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문화연대의 스포츠 중계권 토론회는 근래에 이렇게 기자들이 많이 모인 토론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지상파 방송3사의 카메라가 모두 모였고, 전국신문 기자들도 많이 보였다. 미디어 전문지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기자들이 취재한 만큼 많이 보도됐다. 이 가운데 KBS의 기사가 유독 눈에 띈다. KBS 기사의 절묘한 편집과 내용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KBS는 이날 9시뉴스에서 “SBS가 월드컵까지 단독중계 의지를 내비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오늘 열린 토론회에서도 걱정과 비난이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또 “SBS는 '동계올림픽 독점 중계에 별 문제가 없었다', '특히 시청자들이 스포츠만 보지 않아도 돼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며 “시민단체들은 지상파 3사가 코리아풀을 복원해 함께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도출해 낼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 9일 KBS 9뉴스 화면 캡처

그러나 이 같은 보도는 토론회의 분위기와 큰 차이가 있다. 기자는 SBS가 동계올림픽 독점 중계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평가한 것처럼 전했지만 SBS의 주영호 정책팀 연구위원은 “SBS가 잘했다고 말씀 드리는 것 아니다”며 독점중계에 대한 비판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 KBS가 “토론회에서 걱정과 비난이 쏟아졌다”며 시민단체의 비판이 마치 SBS에만 집중된 것처럼 보도했지만,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SBS만큼이나 KBS와 MBC의 태도를 질타했다. 양문석 총장은 KBS와 MBC가 동계올림픽의 보도를 포기한 것과 관련해 “언론으로서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며 “KBS와 MBC가 중계권 이전에 취재와 보도를 먼저 이야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발제자인 이영주 연구원과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가 중계권 논란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양문석 총장은 “중계권은 명백한 사유재산이다.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큰 영역이기 때문에 중계권이 사유재산이라고 하나 공적 통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며 직접적인 개입을 경계했다.

입맛대로 코멘트 추출

중간의 말을 잘라내고 전달하면 전혀 다른 의도로 들리는 경우가 있다. KBS 보도는 이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SBS 주영호 연구위원의 발언이 본래 뜻과 전혀 다르게 해석돼 인용됐다.

KBS는 보도 첫머리에 “지나친 스포츠이벤트에 대한 관심 집중은 오히려 다른 사회적 의제에 대한 관심을 폄하할 수 있다”는 주영호 연구위원의 발언의 일부를 인용해, “SBS는 동계올림픽 독점 중계에 별 문제가 없었다며 특히 시청자들이 스포츠만 보지 않아도 돼 긍정적이라고 주장 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주영호 연구위원은 발제자인 이영주 수석연구원이 제안한 방송통신위 산하의 '미디어 스포츠위원회'에 대해 정부가 스포츠 행사의 중계권을 조율하면 지상파 방송이 다른 사회적 의제에 대한 관심이 폄훼되어 “과도한 스포츠 네셔널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KBS가 뽑아낸 주영호 연구위원의 발언은 과도한 스포츠 내셔널리즘을 원론적인 설명의 일부분 인 것이다.

<스포츠 중계권 분쟁> 토론회에서 온, 그것도 독점중계로 가해자 마냥 질타를 받을 수 있는 토론자가 KBS의 보도와 같이 “시청자들이 스포츠만 보지 않아도 돼 긍정적"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SBS측을 악역으로 만들어 보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영호 연구위원의 또 다른 발언도 인용방식과 해석에 있어 문제가 있다. 주영호 연구위원은 토론회에서 타 방송사의 비판과 여론몰이를 경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청자를 방패삼아 자사 입장을 포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비즈니스는 상대가 거절할 수 있는 그 뭔가를 제시하는 것이 비즈니스다. 욕하고 강제하고 하는 게 비즈니스가 아니다. 지상파 방송의 비즈니스는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 책무, 정당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이익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비즈니스여야 한다”

여기에서 KBS는 “비즈니스는 상대가 거절할 수 있는 그 뭔가를 제시하는 것이 비즈니스다. 욕하고 강제하고 하는 게 비즈니스가 아니다”라는 발언만 뽑아놓고 “SBS는, 오는 6월 월드컵 독점 중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 우려를 자아냈다”고 해석했다. 전형적인 아전인수식 보도행태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주영호 연구위원은 다시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 자신이 앞서 말한 ‘비즈니스’라는 말이 언론에서 곡해될 수 있음 경계해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비즈니스’란 말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기사 쓰시는 분들께 정중히 부탁드린다. 앞서 말한 단순히 비즈니스는 돈벌이의 문제가 아니다. 지상파가 가진 사회적 문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상대의 자존심을 배려할 때, 협상이 되고, 협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취재한 KBS 기자는 토론회 말미, 주영호 연구위원에게 “독점중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수차례 되풀이 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사회자가 우스갯소리로 ‘오너가 아니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기자를 만류해 넘어갈 수 있었다.

KBS 기자의 질문이 있기 전, 주영호 연구위원은 “신의와 성실이 복원되어 지상파 사업자들과 같이 중계할 수 있으면 된다”고 밝혔다. KBS 기자는 다른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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