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헌법에 의거하여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헌법'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주었다. 지금 일각에서는 개헌 논의가 불붙고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토록 한 87년 체제의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지금 필요한 것이 개헌일까? 그리고 개헌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SBS 스페셜>은 우리 헌법의 지난 과정을 짚어보는 <헌법의 탄생>을 통해 현 시기 개헌론자의 속내를 살펴보고, 만약 개헌을 한다면 그 새로운 헌법이 담보해야 할 내용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87년 '직선제 개헌'. 거기엔 2017년 촛불 광장의 기억처럼, 4.13 호헌 철폐에서 6월 항쟁, 그리고 6.29 선언으로 이어진 '쟁취해낸 역사'로서의 감동이 서려 있다.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거리를 메웠던 넥타이 부대의 물결, 이한열 열사 등의 목숨을 담보로 쟁취해낸 '민주화'의 기억. 4월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헌 불사 호헌'을 주장했고, 이에 사람들은 거기로 쏟아져 나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합의 하에 체육관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 냈다.

그런데 다큐는 그렇게 승리의 역사로 기록된 그 시대를 다시 한번 들춰본다. 과연 승리만의 역사인가? 그들은 왜 대통령 직선제를 내주었을까? 무엇보다 가장 큰 계기가 된 건 서울 거리를 채워낸 민심이다. 서울은 광주와 같이 고립시킬 수 없는 대한민국의 수도였기에, 그 거센 민심을 쉽사리 '총칼'로 제압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심'의 요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헌의 역사, 그 진정한 의미는?

‘헌법의 탄생’ 편

87년 개헌의 의미를 짚어보기에 앞서, 다큐는 이전 8차례 개헌 과정을 짚어본다. 과연 지난 9차례 개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역사상 첫 개헌, 아직 전쟁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상정했다. 하지만 국회가 이에 반대하자 관제 데모 등을 조작하는 한편, 국회의원 12명 등을 공산주의 혐의로 체포하며 트루먼 대통령 등 국제 사회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국회의원안'을 발췌한 내용으로 경찰에 포위된 국회의원들의 기립 투표로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이 가능한 개헌을 찬성 163표, 기권 3표로 통과시켰다. 바로 이 첫 개헌은 지난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정권 연장을 위한 개헌', 바로 이게 우리 헌법 개정의 역사이다.

그 다음 2차 개헌은 더 기가 막힌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중임제 철폐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은 이른바 '사사오입'이라는 어불성설의 수학적 논리로, 개헌 정족수에 1표 미달한 135 찬성을 '개헌안 가결'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밀어붙인 권력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4.19 혁명을 통해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내각책임제와 대통령 국회 간선제, 그리고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 등의 3.4차 개헌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런 4.19 혁명의 결과물은 61년 5.16 쿠데타에 이은 5차 개헌으로 다시 대통령 직선제로 돌아서게 된다.

‘헌법의 탄생’ 편

박정희 정권 개헌의 역사는 더욱 자명하다. 대통령 중임제 범위를 3번으로 연장하는 6차 개헌,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선출, 임기 6년의 중임 제한 철폐의 '유신 헌법'의 7차 개헌이 이루어지며 박정희 영구 독재의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헌법을 뜯어고치며 영구 집권을 획책한 박정희는 역사의 심판을 받았고, 이어 권력은 5.18을 거쳐 군화발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다시 한번 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통령 선거였다.

87년 직선제 개헌은 민중항쟁의 결과물?

이렇게 짚어본 대한민국 개헌의 역사는 정권의 연장사요, 집권 권력의 획책사였다. 그렇다면 6월 항쟁을 통해 얻은 직선제 개헌은? 다큐는 안타깝게도 이 9차 개헌 역시 이면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다.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지만 좀처럼 수그러들기는커녕 나날이 거세어져 가는 민심의 이반에 대해, 당시 정권은 직선제 개헌 카드를 이미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마치 민심에 대한 완전항복처럼 보였던 6.29 선언 당시, 이미 전두환과 노태우 측은 '직선제 개헌'을 해도 자신들의 정권 연장이 가능하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헌법의 탄생’ 편

즉 야권의 두 거대한 잠룡 김영삼, 김대중 세력이 단일화를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적중했고, 6월 항쟁은 '보통 사람 코스프레'를 했던 노태우 정권으로 넘겨졌다. 여기서 문제는 노태우 정권 자체보다, 87년 개헌 협상 과정에 있다고 다큐는 짚는다. 여야 8인이 모여 합의 하에 준비한 개헌. 하지만 그 준비 기간은 불과 40일에 불과했고, 야당의 경우 오로지 대통령 임기 등의 '잿밥'에만 눈이 어두워 87년 체제의 본질을 간파하거나,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당시 협상단은 직선제로 대통령 한 번씩 돌려먹기 하는 데만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쫓겨 권력구조에만 정신이 팔렸던 87년 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5차 개헌 내용을 거의 대부분 수용했다. 심지어 '군인 국가 배상 금지법', '대통령 긴급 명령권', '공무원 노조 금지', '대통령 대법관 임명권' 등 유신 헌법의 잔재도 온존한다. 이에 심용환 연구가는 여전히 우리는 '박정희가 설계한 시대, 박정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정의 내린다.

박정희 시대의 완전 종결을 위한 개헌 논의

‘헌법의 탄생’ 편

그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87년 체제의 종식은 궁극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공식적 폐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개헌'일까? 이에 헌법학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앞서 짚어보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는 권력의 정권 연장 획책의 역사이고, 그것은 곧 민심 이반의 치욕의 역사였다. 이유는 개헌 논의가 매번 '권력 구조 개편'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또 그러기에 지금 야당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헌 역시 다시 한번 '개헌의 악몽'에 우리를 끌고 들어갈 여지가 크다고 다큐는 짚는다.

그렇다면 이제 그 수명을 다한 87년 체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서구 민주주의 역사에서 '개헌'이란 민중투쟁의 결과물이었다. 반면 우리 개헌의 역사는 집권자의 혹은 기득권 세력의 정권연장 음모였다. 이런 악몽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권력 구조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헌이어야 하는가, 어떤 사회적 합의의 내용이 담겨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권력 구조냐’라는 블랙홀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이 논의가 개헌의 진짜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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