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40여명 중 20여명이 파업 이후 그만두거나 타부서로 배치됐다. 모두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자 MBC의 얼굴들이었다. 지난 5년간 이들은 철저하게 방송에서 배제됐다. 방송을 못하게 막는 것은 아나운서의 생명을 빼앗은 것”(박경추 MBC 아나운서)

“2001년 입사 이후 지난 10년 간 취재·방송만을 해왔는데 지난 5년간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했단 이유로 사측이 ‘블랙리스트’ 최상단에 내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배제된 것이다. 이는 엄연한 범법행위다”(김수진 MBC 기자)

[미디어스=이준상 기자] 지난 2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MBC 새 사장 면접을 실시하면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소속 기자와 아나운서, PD들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노조 MBC본부가 지난 2월23일 열린 방문진 임시 이사회 속기록을 입수해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폭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5년간 업무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던 박경추 아나운서와 김수진 기자가 참석, ‘MBC판 블랙리스트’의 피해 사례와 소회를 밝히며, 방문진 이사회 및 MBC 경영진에 대한 철저한 법적 처벌을 촉구했다.

박경추 아나운서는 파업 전 <출발!비디오 여행> 진행자, <MBC 저녁뉴스> 앵커, <MBC 이브닝 뉴스> 등을 거친 MBC의 간판 얼굴이었다. 하지만 파업 이후 곧바로 대기발령을 받았고 이른바 ‘신천교육대’(MBC아카데미), 성남지사 등에서 아나운서직과는 전혀 상관없는 교육을 받거나 업무를 받고 ‘유휴인력’이 됐다. 이후에 법원에서 원직복귀 명령을 받아 아나운서국에 잠시 복귀했지만 현재 3년째 라디오국에서 일하고 있다.

박 아나운서는 “제가 다른 조합원들에 비해 특별히 큰 피해를 본 건 아니다. 저는 상당히 평범한 수준”이라며 “파업 전 40명이 조금 넘었던 아나운서들 중 2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만두거나 타부서로 배치됐다”고 밝혔다. 그는 “다들 방송을 잘하고 MBC의 간판 얼굴들이자 큰 자원이었다”면서 “아나운서에게 방송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나운서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아나운서는 “MBC경영진은 아나운서국을 철저히 망가뜨렸고 그 자리에 2년 계약직 11명의 아나운서를 채웠다”면서 “그들도 저의 후배이지만 계약직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들은 노조 가입은 물론 직능단체인 아나운서 연합회에도 가입 못하고 있다. 사측이 노리는 건,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방송하는 방송인을 키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아나운서는 “소위 ‘블랙리스트’로 찍힌 아나운서들은 담당 PD와 얘기가 되더라도 ‘위에서 안 된다고 했다’, ‘국장이 안 된다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방송에 나가지 못했다. 다들 늘 ‘그 위가 누구일지 궁금해 했다’, 상식적으로 본부장이나 부사장쯤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공개된 속기록을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면서 “공영방송 MBC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게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MBC 박경추 아나운서와 김수진 기자.

김수진 기자는 2001년 MBC에 입사해 사회·경제·정치부를 거쳐 <뉴스투데이>와 <뉴스24> 등 요직을 거친 기자였다. 하지만 파업 당시 주요일간지 1면에 김 기자가 피케팅을 하는 모습이 담긴 기사가 나갔고, 이후 철저하게 뉴스 제작부서에서 배제됐다. 김 기자는 파업 이후 대기발령을 받아 경인지사 및 인천지국을 거쳐 드라마 마케팅부에서 드라마 홍보 콘텐츠를 제작했다. 김장겸 사장 취임 이후 구로에 위치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발령 받았다.

김 기자는 “지난 파업 때 일간지 1면에 피케팅 사진이 난 이후 사측이 저를 ‘적극적 노조 가담자’로 분류해 제게 블랙리스트 최고 등급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구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에 대해 “사무실엔 책상과 복합기 한 대만 있다. 일반적인 방송사 사무실이라고 상상하면 안 된다”면서 “다큐 제작 지시를 받긴 했지만 예산도 없고 취재 장비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인사발령 받은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는데, 속기록에 나온 권재홍 당시 부사장과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을 통해서 그 이유가 드러났다”며 “그 이유는 단 하나,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활동을 했단 이유로 5년 동안 부당한 인사를 낸 것”이라며 “MBC 안에는 100여명이 넘는 범법행위의 피해자가 존재한다. 엄연한 위법행위기 때문에 적법하고 엄중하게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 장준성 MBC본부 정책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취임 이후 조합에 가입하거나 파업에 참여한 아나운서 거의 전원이 현업에서 배제됐다. 이는 블랙리스트가 작동한 증거”라며 “관련 증거와 진술을 설명할 자리를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신 국장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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