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가장 재수없는 캐릭터 둘이 있었으니 바로 <그대 웃어요>의 서정길과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해리였다. 해리만 나오면 TV 안으로 들어가 한 대 쥐어박고 싶었으며, 서정길만 나오면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꺼버리고 싶어졌었다.

그 둘은 정말 극단적으로 얄미운 캐릭터였다. 그렇게까지 얄미웠던 이유는 둘이 대단히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정길과 해리는 자기밖에 몰랐다. 오로지 자기의 기분,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 챙기고 남들이 어떤 상처를 받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자신들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철저히 능멸하거나 괴롭혔다.

그 정도가 너무나 심해 차마 봐주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들만 나오면 분통이 터지면서 혈압이 올랐다. 밉상도 그런 밉상이 없었다. 그랬던 둘은 설을 즈음해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이들의 변화야말로 드라마와 예능을 통틀어 TV가 시청자에게 준 최고의 설 선물이었다.

사람 된 서정길

인간 같지 않게 이기적이었던 서정길(강석우)은 아버지가 죽고 사업을 말아먹은 후 강기사(최불암)네 집에서 얹혀살며 차츰 인간과 정을 알게 된다. 자기만 알던 밉상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남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몇 번의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서정길이 변화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흐뭇해서, 그동안 <그대 웃어요>야말로 주말 드라마 중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제는 시청률 1위 막장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가 독식해버렸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어쨌든, 서정길과 해리는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재수 없는 캐릭터였다. 공교롭게도 그 둘이 비슷한 시기에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약 이주 전이었다. 설 즈음에 서정길은 자신의 간을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강기사에게 이식할 기회를 달라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

‘내가 그동안 잘못했어요. 내가 평생을 강기사 괴롭혔어요. 잘못했어요. 나도 사람 노릇하게 해주세요. 사람 노릇하게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싹퉁머리 없던 서정길에게 공감능력과 희생정신이 생긴 것이다. 요즘 <파스타>와 <추노>가 완성도로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면, 이 장면이야말로 가장 큰 감동을 준 장면이라 할 만했다. 처음의 재수없음이 워낙 컸기 때문에 변화에 따른 감동도 컸다.

재수없는 해리는 가고, 사람이 된 해리가 오다

같은 시기에 해리도 공감능력이란 것이 생겼다. 일반적으로는 지난 주에 있었던 군대식 훈련을 해리의 변화지점으로 지적한다. 그래서 당시 ‘우리 해리가 변했어요’라는 기사들도 나왔고, 어떻게 군대식 훈련을 미화할 수 있느냐는 항의도 많았다.

사실 해리의 변화는 그 전에, 서정길이 사람 될 기회를 달라며 눈물을 철철 흘리던 무렵에 시작됐었다. 신애의 생일 에피소드에서였다. 신애는 자신의 생일날 사람들이 축하해주길 기대했으나 아무도 신애의 생일을 몰라 쓸쓸히 잠들었다. 하지만 해리가 신애의 일기를 보고 뒤늦게 신애의 생일을 알아낸다.

해리는 늦은 시간임에도 신애에게 생일 케이크를 사주기 위해 애가 탄다. 결국 해리가 애쓴 덕분에 신애는 생전 처음으로 모두의 축하 속에 깜짝 생일 케이크를 받고, 그 두 ‘아이’들은 해맑게 장난이라는 걸 친다.

이때부터 자기만 알던 해리에게 공감능력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인간성이 변화하기 시작한 해리는 지난 주에 군대식 훈련으로 예의범절을 알게 되고, 마침내 오늘(23일)에 방영된 108회에 이르러 완전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아이가 된다. 자기 때문에 세경이 발등에 화상을 입자 자기 저금통을 세경에게 주며 병원에 가라고 한 것이다. 해리는 세경의 아픔과 흉터를 걱정했다. 급기야 해리는 세경과 사이좋게 걷기까지 한다.

이렇게 해서 <지붕 뚫고 하이킥>은 정말 꼴 보기 싫던 해리에게 극적인 변화를 줬다. 이제 엔딩을 준비하는 것 같다. 상당히 어두운 결말일지 모른다고 많이들 우려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세경은 지훈과 ‘묵찌빠’를 한 이후 청승을 벗었다. 즉 사춘기의 상처에서 성장했다. 해리도 확연히 성장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은 우려했던 것처럼 어둡지는 않을 지도 모르겠다.(김병욱 PD는 봄꽃 같은 이미지의 엔딩을 시사한 바 있음)

아무튼 재수 없었던 서정길과 해리의 변화는 최근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드라마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이렇게 사람들의 공감능력이 커져갈 때 우린 보다 따뜻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지붕 뚫고 하이킥>이 이렇게 알아서 변화하고 성장해갈 걸 뭐가 그리 급해서 버릇없는 해리의 ‘빵꾸똥꾸’를 제재하겠다고 국가에서 설쳐댔는지 원...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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