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전체 인구의 20%가 노인, 대한민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인류의 염원이던 100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코앞으로 다가온 이 '장수의 시대'는 마냥 오래 살아 행복할까? 마치 준비되지 않은 채 우리의 삶을 좌초시킬지도 모를 '장수의 시대'를 <EBS 다큐 프라임>이 발 빠르게 살펴봤다.

100세를 쇼크라 진단하기 전에 다큐는 나이듦, 즉 노화에 대해 정의내리고자 한다. 일찍이 공자께서 50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고(지천명 知天命), 60이 되면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알아들으며(이순 耳順), 70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오른다(종심 從心)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노인'은 이런 공자님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측정하는 실험에서 젊은이도 노인들도 모두 노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나이듦이란 무엇인가?

EBS TV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 편

우리 사회가 노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산업화 사회에선 인간의 존재 가치 잣대가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전근대적 사회에서 '경험 많은 어른'으로 대접받던 노인들은 이제 더 이상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치부 받는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무능력에 더해, 나이든 사람들이 나타내는 공통적인 태도가 다른 세대에겐 소통 불능의 '고집불통'으로 낙인 찍혀 가는 게 요즘 세상이다. 왜 그럴까?

그런 노인들의 고집을 다큐는 '정서적 최적화'라 정의 내린다. 홀로 살아가는 100세의 할아버지는 스스로 빨래를 하고 일상생활을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옆집 아주머니는 들여다보고 질색한다. 말이 빨래지 비눗물에 담갔던 옷가지를 헹구기는커녕 짜지도 않고 걸어놓고, 방안은 씻지 않은 젓가락이며 그릇이며 먹고 남은 막걸리통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이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상태가 사실은 이제 100세가 되어 활동력이 현격하게 떨어진 할아버지에게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환경, 이런 것이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그분들의 '스타일'대로 자신에 맞는 최적의 상태를 추구하려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시대에 늘 '불화'한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말할 것이다. 좀 시대에 맞추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을 인정받고 싶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으니, 어쩌면 이 세대 간 부조화는 '숙명적'이다.

재앙이 되어 가는 장수

이렇게 숙명적으로 이미 불화할 수밖에 없는 노인 세대,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간다. OECD 국가 노인 빈곤율 1위, 빈곤과 질병과 고독과 싸워야 하는 장수는 재앙이다.

EBS TV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 편

부산 쪽방촌 문에는 이름들이 쭈욱 내려 써 있다.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납골당에 모셔진 노인들의 이름, 이른바 '고독사'이다. 해마다 늘고 있는 고독사, 2016년에는 1232명, 그중 48%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사회 관계망에서 일찌감치 방출된 사람들, 특히나 남성에 비해 10년 정도 평균 수명이 더 길며, 남편 사후 빈곤층 추락 가능성이 더 큰 여성 고령자의 경우 더욱 '고독사'의 위험이 높다. 한때 우리나라 최초 사립유치원 선생님 출신의 여성 엘리트였지만 이혼 후 급격하게 추락하여 이젠 저녁 한 끼를 우유에 밥 한 술 말아 때우고 마는 조경숙 씨(80)처럼, 우리 사회 노인들의 노후 문제는 곧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우리 사회 노년의 장수가 재앙이 되는 이유 중에는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며, 경제 활동을 하는 동안 온통 자식에게 쏟아 붓고 마는 한국의 특수한 문화도 한 몫을 한다. 심지어 노년의 부부가 하루에 700원 남짓 폐지를 주워 생활을 하면서도, 8평 자신들 소유 빌라를 손주에게 상속해야 한다며 꾸역꾸역 쥐고 앉은 이 상속의 문화는 고질병 수준이다.

EBS TV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 편

물론 모두가 노년의 삶에 무방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비’를 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은퇴를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의 상당수가 은퇴 후 일자리가 마땅치 않자 빚을 내서 자영업에 뛰어든다. 60대 은퇴자의 52%가 창업을 하고 그중 2/3가 폐업을 하며 퇴직금까지 날리고 파산,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유엔이 조사한 노인 소득 90위(91개국 중, 아프가니스탄이 91위), 꼴찌의 현실이다.

하지만 추락하는 노년에 날개를 달아줄 자녀는 이제 없다. 자녀 세대는 더 이상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은퇴시기를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들에겐 아직 부양해야 할 부모가 계시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 효' 사상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은 의료복지 시설에 대한 인식이 낮아 스스로 그 짐을 떠안아버리는 경우가 많아 이중고에 시달린다.

연구자는 노년의 리스크를 세 가지로 정의한다. 그 첫 번째로 무의미함, 살아온 시간 그리고 살아갈 시간에 대한 허망함이다. 두 번째는 살아가야 할 시간에 대한 부담, 즉 삶의 지루함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가난, 그런데 여기서 가난이란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라 시간적 가난도 포함된다. 노인 빈곤율 OECD 1위의 현실에서 다큐가 주목하고 있는 건 물질적 가난보다는 '노년에 대한 인식 제고'이다.

물질적 가난보다 더한 인식의 가난, 그 개선부터

서울의 한 교회, IMF 때부터 시작한 일주일에 한 번 500원씩 주기. 거기엔 새벽부터 장사진을 친 노인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인터뷰를 해보면 정말 끼니를 걸러서 나온 분들이 대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남아도는 시간 소일거리 겸 용돈벌이로 나온다는 분들, 대부분 취미 생활이 TV 시청이듯 노인들은 무료한 삶을 몇십 년씩 이어간다.

EBS TV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 편

노년의 물질적 가난도 문제지만, 어쩌면 지금 100세 시대 더 심각한 것은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의 인식 제고라고 다큐는 지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대한 개선을 시도하고자 한다.

1분이란 시간을 측정해보는 실험에 참가한 노인들. 실험은 약간의 트릭을 써서, 노인분들이 생각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1분이라 답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실험에 참가한 노인분들은 이후 노년에 대한 인식 실험에서 인식이 달라진다. 즉, 남은 노년의 시간에 대해 다 살았다가 아니라 '그 시간이나 남았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인식의 변화는 생활의 변화로 이어진다. 경남 양산의 효암 고등학교에는 학교에서 어슬렁거리며 휴지를 줍고 다니는 노인 한 분이 있다. 아이들이랑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이 노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을 도와주는 할아버지라는 이 분, 알고 보니 이 효암학원의 이사장이다. 젊어 흥국탄광 등 스무 개가 넘는 기업을 이끌었던 거부,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한 후 학교 한편 방 한 칸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어슬렁거린다. 췌장암 치료를 받지만 그에겐 암이나 당뇨병이나 매한가지일 뿐이다. 그는 말한다. 노인은 늙는 것이 아니라, 젊게 산 것의 결과라고. 기자 은퇴 후 여행작가로 사는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노년을 '완전한 자유를 갖는 순간'이라 명명한다.

EBS TV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 편

물론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리는 다수의 노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에 그친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 가난한 노인들도 돈 만원이 있으면 삼일을 버틸 수 있지만, 외로움은 견딜 수 없다는 '시간의 벽'에 대해 방점을 찍은 다큐의 시각은 의미가 있다.

은퇴 후 20년, 하지만 그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10만 시간이다. 생산적이지 않은 사회의 유휴 노동력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야 함은 물론, 그 시간을 맞이한 노인 자신들이 '다 산 사람'이 아니라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주인공'으로 자신의 작품을 완주해야 하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 역시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는 절실한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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