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형래 기자] 전화 통화 녹음도 상대방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에 대해 사단법인 오픈넷이 “입법을 빙자한 횡포”라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이런 개정안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이나 제안이 없다”며 “취지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면서 국민 기본권을 마구잡이로 침해하려는 것은 입법을 빙자한 횡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은 지난 7월 20일 “개인 사생활을 보다 엄격히 보호하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 시 자동으로 '찰칵' 하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통화중 상대방이 녹음 버튼 클릭 시 자동으로 안내멘트, "상대방이 녹음 버튼을 클릭하였습니다"를 송출해 통화 참여자가 자율적으로 녹음 유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지난 9일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은 김광림 의원이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을 ‘통화 녹음 알림법’이라고 이름 짓고 ‘이달의 법안’으로 선정해 중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지난해 12월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최순실의 증언 조작 지시 의혹이 담긴 녹취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픈넷은 김광림 의원이 입법안에서 ‘미국에서는 워싱턴 DC와 뉴욕, 뉴저지 등 37개 주에서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통화를 녹음할 때 대화 당사자 모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주는 12개에 지나지 않고 캘리포니아의 경우 대화 내용이 범죄 사실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상대 모르게 녹음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오픈넷은 “통화 녹음 때 상대에게 이를 통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두 번째 근거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쓸 때 촬영 소리가 나게 했다는 것”이라면서 “이는 외국 사례를 들며 개정안의 정당성을 내세운 첫 번째 주장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외국에서 스마트폰 촬영 소리를 의무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오픈넷은 “촬영 소리가 나도록 한 근거는 법률이 아니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가 정한 법적 구속력 없는 ‘촬영음 표준(TTAK.KO-06.0063/R1)’”이라며 “권고 사항을 사례로 들며 유사한 법적 강제를 합리화하려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픈넷은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금하는 개정안은 대화 당사자의 녹음할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 부조리를 밝히고 범죄를 드러내는 과정, 특히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 그리고 약자가 강자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에 근본적인 장애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오픈넷은 “한국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통화 녹음 공개는 여러 차례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서 “만일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였거나 상대가 알아채도록 되었다면 권력 구석구석에 스며있던 부패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픈넷은 “자유한국당은 법안 발의 뒤, 이 개정안을 '이 달의 법안'으로 선정해 집중 추진하기로 했다”면서 “지난 국정 농단 사태에서 통화 녹음을 비롯한 여러 디지털 증거물로 인해 뜨거운 맛을 본 세력이 이제 그러한 일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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