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가량 참 나이에도 맞지 않고, 게다가 사내가 오골거리는 드라마에 홀딱 빠져서 보냈다. 이제 마침내 그 속박에서 벗어날 시원섭섭한 날이 다가왔다. 여전히 그들은 멋지다. 연애 걸고픈 여자 서숙향 작가가 그렇고, 붕셰 커플 그리고 마지막까지 스위트 가이의 면모를 지킨 김산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파스타 리뷰는 다짜고짜 김산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듯 싶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빛나는 존재는 유경, 공효진이지만 그 빛을 받아 함께 빛날 수 있었던 알렉스의 따뜻한 미소도 질투 날 정도로 좋았다. 3년의 기다림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 또한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은 달라서 뽑아든 칼 무라도 베는 식이 아니라는 로멘티스트의 자세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는 사랑이 아니면 어떠냐며 우정을 보인다. 쿨한 사내의 정답이다.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의문도 남지만.

사랑 아니면 우정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경에게 실물 선인장을 준 김산은 '물을 주지 마세요'라는 푯말을 함께 꽂았다. 단념의 완곡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이미 선인장을 살 때부터 그는 마음으로부터 유경을 놓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선인장임을 밝힌 김산은 유경에게 처음으로 사진이 아닌 실물 선인장을 주고 간다. 그 선인장을 보고서야 둔녀 유경은 김산이 선인장의 주인공임을 알고 쫓아간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이런 대사처리가 서숙향 작가한테 반하는 대목이다. 도대체가 지극히 일상적인 두 마디의 말에는 감정을 실을 공간이 없어 보이는데, 그간 3년을 지켜봐준 김산에 대한 임자 있는 여자 유경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이 모두 담겼다.

'미안해요'라고 한 다음에 롱테이크로 이어진 잠시 동안 눈가에 물기가 고이고 그것이 눈물이 되지 않을 정도에서 다시 '고맙습니다'하고 희미하게 웃어준다. 아니 웃는 것 같더니 금새 울먹일 듯하다가 이내 다시 또 웃어준다. 그것은 유경이 받을 수 없는 김산에 대한 진정이며, 이별 없이 헤어지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경계를 가진 감정표현이다. 김산 역시 만만치 않다. 응원할게.. 지금처럼. 앞으로도 하고는 살짝 아파도 숨기는 미소로 답해준다.

그렇게 김산이 유경을 단념하리라는 복선은 세영 이야기를 누나인 김강과 대화하면서 내비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갑작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남자의 단념은 전혀 흔들려 보이지 않아서 그 아픔의 깊이를 더욱 깊이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런 단념을 현욱에게도 말한다. 승리한 현욱은 웬일로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합시다"하지만 김산 역시 "싫어"하고 만다. 정말 이 모든 대사가 참 깔끔하다.

미련해서 고맙다, 서유경

사실 초반에 유경은 자주 쓰레기 봉투를 낑낑 거리면서 내놓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텐데 하는 의심이 있었지만 은수가 보조로 들어오면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아서 그러려니 잊었었다. 그런 유경이 다시 한 번 일찍 퇴근한 은수 대신 쓰레기봉투를 내놓고는 그만 그 위에 걸터앉은 채 잠들고 만다. 참 대책 없는 처자다. 퇴근하려다가 그런 유경을 발견한 현욱은 다짜고짜 유경을 업는다. 그리고는 대충 이런 말들을 유경에게 한다.

미련한 사람이 마른땅에 우물을 판다. 넌 이쁘다 참 미련해서. 참 고맙네, 미련해서. 참 고맙다. 우리 붕어.

락커룸에서 잠들었을 때는 옷만 덮어주고 갔던 현욱이 두 번째 외박태세에 들어간 유경을 깨울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 유경은 쓰레기봉투 위에서 잠들었던 것이다. 업은 김에 현욱은 김산에게서 들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이제 대단원을 목전에 둔 현욱이 한번은 유경에게 해주어야 할 진솔한 고백이었다. 유경이 현욱의 말처럼 미련하고 심플한 성격의 여자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근 없이 채찍으로만 달리는 말은 없는 탓이다.

이렇게 해서 김산과 현욱 그리고 유경의 삼각관계는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유경을 업고 가는 현욱의 실루엣에서 드라마가 끝나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장면이었다. 그러나 아직 뉴셰프대회의 결과가 남아있다. 아직 파스타 시즌2에 대한 소식은 없지만, 그것에 따라 결말은 달라질 수도 있다. 현욱은 대회 전에 세영에게 이태리 초청장을 건네주었다. 죽어도 이태리로 갈 수 없다는 유경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대회 당일, 손목에 이상을 보였던 호남이 결국 요리 도중 프라이팬을 뒤집어 두 팔목에 화상을 입게 되고 후보였던 유경이 대타로 들어서 위기의 상황을 반짝이는 기지로 무사히 넘긴다. 반죽이 모자라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오징어 파스타에 대해서 깐깐한 셰프의 셰프는 잠시 딴죽을 거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유경을 마음에 들어 했던 셰프의 셰프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마지막 회를 봐야 알 수 있다.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우승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 과연 이태리에 누가 가느냐는 선택이다. 지금까지 파스타가 에피소드의 일반화 관성을 깨뜨린 일이 너무 많은 탓에 해피엔딩이 무르익은 분위기에서도 결말을 예측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일전 인삼파스타 편에서 예상한 대로 유경의 파스타가 대회에 선보이는 데까지는 맞췄으니 스포성 예측에 조금은 성공한 셈이다.

머릿속에 강력하게 떠오르는 결말이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 한 편을 기다리는 수많은 파스타홀릭들을 위해 꾹 참기로 한다. 적어도 유경 아버지가 비싼 돈 주고 산 전복짬뽕을 먹을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그것이 마지막 장면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파스타 성공의 비결은?

이제 아쉬운 작별만은 남겨둔 파스타를 돌아보면서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공효진의 놀라운 연기와 버럭 셰프 이선균의 역할이 우선 크다. 모든 대사와 감정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공효진의 연기로 인해 드라마 몰입이 쉬웠으며, 초반 공효진의 배경 역할에서 차츰 파스타의 기둥으로 성장한 이선균의 카리스마는 부주라인까지 포용하면서 완성단계에 도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파스타의 성공비결은 연애하지 않는 연애 드라마라는 역설에 있다. 모두들 이 드라마가 연애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사실 파스타는 연애에 그다지 많이 투자하지 않았다. 연애 드라마로 보기에는 붕셰 커플이 도대체 한 것이 없다. 화제가 됐던 눈키스, 은수방, 버스정류장 키스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고교생 드라마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장면들이다.

마땅히 연애한 흔적이 없는데, 시청자는 파스타의 연애에 죽고 못 살게 됐다. 파스타는 배우들의 직접적인 애정신 없이 그저 작은 자극에 불과한 불꽃 하나를 튕겨서 시청자로 하여금 대신 상상하고 혹은 추억하게 했다. 모든 좋은 작품이 그렇듯이 시청자는 작가가 의도한 것 외의 많은 상상의 결과물들을 가져갔다. 파스타는 시청자에게 공간이동의 통로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시즌2가 나온다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줄 수 있다. 아니 솔직히 기다려진다. 그것이 아주 많이.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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