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여자축구 WK리그 경기가 벌어진 인천 남동경기장에서는 작은 기적과 같은 승부가 펼쳐졌다.

올해 처음으로 WK리그에 등장한 ‘새내기’ 경주 한수원이 리그 5년 연속 통합 우승에 도전하는 리그 최강 인천 현대제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

한수원은 이날 2017 IBK기업은행 WK리그 18라운드 경기에서 전후반에 걸쳐 시종 끈끈한 수비조직력과 국가대표 출신 베테랑 골키퍼 윤영글의 눈부신 선방으로 현대제철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차단하는 한편, 후반 15분 터진 외국인 선수 벤더의 천금과도 같은 페널티킥 선제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면서 1-0 승리를 거뒀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소리와 함께 현대제철 선수들을 고개를 떨궜고, 한수원 선수들은 우승이라도 한 듯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올 시즌 현대제철을 상대로 3번째 맞대결 만에 거둔 승리였고, 앞선 두 경기에서 무려 10골을 먹고 완패한 굴욕을 겪은 끝에 이뤄낸 설욕이었다.

이날 한수원이 현대제철을 잡은 것은 그 자체로 구단 역사에 남을 중요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제철 선수들[대한축구협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현대제철은 현재의 팀 스쿼드만으로 국가대표팀을 꾸려도 전혀 무리가 없는 팀이다. 골키퍼 김정미를 비롯해 김도연, 정설빈, 임선주, 김혜리, 이민아, 이영주, 장슬기 등 국내파 국가대표 선수들에다 지난해 미국과 일본으로 각각 임대를 떠났던 전가을과 조소현도 돌아왔다.

특히 조소현은 대표팀 주장으로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 한국이 조 1위로 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따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센츄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장) 가입이라는 의미 깊은 성과를 올렸다.

현대제철은 이 밖에도 WK리그에서 5년 차를 맞는 특급 브라질 공격수 비야와 따이스도 건재하다.

스쿼드가 이 정도이다 보니 현대제철 최인철 감독은 시즌 승점 80점으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밝힐 정도였다. 팀당 28경기를 치르는 올 시즌 WK리그에서 승점 80점은 28경기 전승 또는 27승 1패, 26승 2무를 거둬야만 가능한 승점이다.

반면 한수원은 드래프트에서 박예은, 김혜인을 포함해 10명을 선발한 것에 이어 지난해 12월 공개 테스트를 실시해 선수를 수급했고, 윤영글, 차연희, 박윤주, 곽지혜 등 경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 선수단을 꾸렸다. 리그 경험이 없는 선수들로 팀이 구성된 탓에 WK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3월 23일 경주화백센터에서 '경주 한수원 여자축구단' 창단식을 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한수원의 하금진 감독은 “신생팀이라고 해서 막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팀마다 전략적으로 잘 준비해서 좋은 경기를 펼치겠다”고 밝혀 만만하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고, 곽지혜 역시 “힘들 것은 각오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 팀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당찬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시즌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수원은 자신들이 드러냈던 의지와 각오를 그라운드에서 실천해내고 있다.

탈꼴찌는 고사하고 1승을 거두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한수원은 올 시즌 18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이번 현대제철전 승리까지 포함해 3승을 거두고 있다. 무승부로 승점 1점을 챙긴 경기도 4경기나 된다. 그렇게 시즌 3승 4무 11패 승점 13점으로 ‘꼴찌’ 보은상무에 승점 4점차로 앞선 7위에 올라 있다.

순위에서도 알 수 있듯 한수원이 거둔 3승 가운데 2승은 상무를 제물로 한 승리였다.

시즌 개막전에서 상무에게 0-1 패배를 당했던 한수원은 지난 5월 29일 29일 경주축구공원 제4구장에서 열린 시즌 8라운드 홈경기에서 상무에 설욕하며 감격적인 창단 첫 승을 거뒀다.

경주 한수원 선수들 [대한축구협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리고 지난 14일 보은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시즌 1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김수진(1골)과 서지연(2골)이 무려 3골을 상무 골문에 꽂아 넣으며 3-0 완승을 거뒀다. 올 시즌 상무에 거둔 두 번째 승리였다. 이날 승리로 한수원은 상무를 최하위로 끌어내리고 탈꼴찌에 성공했다.

특히 이날 서지연이 성공시킨 세 번째 골을 ‘미기’에 가까운 골이었다. 상대 페널티 박스 중앙에서 밀집된 상무 수비수들을 발재간으로 벗겨낸 서지연은 오른발로 공을 띄웠고, 서지연의 발을 떠난 공은 상대 골키퍼의 키를 넘겨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무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패배였지만 한수원에게는 남은 리그 일정에 한층 자신감을 갖게 한 완승이었다.

그리고 탈꼴찌 세 경기 만에 한수원은 리그 ‘최대어’ 현대제철을 잡아냈다.

종목을 막론하고 신생팀은 한 시즌을 소화하는 리그에 있어 희망과 불안감을 함께 갖게 하는 존재다. 신생팀다운 패기로 선배 팀들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는 경기를 펼치면서 다크호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리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존재로서 각광 받을 수 있지만, 매 경기 무기력한 경기로 연전연패한다면 아무리 막내라 하더라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할 수 있다.

한수원은 당연히 전자에 해당하는 포지셔닝에 성공하고 있다. 한수원이 앞으로 남은 정규리그 10경기에서 또 어떤 센세이션을 일으킬지 기대가 된다. 그들의 활약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스포츠 전문 블로거, 스포츠의 순수한 열정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 임재훈의 스포토픽 http://sportopic.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