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된 바였다고 해야 할까, 설마 했지만 결국 안철수 전 의원이 국민의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대개의 반응은 좋지 않다. 비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집단으로 성명을 냈다. 문준용 씨 취업 특혜 증거 조작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거다. 동교동계 원로들은 탈당을 예고했고 박지원 의원은 후보등록까지 시간이 남았다며 출마 재고를 요구했다. 안철수 전 의원이 영입한 인사들 일부도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는데 발을 맞췄다.

이렇듯 다들 말리는데 안철수 전 의원은 누구의 말을 듣고 전당대회 출마를 결정한 것인가? 당장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의 성과를 기대하는 이들의 청을 안철수 전 의원이 외면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대두된다. 안철수 전 의원이 지방선거까지 이르는 과정을 주도할 수 있어야 최소한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조선왕조 500년에도 비할만하니 함부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내년 지방선거의 승자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자유한국당은 연일 잡음을 노출하며 괴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고 바른정당은 뭔가 해보려는 가상한 노력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국민의당이다. 최대 기반인 호남 지역의 급속한 ‘여당화’ 덕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만일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외부를 향한 원심력은 급격히 강해질 수밖에 없고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을 통해 원내교섭단체로서의 지위가 무너지면 국민의당은 단 3개월 후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이러니 안철수 전 의원이라도 ‘모셔서’ 급한 불을 꺼보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안철수 전 의원의 출마는 국민의당 입장에선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첫째는 그의 출마가 암시하는 것이 다른 당권주자에 대한 ‘불신’이라는 거다. 현재까지 당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한 인사는 천정배 정동영 의원이다. 이 두 사람은 안철수 전 의원 출마를 전후해 통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해명(?)을 연이어 해야 했다.

뒤집어 말하면 안철수 전 의원의 출마를 바라며 이를 실제로 만들어낸 흐름에 동참하는 인사들은 천정배 정동영 의원이 ‘제3당 노선’을 사실상 포기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안철수 전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를 결정한 것은 이런 ‘못 믿는다’는 식의 얘기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구도에서 천정배 정동영 의원은 ‘잠재적 배신자’가 될 것이다. 국민의당 사람들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게 ‘친문패권주의’의 오만함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이런 식이면 그런 주장은 왜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둘째는 안철수 전 의원의 등판에도 불구하고 내년 지방선거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여론이 집중되는 몇 개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하는 요행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전체 선거구 지도를 띄워놓고 색칠을 해가며 셈을 해본다면 승리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철수 전 의원의 등판이 지방선거의 성과를 겨냥한 것이라면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얘기다. “안철수로도 안 된다”는 판단이 기정사실화되면 어찌할 것인가. 앞서 언급한 ‘창업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이들’의 이탈에 좋은 핑계만 주는 꼴이 아닌가?

지방선거 패배 이후의 어느 시점에 안철수 전 의원이 당을 구하겠다며 나섰다면 최소한의 ‘그림’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아마도 문재인 정권의 힘이 비교적 빠진 상태일 2020년 총선에서 성과를 냈다면 2022년 대선으로 가는 길도 훨씬 순탄해졌을지 모른다. 이런 계산은 안철수 전 의원의 핵심 측근들도 다 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년 지방선거라는, 이길 확률이 낮은 모험에 승부를 거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안철수 전 의원 (연합뉴스)

셋째는 이런 모든 정치공학적 불리함을 안고서라도 안철수 전 의원이 내세우고 싶어 하는 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안철수 전 의원은 ‘다당제’를 지키겠다며 ‘극중주의(極中主義)’를 내걸었다. 그러면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사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한 것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안철수 전 의원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대로 국민의당이 공중분해 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다당제의 틀은 여전히 유지된다. 바른정당과 정의당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도 다당제를 지킨다고 한 것은 ‘제3당 노선’을 고수하는 정당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결과일 것이다. 즉, 이런 인식 속에서 정의당은 ‘제3당 노선’에 해당하는 정당이 아니라 ‘친-더불어민주당’인 셈이다. 뒤집어 말하면 안철수 전 의원의 출마 결심은 존재적 측면을 넘어 노선적인 측면에서도 국민의당의 ‘친-더불어민주당화’를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는 것은 바른정당이다. 안철수 전 의원의 구상대로라면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에 흡수되는 것인가? 안철수 전 의원은 “너무 앞서나간 얘기”라고 하지만 대개의 언론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가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 등을 추진할 것이라 예상한다. 조선일보 등은 2일 지면에 안철수 전 의원 측과 바른정당의 김무성 의원 측이 이런 방안에 일정한 교감을 이루고 있고 ‘공부모임’ 등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도 보도한 바 있다. 만일 이런 시나리오라면 안철수 전 의원이 말하는 ‘다당제’와 ‘제3당 노선’은 바른정당이 내세우는 보수주의 노선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안철수 전 의원이 말하는 ‘극중주의’는 이 구도 하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가 언급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갑작스런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는 중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20% 가까운 수치가 빠진 걸로 나타날 정도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은 그가 내세운 노선적 모호함으로 인해 오히려 주변적 문제들이 쟁점화 됐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마크롱 대통령의 위기는 합참의장의 사퇴로 촉발됐다. 전임 정권의 문제로 시작된 재정난이 각 부처 예산의 일방적 감축 지시로 이어졌고, 이에 반발한 군 수뇌부에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내가 당신들의 상관”이라고 말하면서 사태가 악화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순식간에 권위주의의 화신이 되어 나폴레옹이니 태양왕 루이14세니 주피터니 하는 비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다시 말하면 이런 사태는 마크롱 대통령이 내세운 ‘중도정치’가 실은 ‘이미지 정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폭로한다. 이미지가 전부인데 이미지가 훼손됐으니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에게서 ‘이미지’를 걷어내고 노선적 지향만을 평가해본다면 전임인 올랑드 정권, 즉 사회당-우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들은 세골렌 루아얄 등 사회당 우파가 오랫동안 하고 싶어 했던 것의 재판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한 마디로 ‘옷 갈아입기’인 셈이다. 당장 올랑드 정권의 ‘노동개혁’의 페달을 마크롱 대통령이 더 강하게 밟는 모양새를 보라. 이전 정권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경제산업부 장관을 지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식의 ‘옷 갈아입기’가 한국에서는 안철수 전 의원의 ‘극중주의’로 재현되는 것이다. ‘새정치’와 ‘제3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걷어내면 나타나는 노선의 실체가 바른정당의 ‘합리적 보수’와 차별점이 없다는 걸 스스로 실토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게 안철수 전 의원의 정치적 이득 외에 한국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확산되면 정치인으로서 안철수 전 의원의 생명도 다할 것이다. 안철수 전 의원은 지금 그 길을 가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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