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둘러싼 논란이다. 박기영 신임 본부장은 10일 과학기술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요약하자면 과거 황우석 사태에 관계됐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하겠다는 거고, 자진 사퇴가 아니라 일할 기회를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담회 발언의 ‘디테일’을 보면 박기영 본부장이 사태에 대한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만 확대된다.

박기영 본부장은 11년 전 황우석 교수 사건의 정점에 위치한 인물 중 하나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 정책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금을 지원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황금박쥐’의 ‘박’이라는 평가다. 따라서 황우석 교수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려면 이 대목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박기영 본부장은 당시 조작된 데이터가 실린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이 들어간 것에 대해 “신중하지 못했다”고 했을 뿐, 당시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도 황우석 전 교수가 전화를 통해 이름을 넣겠다고 해서 알았다고 답한 것 뿐이고 논문 기획 단계에서 자신도 함께 작업을 했기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언론 관계자들이 박기영 본부장이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 재직했다는 점을 들어 줄기세포 연구 로드맵 확정과 자금 지원 등에 대해 관여한 바가 없는지를 따로 물었으나 박기영 본부장은 당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기사가 1면 톱에 실릴 정도로 여론의 압박이 강했다는 변명조의 발언을 반복할 뿐이었다. 또 연구비 지원 편중으로 인해 오히려 지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받지 못한 사례에 대해서는 원래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논란이 뜨거운 상태에서 해명에 나선 자리에서조차 이렇게 부적절한 태도로 일관한 것은 박기영 본부장이 당시 사건에 대한 명확한 반성과 이에 따른 성찰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사람이 ‘과학기술혁신’ 관련 업무를 맡는다는 것에 과학기술인들이 특히 분노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려를 더하는 것은 박기영 본부장 임명 과정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러한 논란을 예상했고 심지어 민정수석실은 사전 검증 단계에서 박기영 본부장 임명을 반대했다고도 한다. 민정수석실이 반대하는 차관급 인사를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밀어 붙일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즉, 합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때 박기영 본부장 임명은 문재인 대통령 본인의 강력한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과정이 아니라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최대한의 합리성을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의 영역을 지배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논문 조작 등의 문제가 보도된 상황에서도 주요 언론과 정치세력들이 모두 나서 황우석 전 교수를 비호한 것은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냉소적 인식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황우석 전 교수에 대한 의혹을 보도하고 지적하고 폭로한 소수의 언론인들과 내부고발자들은 모진 고초를 겪으며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굳이 박기영 본부장에게 해명의 기회를 줘서 상황을 넘기려 한 듯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집’은 당시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어떤 ‘신호’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지금이야 거의 전 국민에게 칭찬과 기대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잘못된 결정이 반복되고 누적될 때 합리적 비판세력이 과연 이를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에 대한 회의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 내부의 여론도 이 인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수정치와 내부의 비판 여론 양쪽에서 짓눌려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박기영 본부장 인사는 철회돼야 한다.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잖아도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는 ‘포위’를 자초할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대북정책에서 기존에 언급해온 대화노선과 어울리지 않는 군사적 조치의 강화를 추진하는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핵잠수함 건조를 검토하고 미사일 사거리 및 탄두 중량 확대를 위한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전자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허물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후자는 동아시아 정세 전체가 격랑에 휩싸인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의 단계만을 높이는 어려운 국면이 조성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보수적 행보에도 보수세력은 안도하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커녕 “오락가락 한다”거나 “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할 뿐이다. 순전히 정치적 효과로만 보자면 얻은 게 별로 없는 셈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야심차게 내놓은 의료적 비급여 전면 급여화를 통한 건강보험 보장성 단계적 확대 방안에 있어서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보수세력은 건강보험료 인상 없이 이러한 조치는 불가능하다며 ‘포퓰리즘’, ‘퍼주기’ 논란을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를 드러내는 집단은 이 계획의 결과가 OECD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률에도 미달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미진한 조치라며 비판적 입장을 내놓고 있다.

물론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중도적 비전을 갖고 통치를 구하는 집권 세력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고, 이때 무엇을 포기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권력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그러나 적어도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부러 ‘최악’의 선택을 반복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선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는 단일전선이 유지돼야 한다. 이중의 전선에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지금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선실세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억측에 가깝고, 그간의 국정 운영 방식을 복기해보면 이 정권의 정치적 ‘오너’는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이 점이 명확한데도 전임 정권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을 자초해서야 되겠는가. 현명한 판단과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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