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KBS2의 <다큐멘터리 3일>은 새해맞이 특별기획을 방영했다. 두 강대국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3일의 시간. 우리의 다큐 팀이 세계 최대의 중식당을 배경으로 신흥 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지켜본 반면, 일본 NHK 다큐팀은 뉴욕 퀸즈 거리의 한 빨래방에 시선을 맞춘다. 왜 퀸즈 거리였을까?

다섯 개의 자치구로 구성된 뉴욕, 그 중에서 퀸즈 거리는 다국적 이민자들과 노동자들의 밀집처이다. 그곳의 빨래방은 할렘가의 아이들과 국가부도사태로 쫓기듯 이민 온 혹은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건너온 그리스, 멕시코 노동자들의 '부유하는' 삶의 정류장 같은 곳으로 그려진다. 그 퀸즈 거리에 빨간 쫄쫄이 옷을 입고 거리를 부산하게 날아다니며 도시의 '보이스카웃' 노릇을 하는 소년이 있다.

퀸즈 거리의 스파이더맨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그렇게 영화는 뉴욕 자치구 중 노동자 지구 출신의 한 소년 '피터 파커'(톰 홀랜드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심지어 그는 부모도 없이 숙모네 집에 얹혀 산다. 잠시 '어벤져스 팀'에 다녀온 그는 어벤져스 팀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스타크 인터십'으로 포장하고, 학교 친구들은 수재인 그러나 늘 잘 사는 친구들에게 찌질하다 놀림감이 되던 그의 '인턴십'을 응원한다. 나름 퀸즈거리 출신 수재 소년의 입신양명인 셈이다. 우리말로 치면 개천에서 용 난 셈?

그런데 이게 속사정은 다르다. 피터 파커가 '시빌 워'에서 활약을 보이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에게 첨단 기능의 수트까지 선물 받지만, 딱 거기까지다. 스타크 재단에 머물며 어벤져스의 일원이 되는 대신, 고향 뉴욕으로 가서 학업에 충실하라는 충고만을 받고 돌아온다. 당연히 피터 파커는 학업 대신, 이미 한번 맛본 '히어로'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어벤져스 팀이 되려면 시험 봐요?'라고 천진하게 묻던 소년은 어떻게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퀸즈 거리의 '보이스카웃' 노릇에 매진한다.

그런데 중2병 같은 스파이더맨의 자존감을, 그가 애정하는 퀸즈 거리 잡화점과 함께 박살내 버린 악당이 등장했으니 바로 빌런 벌처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 역할을 하는 숙모에게 얹혀 사는 피터 파커 앞에 두 명의 아버지를 등장시킨다. 그 한 명은 당연히 어벤져스 팀의 대장인 아이언맨이다. 사업과 세계 평화를 위해 바쁜 틈틈이 피터 파커 앞에 나타나서 츤데레 부성애를 보이며, 딴짓(?) 하지 말고 대학 갈 준비도 하고 학업에 충실하라는 뻔한 충고를 하는 토니 스타크.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파이더맨이 벌인 판에 나타나 '해결사'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토니 스타크와 빌런 벌처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이렇게 츤데레 아버지 상의 한 편에 또 한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바로 악당 빌런 벌처이다. 원작에서 자력을 이용하여 공중에 뜰 수 있는 수트를 개발한 전기공학자였던 빌런 벌처는 이제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2012년판 어벤져스의 뉴욕대전 이후 토니 스타크 재단의 하청업자로 등장한 빌런. 하지만 그의 작업장에 등장한 재단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와 그의 동료들을 '실업자'로 만들어 버린다.

가족을 부양하고 동료들을 책임지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장비까지 사들인 '빌런 벌처'. 그의 선택은 미처 재단이 수거해가지 못한 외계 물질을 활용한 돈벌이이다. 하지만 그의 돈벌이는 불법적 영역을 향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동네 보이스카웃 스파이더맨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에서 가장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아버지로서의 빌런 벌처이다.

소년에게 따르고 싶은 아버지 상은 당연히 어벤져스의 대장님인 아이언맨이다, 심지어 그 망나니 같던 아이언 맨은 어색해하며 '아버지'처럼 군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충고에도 소년은 그의 대학 입학에 결정적 스펙이 될 경시대회 대신,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출신은 다르지만, 퀸즈 거리 출신의 소년 스파이더맨과 재벌 아이먼맨은 그렇게 정신적으로 '부자'의 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반면, 소년은 어쩌면 자신과 같은 출신일 빌런과 대립한다. 소년이 소영웅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동안, 빌런은 자신의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의 합리화로 악행을 증폭시켜 나간다. 영화 속 빌런 벌처로 분한 마이클 키튼은 과거 배트맨을 맡은 바, 그런 추억이 그의 오랜 팬들에게는 감회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스파이더맨: 홈커밍> 빌런 벌처의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수트를 보면, 마이클 키튼의 또 다른 영화 <버드맨>이 연상된다.

추락하는 또 한 명의 버드맨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제 딸의 냉소를 받으며 재기의 칼을 가는 그 <버드맨>의 환청은 <스파이던 맨: 홈커밍> 속 빌런 벌처의 그 슈퍼 수트와 비슷하다. 자아분열과 환청 속에서 만나던 슈퍼 히어로를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외계 물질에 기반한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며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도 잘라버리는 무적 악당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런데 그 기술이 흥미롭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도움으로 고성능의 그 무언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을, 영화 속 하청업자 집단은 뚝딱뚝딱 만들어내며 심지어 스타크 재단의 비행선을 하이재킹할 수준에 이른다는 지점은 흥미롭다. 그렇게 하청업자 보스의 주문 아래 노동자들의 손에서 거듭난 외계 물질은, 안타깝게도 스타크 재단으로의 하청 대신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불법 무기로 그 항로를 바꾸게 된다. 그렇게 방향을 잃은 노동자의 기술. 결국 <버드맨>의 아버지 리건 톰슨과 <스파이더맨>의 아버지 빌런 벌처에게는 재기 대신 '추락'이 기다릴 뿐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히어로의 외관을 떼어내고 나면, 질풍노도 소년이 책임감 있는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서사를 고스란히 답습한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혹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리 쉽게 마음이 털어지지 않게 되는 건 다른 지점에 있다. 츤데레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 돈 많아 모든 것이 가능했던 그러나 모럴헤저드하지 않은 이 시대의 영웅으로서의 아이언맨보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도 가족과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악의 길을 걸으며 재벌 스타크를 증오하는 '추락하는 영웅' 빌런 벌처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돈이 많지만 그럼에도 도덕적인 아이언맨이라기보다는, 가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 날개 꺾이고 만 빌런 벌처였을 경우가 더 많으니까,

영화는 어벤져스 팀의 일원이 된 스파이던맨이 고향 뉴욕을 지키는 보이스카웃, 아니 이제 당당한 한 몫의 영웅으로 '홈커밍'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온 그곳엔, 그가 흠모하던 홈커밍데이의 꽃이던 그녀는 없다. 첫사랑도 가고, 가족을 위해 잠시 하늘로 날아올랐던 아버지도 역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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