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가 개막한 이후 누구나 염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에서 차량 돌진으로 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현지시각 12일 미국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 모인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최대 6천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은 더 이상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하켄크로이츠와 “피와 대지(blood and soil)”, “유대인은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네오나치의 구호도 등장했다.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안 우파(alt-right)’로 지칭되는 이들이 갖는 혐오 정서는 전통적으로 백인 주류가 적대한 모든 인종 및 집단에 제각기 적용되므로 하나로 단정 지어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날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는 미국의 오래된 트라우마인 ‘남북전쟁’을 명백히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의 동상 철거가 ‘궐기’의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돌진한 차량에 한 시민이 부딪히는 모습. (AP/연합뉴스)

당시의 내전은 임금노동자를 원하는 북부가 노예에 기반 한 생산력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남부를 경제적으로 압도하는 상태에서 ‘노예제 반대’라는 정치노선으로 뭉친 공화당이 집권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로버트 리 본인은 분명한 정견을 갖추지 않은 귀족적 인물이었으나 단지 자신이 당시 연방 탈퇴를 결정했고 노예주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버지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남군에 가담하는 선택을 했다.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 상태였음에도 남군은 북군에게 밀리지 않았는데, ‘기인’에 가까웠던 율리시스 그랜트가 뒤늦게 북군 사령관이 되고 나서야 승부가 결정지어졌다. 이때 비록 패장임에도 품위 있는 태도를 잃지 않았던 로버트 리의 모습은 역사화 돼 미국 곳곳에 여러 상징물로 남았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 시기에 ‘정치적 올바름’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사회문화정책이 시행되고 이 결과로 ‘인종주의’를 연상케 하는 과거 남부연합의 관련 상징물들이 철거되거나 이름이 변경되면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피해의식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러스트벨트’로 대표되는 경제적 위기와 ‘오바마케어’ 등 사회보장정책 일부의 사각지대 문제까지 덧붙여지면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단행동이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한 마디로 ‘역차별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배려가 과해 원래 미국의 주인인 자신들이 지나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란 슬로건은 이런 ‘역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편(many sides)에서 나타난 증오와 편견, 폭력의 지독한 장면을 최대한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며 사실상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을 비켜가자 이들의 이런 믿음과 충성심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 피해의식의 연원을 찾기 위해서는 내전 이후 남부 재건 문제를 둘러싼 논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북부 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연방에 반기를 든 남부 주들은 ‘반란세력’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남부연합 가담자들은 노예제를 폐지해 남부의 경제를 박살내려 한 북부의 음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생각했다. 공화당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남부 주의 연방 재가입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됐으나 링컨이 암살되면서 급진파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들의 주장은 남부 주의 연방 재가입은 노예제 폐지를 핵심을 하는 새로운 제도에 동의하고 남부인들 스스로 남부연합에 가담한 자들을 정치적으로 불능화시켰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부 주는 남부연합 가담자들을 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부당하게’ 박탈당한 권리를 되찾으려 했다. 이 결과는 남부 주에 대한 공화당 정권의 강압적인 군정 통치였다. 이 상황은 1877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논란 종식을 위해 공화당 정권이 군정을 포기하고 민주당의 남부 주 재장악을 방조하기로 할 때까지 계속됐다. 즉, ‘재건’은 미완으로 끝났다.

이 역사적 사실을 전제하면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로버트 리의 동상 철거가 어떤 의미로 이해됐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들에게 동상 철거는 또 다른 의미의 ‘재건’이고, 이는 곧 ‘인종차별금지’라는 대의로 무장한 ‘기득권’에 의해 다시 한 번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왜곡된 세계관 속에선 어떤 종류의 ‘저항’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원한감정에 부지런히 불을 붙이는 것은 백악관 수석전략가인 스티브 배넌 등과도 관계가 있는 걸로 알려진 ‘대안언론’의 ‘가짜 뉴스’들이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가 스티브 배넌의 해임을 촉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에 따르면 스티브 배넌은 최근 백악관의 내밀한 여러 사정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 내몰리고 있다. 그렇기에 스티브 배넌의 해임은 현실이 될 수 있지만, 이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정도에 그치게 될 것이다. 백인우월주의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본체’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실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휴가 중인 뉴저지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버지니아 살럿츠빌에서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 시위를 비판하며 폭력 자제와 국민 통합을 호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새삼스럽게도 놀라운 것은 한국의 상황도 트럼프가 대통령인 나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탄핵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 지지자를 규합했던 보수층들은 아직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북한을 추종하는 어떤 음모적 세력에게 억울하게 권력을 빼앗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 ‘일베’로 대표됐던 보수적 네티즌들은 민주 정부가 호남 등 특정지역과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 북한 등에 과도한 특혜를 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고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는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제각기 ‘피해자’를 자처하는 통에 실제로 사회적 모순에 의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일어난 유튜브 BJ 살해 협박 사건에서도 똑같은 논리가 재현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모두가 ‘피해자’를 주장하는 통에 여성의 권리신장을 지지하는 이들이 ‘미러링’을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사회적 모순의 맥락은 제거되고 오직 “여성이 먼저 남성을 모욕했다”란 내용의 수준 낮은 입씨름만 반복되고 있다. 이런 입씨름은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 발언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우격다짐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 이윤창출의 수단이 되는 현실은 우리가 물신(物神)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진리를 다시 상기하게 한다.

개별 세력과 인물의 윤리적 파탄을 규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이 트럼프 나라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모색돼야 할 것은 ‘근본적 대책’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논한 것은 치안담론과 엄벌주의라는 즉자적 대책뿐이었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의 위력은 권력관계의 구조적 편중을 바로잡고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문법’을 변화시키는 것에 이르러야 한다.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각자 구분하고 서로에게 무작정 강요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실체적인 연대와 실천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일이고, 때문에 여전히 ‘정치의 응답’은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 정치권이 미국의 사례를 그저 남 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