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도 이럴까 싶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부패한 정권일수록 집권이 끝난 후까지도 뉴스를 제공하기 마련인데, 박근혜 정부가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인수위도 없이 시작해야 하는 새 정부에 달랑 A5지 몇 장만 인수인계했다는 전대미문의 몰상식한 인수인계를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였지만, 정작 두 달이 지난 지금 청와대 곳곳에서 당시 만들어졌던 문서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인지는 몰라도 그 문서들이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들이라 청와대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놀라는 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래서 필사적으로 압수수색을 막았을 것이다”부터 시작해서 “어떤 의인이 후임자에게 남겨둔 내부고발”이라는 추측까지 다양한 수군거림이 청와대를 향했다. 청와대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해도 좋을 상황이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밝히며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아쉽게도 청와대 의인설은 힘을 잃게 됐다. 청와대에서 더 많은 문건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무슨 지난 세기의 유적지도 아니고 발굴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번에는 정무기획비서관실 캐비닛서 비서실장 주재 수석회의 문건 254건을 포함해서 무려 1,361건의 문서가 발견됐다.

양이 많은 만큼 분야도 다양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의하면 2차 발굴 문건에는 삼성, 블랙리스트, 언론 활용 등이 포함되어 있고, 위안부 합의와 세월호, 국정교과서 추진, 선거 등 지난 정부에 있었던 굵직한 이슈들에 대한 지시사항이 담겨 있었고, 상당부분이 적법하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요약된 제목만으로도 무엇 하나 적법해 보이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굳이 내용을 보지 않아도 복마전이었던 지난 정부의 청와대 상황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심지어 다이빙벨 상영금지 방안 문건도 나왔다고 한다. 17일 노컷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에는 세월호 대응과 관련해 영화 다이빙벨 상영 금지 대응 방안도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사라진 일곱 시간이 지난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만큼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검찰과 박영수 특검이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렸어도 성공하지 못했던 청와대 압수수색이었지만 정권이 바뀌고는 그 자료들이 마치 제 발로 걸어 나온 듯한 이 믿기 어려운 현상에, 국정농단의 실체를 증명할 증거들이 나와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암담한 과거와 직면하게 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정우택 원내대표, 류여해 최고위원 Ⓒ연합뉴스

어느 하나도 외부에 유출되면 정권의 존립을 뿌리째 흔들 만한 문건들이 이처럼 방치되어 아무도 몰랐다는 것. 그만큼 기밀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고 태만했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보안은 동네 주민센터만도 못한 것이었다고 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문건들이 캐비닛에만 방치되었던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어디로 흘러가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과장일까? 이토록 해이한 기강이었다면 지난 국회청문회에 출석한 청와대 직원들이 하나같이 “모른다‘고 한 것이 권력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자학적인 상상까지 하게 된다.

권력의 최상층부가 이런 상태였기에 세월호 참사에도 전혀 대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는 것이 새삼 증명된 셈인데 만에 하나 전시 상황이라도 벌어졌다면 어쨌을지는 상상하기도 두려울 지경이다. 그런 아찔한 위기감이 뒤늦게 엄습하는 이 상황에 지난 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야당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 아니냐는 한가하고 다분히 관용적 반응이다. 설혹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더라도 그것을 방치한 전 정부의 위법사항이지 그것을 발견한 현 정부에 꼬투리 잡을 일은 아닐 것이라는 팩트체크 정도는 하든지 말이다. 반성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럴 때는 최소한 침묵할 줄 아는 염치라도 있어야 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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