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서 ‘미녀 골퍼’로 손꼽히는 렉시 톰슨은 지난 21일 독특한 사진 한 컷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재했다.

긴 플레어 치마에 정장 재킷, 스카프에 중절모 모양의 밀짚모자를 쓴 1900년대 초반 여성이 골프를 칠 때 입던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톰슨이 작년 골프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종목에 복귀한 것을 기념해 이번에 공개한 사진이다.

당시 톰슨은 사진과 함께 "옛날에는 어떻게 이런 옷을 입고 골프를 했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더웠다면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며 “상의와 하의를 최소 두 겹씩 입었다. 또 그 위에는 등이 꽉 끼는 재킷을 입었다"고 착용감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렉시 톰프슨 인스타그램 캡처

그런데 그로부터 1년 후 톰슨은 다시 같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게재하면서 "LPGA의 새로운 드레스코드에 순응하는 옷이 준비돼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날은 마라톤 클래식 1라운드가 열린 LPGA가 새로운 복장규제를 적용한 첫날이었다.

결국 이 사진은 LPGA 투어가 최근 마련해 시행하기 시작한 새로운 드레스 코드 규정을 풍자하기 위함이었던 것.

톰슨은 메시지 끝에 ‘재미있는 농담((kidding, funny, joke)’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그저 ‘웃자고 한 말’임을 강조했지만 앞서 남긴 메시지 속에 뼈가 들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LPGA는 이 대회부터 가슴이 깊이 파인 상의, 짧은 치마, 치마나 반바지로 감싸지 않은 레깅스'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새로운 드레스 코드를 선수들에게 통보했다. 선수들이 필드에서 착용하는 옷도 프로 선수 이미지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 LPGA 측에서 내세우는 새 드레스코드에 대한 이유였다.

렉시 톰슨이 사진으로 뼈 있는 농담을 던진 같은 날 미셸 위 역시 유명 패션 잡지 '보그'에 실린 사진을 통해 렉시 톰슨과 비슷한 농담을 던졌다. 미셸위는 그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throwback'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LPGA의 새 드레스코드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음을 좀 더 직설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 대회 'ANA인스피레이션' 1라운드 경기에서 미셸 위가 3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LPGA 제공=연합뉴스]

LPGA의 새 드레스코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이번 LPGA의 통보는 이미 예고가 됐던 사안으로 논란이 진행 중인 이슈로 LPGA의 새 드레스 코드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번 LPGA의 조치가 시대에 역행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선수들의 복장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면서도 최대한 패셔너블한 스타일로 디자인 되고 있고, 그러는 과정에서 다소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 수준이 관중들이나 TV 시청자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특히 골프와 마찬가지로 전통과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테니스가 보여주고 있는 변화의 흐름과 비교하면 분명 LPGA의 이번 조치는 지나친 간섭이라는 지적이다.

골프보다 훨씬 격렬한 몸놀림으로 경기를 펼치는 테니스 종목의 경우 여자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는 세계여자테니스(WTA) 투어 대회에서는 바지를 입지 않고 스커트를 입는 조건 하에 상의의 경우 거의 규제가 없는 편이다.

경기복에 쓰인 소재는 최첨단 소재고 디자인 역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수들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경기복의 색상 등 다양한 부분에서 신경을 쓴다.

안신애[KLPGA 제공=연합뉴스]

문제는 스커트인데 과거 일부 언론들이 선수들이 서브를 할 때나 스트로크를 할 때 노출되는 스커트 속 언더 팬츠를 그 자체로 보도 사진으로 사용하면서 ‘옐로우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진으로 ‘클릭 장사’를 하는 언론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런 부분에서 선정성이 지적되는 일도 거의 없다.

복장 문제에 관해 WTA가 나름대로 과도기를 거치며 변화를 잘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LPGA의 이번 드레스코드 논란은 골프의 전통과 품의를 지켜가겠다는 의도라는 점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필드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줘야 하는 한편, 하나의 상품으로 자신의 개성을 어필해야 요즘 프로 선수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필드에서 지나치게 선정적인 의상을 입는 선수가 있다면 언론이나 갤러리, TV 시청자들의 의견이 수렴되면서 선수 스스로 자연스럽게 교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러운 방향이 아니었을까.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이번 LPGA의 조치는 문제가 있다.

골프 산업은 클럽, 공 등 장비와 용품이 한 축을 이루고 다른 한 축은 역시 패션이다. 골프 패션이 일상복으로 옮겨가고 유행을 만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요즘이다.

때문에 많은 골프 브랜드들이 좀 더 매력적인 골프웨어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런 골프 패션의 거대한 전시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LPGA 투어 대회가 열리는 필드다.

그런 곳에서 선수들의 복장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은 골프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 골프계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인 LPGA가 이번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하나 저지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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