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타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은 엔딩컷.

파스타 마지막 회 리뷰를 쓸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말았다. 19회 리뷰 초두에 어쩌면 마지막일 거라는 말을 쓴 것처럼 사실 파스타 최종회는 별 것 없었기 때문이다. 파스타 본방이 끝나고 한참 동안을 그동안 붕셰 커플의 오골씬들을 붙여서 내보냈다. 그렇게 보니 몇 분이면 후딱 해치웠을 것을 석 달이나 끌어왔고, 낚시 바늘에 코 꿰인 것처럼 끌려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까지 밀당의 서숙향을 만나고 싶었지만 결과는 "옛날 옛적 ...행복하게 살았드래요"정도였다. 실망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맥이 풀렸고 싱거웠다. 느슨한 예상 범위 내에 있었던 결과지만 사람이 늘 그렇듯이 알면서도 섭섭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리뷰를 쓰기 전에 그동안 파스타에 대해 쓴 글을 세어보았더니 총 15편이었다. 워낙에 한번 출고하고 나면 다시 안보는 습관 때문에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만 봐도 지독한 파스타 빠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기계적 형평이라는 유혹에 빠져서라도 비판도 좀 할 법한테 파스타에 대해서는 유독 앞뒤 못 가리고 좋아라를 연발했던 것이 지나고 보니 슬그머니 부끄럽기도 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파스타 관련 두 번째 포스트는 의도적으로 최셰프에 대한 호의적 글을 썼다. 파스타가 초기에 이선균은 많이 위태로웠다. 발음 문제가 그랬고 거친 대사로 인해 논란이 되었다.

▲ 해피엔딩 속 가장 인상적인 장면

그러나 어찌어찌 초반의 고비를 넘긴 파스타는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월요병을 이긴 또 다른 월요병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하나 끝나는 것이 마치 오래 사귄 친구 떠나보내는 심정이 들기란 쉽지 않다. 워낙에 정 많은 민족이라 항상 헤어짐에 익숙지 못한 것은 잘 알지만 파스타 게시판은 파스타홀릭들의 눈물들로 장화가 필요할 지경이다. 아무래도 여성팬들의 표현이 많기는 하지만 말 않고 묵묵히 공효진을 더 못 보는 속상함에 소주병 꽤나 눕혔을 남성들 또한 많을 것이다.

파스타는 결과적으로 모두 행복해졌듯이 남녀 주인공 모두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선균이 초반에 아슬아슬 했으나 지지 않는 뚝심으로 버럭 셰프의 카리스마를 굳혔고, 결코 이쁜 배우 상위에 랭커 되지 못할 공효진은 필살의 연기와 귀여움으로 한국의 여신들을 밀쳐냈다. 글래머병에 걸린 한국 남성들에게 공효진 같이 슬림한 배우가 단지 연기력만으로 어필한 것은 의외의 결과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여성 팬이 더 확보된 듯싶다)

공효진, 이선균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버럭 이선균은 쉴 틈 안주고 유경을 단련시키면서 모든 여성 시청자들을 그 뒤에 세워버렸다. 김산이라는 대단히 멋진 사내가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유경이 그랬듯이 여성 시청자들은 모두 "예 세프"를 따라 했다. 그런가 하면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은 여리여리 한 몸매로 슬퍼도 외로워도 울지 않는 공효진은 셰프 최현욱을 조련하면서 동시에 남성 시청자들을 녹여버렸다.

▲ 옹서가 술에 취해 쓰러진 상황. 어처구니없지만 이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이 심각한 남녀 시청자의 빙의 현상은 티비 밖 현실 커플들에게 많은 힘이 된 것 같다. 연애를 하고 있거나 했던 기억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법의 조심성, 어떻게 보면 좀 구닥다리의 방법에 솔깃하게 만들었다. 파격적이거나 폭발적인 반향이 없었지만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파스타는 20%의 인구에게, 연애라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포기 못할 남녀 공동의 화두에 해답 하나를 남겼다.

파스타 20회의 피날레는 붕셰커플이 처음 만났던 그 자리였다. 우연이 숙명이 된 케이스의 강남 어디쯤의 횡단보도. 거기에서 붕셰커플은 그동안 오래도 참아왔던 진한 키스를 나눴다. 그것도 붕어가 먼저 달려든 키스였다. 감독이 오죽 많이 시켰을까 만은 왠지 그들의 진정성도 보이는 것 같았다. 둘 다 임자 있는 몸들이지만 역할을 할 때의 배우는 자기 것이 아닌 탓에 진정이라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비록 깊은 프렌치 키스는 아니었지만 차가 언제고 달려올 수 있는 도로 위의 거리낌 없는 키스는 사실 연애하는 사람들의 오랜 공상 중 하나이며, 영화적 키스의 전형이기도 하다. 붕셰의 마지막 키스는 정찬의 마지막을 달콤한 디저트로 끝내는 것처럼 지난 20회의 파스타와 붕셰커플의 연애를 잘 마무리하게 해주었다.

▲ 진작 좀 하지 하면서도 그만큼 아껴서 예뻤던 붕셰의 전격 입맞춤

그 장면을 보고 잠든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꿈속에서 각자가 바라던 어떤 키스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천지를 덮은 때늦은 대설에 놀라기보다는 마치 현실이 영화가 된 듯, 어젯밤 꿈이 계속 이어지나 싶은 상쾌한 아침을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이내 하나의 잊지 못할 월요일 밤의 습관 하나가 떠났음에 잠시 멍해질 수도 있다.

파스타를 통해 많은 배우들을 만났다. 그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막내 은수와 설네모이다. 우결 알신의 모습에서 크게 바꿀 필요 없지만 막상 더 깊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김산 역의 알렉스도 처음에는 불안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결과적으로는 배우로 계속 해도 좋지 않겠나 할 정도로 성숙해졌다. 짐승남의 득세 속에 묻힐 수 있는 잔잔한 케릭터를 나름 잘 지켜내 종반을 빛내주었다.

오세영 역의 이하늬는 아주 못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업배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훈남 해외파와 찌질하지만 우리랑 닮은 그들 국내파 요리사들도 있다. 막내 은수만큼 분량을 주었다면 분명 더 재미있었을 해고 3인방도 다른 작품에서 만나기를 기다리게 하는 배우들이다. 조연의 서포트 없이 잘되는 드라마는 없다. 붕셰의 성공에는 이렇듯 많은 조.단역들의 오랜 기다림이 거름이 되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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