립PD협회는 언론시민단체, 김경진·추혜선 의원과 함께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공동행동을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독립PD들과 방송사 비정규직 생존의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제도개선을 하기 위해 국회와 정치가 큰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김경진 의원과 이 자리에 있다”면서 “생태계 차원의 대안을 마련하는 길을 뚫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추혜선 의원은 “독립PD들의 문제를 갑을관계나, 불공정 거래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면서 “독립PD 생존권의 문제, 상생의 문제로 접근해야 김광일·박환성 PD의 유지를 잇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방송 산업이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과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거치면서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비용도 지불하지 않는 점에서 이번 일이 생겨났다”면서 “방송계 문제와 함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진 의원은 “두 명의 생명과 열정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최종적인 해결점을 찾아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얼마만큼 노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두 PD 죽음으로 우리가 눈감고 외면했던 현실을 맞닥뜨리게 됐다”면서 “현재의 참혹한 제작현실은 불공정 거래의 문제만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처장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추진하고 있는 ‘외주제작 실태조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처음부터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동찬 처장은 “비참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실태조사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당사자를 찾아야 한다”면서 “형식적인 실태조사를 한다면 파행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김동찬 차장은 “실태조사 설계단계부터 당사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방송현장을 지키는 최약들의 목소리가 외면 받아서도 홀대 받아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기현 PD연합회장은 “단순히 방송사 내 불공정 거래의 문제만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면서 “방송사와 독립PD라는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갑을 관계로 인한 인권유린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오기현 협회장은 “지상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방송시장 불공정 거래 관행에 관한 고발센터를 독립PD협회와 같이 운영하려고 한다”면서 “구조적인 관행을 개선하는 문제를 떠나, 사회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불합리를 걷어내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기 독립PD협회 방송 불공정 청산 특별위원장은 “박환성·김광일 PD는 7월 31일이 귀국예정일이었다. 두 PD는 일정보다 빨리 귀국했지만 말을 못했다”고 말했다.

최영기 위원장은 “어제(15일) 외주제작사 성명이 나왔다. 거기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권이 빠졌다”면서 “외주제작사 노사관계는 70년대 피복공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는 독립PD들이 자신의 카메라를 전시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카메라에는 모두 파란리본이 달렸다. 빙 둘러싼 독립PDP들의 카메라 가운데는 고 김광일·박환성 PD의 부서진 카메라가 자리했다. 남아프리카에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카메라만 돌아왔다는 뜻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다.

최영기 위원장은 “이 상징은 두 피디의 유지를 우리 독립PD들이 받들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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