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이 아니었으면 지난주에 종영했을 파스타를 이번 주에도 볼 수 있음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여성 팬이겠지만 쑥스럽게도 남성인 필자도 그 대열 뒤에 숨어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 늘어진 듯한 내용의 17회였지만 보통은 엔딩컷에서나 보여줄 법한 유경의 기습 백허그와 그것을 보고 행복해 하는 현욱의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어 충분히 용서가 된다.

지난 포스트에 덧글을 남기 독자 중 한 분이 '유경이 연애 초짜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런 면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백허그와 이어진 대사들이다. "셰프, 전 셰프 없이도 잘 하는 거 싫은데요?"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연애를 잘 해서가 아니라 진정이라 현욱도 그렇거니와 시청자들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속 케릭터의 진정성이란 다른 말로 개연성이라 할 수 있겠지만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합한다는 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파스타는 분명 여성 취향의 간지러운 드라마이다. 그리고 따지고 들자면 허점과 실수도 적지 않다. 그러나 깐깐한 시청자들이 유독 파스타에 대해서는 퐁듀 찍은 빵처럼 말랑말랑하고 보드랍기만 하다. 공부의 신, 제중원과 비해 관심도에서 떨어졌던 초기부터 유난히 파스타에 관심을 가졌던 필자도 보통의 경우 쓴 소리가 적지 않은 편인데도 묘하게 파스타 앞에서는 무장해제가 되고 만다.

세영과 김산의 역할 아쉬워

세프의 셰프의 등장으로 인삼파스타의 비밀 아니 그 파스타의 비결로 여겨졌던 와인의 비밀이 벗겨지고, 과거의 일에 대한 세영의 반응은 라스페라를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이미 현욱도 주방을 떠났으니 고급 레스토랑 라스페라는 셰프가 없는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욱은 많은 반대 세력이 떠밀었으나 세영은 스스로의 자괴감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점이 다르다.

결국 현욱을 주방에 다시 들이기 위한 안배였을지 모르겠으나 현욱의 경우와는 달리 세영은 명분과 공감도 별로 얻지 못하고 있다. 작가가 세영에게 주는 대사도 충분치 못하거니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소화해내는 능력이 이하늬에게 충분치 않다. 현욱과 만나서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끝내는 주방을 위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자신의 심경과 셰프로서의 책임감 둘 모두를 표출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었다.

세영의 당부 없이 김산이 셰프 없는 라스페라 주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담판을 짓게 하는 편이 나았다. 오히려 세영은 좀 더 자신의 문제에 몰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떠난 세영에게나 돌아온 현욱 모두에게 좀 더 그럴 듯한 동기를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두 주방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단서를 세영쪽에 둠으로서 해서 작가는 세영 뿐만 아니라 김산도 호감을 얻게 할 기회를 놓쳤다.

자신이 만들고도 설준석의 케릭터가 미웠는지 김산으로 하여금 잔인한 처분을 내리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김산도 함께 올가미에 갇히게 됐다. 라스페라를 사장 대신 맡아 정상 궤도로 올려놓은 공로는 사라져버리고 단지 서열에 따라 월급을 깍아 그것을 국내파 요리사들의 급여를 높인다는 대사는 가벼웠다. 김산이 부드럽고 합리적인 케릭터로 라스페라의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는 그저 사장의 권력으로 누르고, 힘없고 미운 한쪽으로 몰아버린 것뿐이다.

귀여운 조력자 은수의 감초 같은 존재

이제 종영이 코앞으로 닥친 파스타이기에 김산과 세영의 비상은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듯하다. 그러나 드라마가 흥하면 반드시 그 속에서 새로운 스타나 기대주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 파스타에서는 단연 주방보조 은수가 아닐까 싶다. 보조의 난 이후 꽃미남 요리사를 제치고 작고 못생긴 편이지만 귀여운 은수의 역할이 다른 인물들을 뛰어넘고 있다.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셰프 현욱의 방에 막대사탕을 들고 가서 위로하는 너스레와 동시에 유경의 처지를 변호하는 등이 대단한 발전이다. 큰 식당의 셰프와 보조가 실제로 그런 관계가 되긴 어렵겠으나 지금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은 은수밖에 없기도 하다. 또한 주어진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해내는 만만치 않은 연기호흡을 갖추고 있어 파스타 이후 기대되는 배우라면 단연 은수 역의 최재환을 꼽을 것 같다.

고급 이태리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파스타에서 은수의 소박한 연기가 공감을 얻게 된 배경은 공효진과 이선균의 조심스럽고 절제된 연애에 있다. 연애 드라마인데도 사랑에 푹 빠져 '사랑밖에 난 몰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나 일도 중요하다는 유경의 자세과 아무리 사랑해도 요리 앞에선 인정 사정 없는 현욱의 태도가 이들의 감정을 뚝뚝 잘라내는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더 진하게 엮어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셰프의 자리를 버릴 정도로 사랑한다면서도 정작 지겹게 봐왔던 드라마적 사랑의 행태를 보이지 않는 무뚝뚝한 연애에 끼어드는 은수의 감초 역할은 마치 시청자의 훈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현욱의 말에 주눅들면서도 유일하게 붕셰커플을 응원하는 은수이기에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다. 세프방에서 두 남자가 막대사탕을 오물거리는 모습은 남녀의 연애만큼이나 오글거리고 또한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이었다. 없어도 드라마 전개에는 아무 지장 없는 장면이었으나 있어서 좋았다.

한편 괄괄한 아버지가 관자구이에 지친 유경의 구원자처럼 등장했는데, 파스타에 남은 마지막 인물의 에피소드가 전개될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마지막 결론이 될 듯싶은데, 의외로 왜 죽음을 목전에 둔 유경의 엄마가 딸과 함께 파스타를 먹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릴 수도 있다. 그것의 복선은 짬뽕을 볶다가 팔목이 아프다는 장면이었는데 과연 여러 시청자들이 예상했던 사연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지난주에 유경이 "아빠 말 안 듣는 딸"이라고 말했고, 주방에서 나란히 선 채 "걱정하지 말아요. 쟨 내 말 안 들으니까"한 것을 보면 유경의 아빠 장용이 둘 사이를 막아서진 않을 것이다. 짬뽕집으로 초대(?)한 유경 아버지가 현욱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 짬뽕만은 아닐 것이다. 딸은 아빠 닮은 남자에게 끌린다는 말이 언뜻 떠오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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