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위터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트위터 사이트(http://twitter.com)에 가입했다는 것이 맞겠다. 막상 가입은 해놓고도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근 일주일간 방치해 놓은 상태다. 개인적으로 트위터에 가입하고 한 것이라고는 트위터 도전을 권유했던 후배와 능란한 트위터 활용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이름을 얻은 모 진보계열 정치인의 트위터에 연결(?)한 것 외에는 없다.

사정은 함께 트위터 세상에 도전해보자고 강권했던 후배도 다를 바 없는 듯하다. 4년차 유부남인 그는 ‘새로운 경로를 통해 바람을 피우겠노라’는 원대하지만 망상에 가까운 농담을 늘어놓았지만 그 경로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끝없이 갱신되는 새로운 시스템의 위력 앞에 어느덧 ‘청년’ 단계에서 ‘아저씨’ 단계로 넘어간 이들의 무력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따지고 보면 블로그나 미니홈피가 등장했을 때도 유사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대세를 따라 한발씩 늦게 시작하곤 했지만 천성이 얼리어답터와는 거리가 먼 탓에 늘 귀찮고 짜증났다. ‘도대체 이걸 내가 왜 붙잡고 씨름해야 하나’라는 짜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결국은 대세를 나름 충실하게 따라갔다는 것이다. 뭔가, 이런 것들을 멀리하면 인간관계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탓이었을까. 아니면 새로운 소통의 경로가 생길 때마다 기존의 소통 경로가 가차없이 폐기되어왔던 탓일까.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할 틈도 없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탔고 기존의 플랫폼은 패잔병의 시신처럼 인터넷의 바다에 버려졌다.

사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것은 스마트폰이고 그 핵심에는 애플사의 아이폰이 있다. 실리콘벨리 신화를 전설처럼 전해 듣고 컴퓨터 도사가 되서 젊은 나이에 벼락부자가 되겠노라고 결심했던 중딩 시절의 우상이었던 스티브 잡스가 야심적으로 들고 나온 ‘물건’이다. 스마트폰은 휴대폰에 기존의 휴대용단말기(PDA) 기능이 결합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아이폰이란 물건은 그런 기반하에 끝내주게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공짜폰으로, 그나마 통화와 문자 이외의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아이폰은 그저 잠시 구경만 해본 입장에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상의 코멘트는 생략할 수밖에 없다.)

성능이 그만큼 대단해서인지 워낙 사회적 이슈가 된 탓인지 몰라도 벌써 주변 사람들 상당수가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곧 거의 공짜폰에 가까운 스마트폰이 나온다는 뉴스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조만간 스마트폰을 들고 쩔쩔매는 스스로를 볼 날이 가까워졌다는 공포감도 밀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떤 스마트폰을 통해 어떤 새로운 종류의 소통을 시도할 수 있을런지는 상상조차 안 되지만 대세에 얍삽하게 편승해 온 스스로의 전력을 돌아봤을 때 이런 공포스런 상황이 ‘레알’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요는 이제는 소통환경의 격변이 주는 스트레스가 문제란 것이다. 19세기 말 전화와 라디오가 개발되었을 때의 충격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지난 20년간 개인적 소통의 프랫폼은 정말 빠르게, 시시각각으로 변해왔다. 솔직히 젊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던 90년대의 10여년간은 이런 변화가 신기하고 반가운 노릇이었다. 지금도 90년대 초중반 처음 PC통신에 접속했을 때의 감동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단지 워드프로세서와 초창기 정보관리 프로그램 정도를 ‘약간’ 활용하고 거의 게임기로 활용되던 개인용 컴퓨터가 전화선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컴퓨터와 연결되었다는 것에 대한 떨림과 흥분감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 놀라운 감동 덕분에 월말에 엽기적 숫자가 적혀있는 전화요금 통지서를 받았지만 말이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진화하였을 때의 감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앞서 토로했듯 최근 수년간은 이런 플랫폼들의 급변이 당황스럽고 피곤한 상황이다. 이런 피곤함에는, 물론 주요하게는 새로운 기계에 적응이 힘들어진 ‘아저씨’의 뒤쳐짐을 바닥에 깔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에 살펴 들어가면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종류의, 보다 확장된 소통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들어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거대도시에 파묻힌 외면적 생활환경과 전면적으로 자본주의적 관계망에 내밀하게 얽혀있는 삶의 구조는 개개인이 서로를 소외시키는 상황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소외의 일상화는 대화와 소통을 절실하게 갈구하게 만들고 속속 등장하는 새로운 플랫폼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접촉을 유혹한다. 허나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신기루처럼 기술의 진보로도 본원적 관계의 복구는 결국 좌절감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스팸으로 가득찬 메일함과, 대출과 카드론을 친절히 강요하는 통화의 반복 속에서 시스템의 외형적 진보도 결국 악순환의 재생산 구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씁쓸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새롭게 진입하기 시작한 트위터는 ‘절실히 대화가 필요한’ 아저씨에게 어떤 소통을 가능케 할까. 네트워크에 대한 실망과 회의를 잠시 유보하고 일단 연결을 시도한다.

더프 : 문화기획자. 어려서는 “헤비메탈로 우주정복!”을 꿈꿨던 메탈키드였으며 현재는 일상을 뜨끈하고 푸짐하게 만드는 문화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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