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G20의 연례회의가 의장국인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개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열린 다자간 회의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특히 국내 언론들은 정상회의 하루 전인 7월 4일 북한이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이에 관한 국제 사회의 제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 공동 성명에는 해당 내용이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G20정상회의의 목적이 회원국 간 경제협력으로 상정되어 있기에 원래 계획에 없던 북한의 도발을 중점 논의 대상으로 포함시키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이다.

실제로 7월 8일에 발표된 공동 성명문에는 세계화의 혜택 공유(Sharing the Benefits of Globalization), 탄력성 구축(Building Resilience), 지속적인 노동과 삶의 필수요구에 대한 증진(Improving Sustainable Livelihoods), 책임의식(Assuming Responsibility) 등 경제 관련 사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대북 강경 대응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G20 정상회의에서 대북 정책에 대한 합의나 결의문을 채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 중 이와 관련된 내용들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해당 기사의 내용을 G20 정상회의 일정에 따라 소개보고자 한다.

www.morgenpost.de/politik/article211155885/Suedkoreas-Praesident-macht-Nordkorea-ein-Friedensangebot.html

문 대통령의 신(新)베를린 선언 관련 보도

7월 5일 베를린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독일 메르켈 총리와 회담을 갖고 북한의 신형 ICBM 발사와 관련한 양국의 입장을 확인했다. G20 정상회의 관련 이슈 양국 간 협력 강화 등에 관해서도 논의했다. 독일 연방 홈페이지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은 대북 정책에 대한 양국 정상의 입장에 관한 것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 앞서 북한이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을 끼치고 있다(eine große Gefahr für den Weltfrieden)고 강조하면서 북한정권이 핵 및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러한 입장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독일은 북한의 로켓 개발과 핵 무장에 반대하기 때문에 평화를 추구하는 한국의 입장과 함께한다는 발언으로 전달되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은 즉각적으로 중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국제사회는)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문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7월 14일 메세베르크에서 개최된 G20 외교단회의(diplomatische Korps)를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더 많은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7월 6일 저녁 알테스 슈타트하우스(Altes Stadhaus)에서 개최된 쾨르버 재단(Körber Stiftung)의 초청 연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계승한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정상 선언 이행, 북한체제 안정을 보장한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남북한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협력으로서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 추진 등 5개 정책과제가 포함된 신(新)베를린 선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독일 언론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대표적인 정론지로 꼽히는 몇 곳의 보도 내용은 다음과 같다.

SZ(Süddeutsche Zeitung)는 ‘문:북한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Moon: Wollen keinen Zusammenbruch Nordkoreas)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첫머리에 ‘초대받지 못한 자, 부재하나 존재하다’(Nicht eingeladen, nicht dabei und trotzdem präsent)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신형 ICBM 발사를 통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독일 메르켈 총리와 회의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사일 실험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쾨르버 재단의 연설에서 북한의 정권붕괴를 원하지 않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두 나라의 공존번영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SZ는 ‘한국 대통령의 침착하고 냉정한 미래평화계획 입장은 지난 며칠간의 극단적인 사건전개와는 다르다’(Die gelassen und nüchtern vorgetragene Friedensvision des südkoreanischen Präsidenten steht im krassen Gegensatz zu den Entwicklungen der vergangenen Tage)고 보도했다.

또한 문 대통령이 북한의 핵 문제에 관해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한다’(Nordkoreanisches Atomprogramm bedroht den Frieden auf der ganzen Welt)고 표현한 것을 인용하여 현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장기적인 평화구축 및 통일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평했다. 한편 이 기사는 문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인권변호사(der Menschenrechtsanwalt ist erst seit wenigen Monaten im Amt)이지만 남한과 북한의 대화, 무장 해제, 평화에 관해 지난 10년 동안 준비해왔다고 묘사했다.

FAZ(Frankfurter Allgemeine)는 ‘로켓 실험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지지한다’(Trotz Raketentests Südkoreas Staatschef plädiert für Dialog mit Nordkorea)는 제하 기사를 통해 문 대통령의 쾨르버 재단 연설을 보도했다. 그는 지난 10년의 남북관계와 협상/대화가 ‘얼어붙었다’(vereist)라고 회상했으며 앞으로 남북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남한이 주도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문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했다(Moon gab an, sein Land wolle stärker als bisher eine Führungsrolle bei der Lösung des Konfliktes spielen).

FAZ는 SZ와는 다르게 미사일 실험과 핵 문제에 대한 이슈를 먼저 소개하고 신베를린 선언을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이번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매우 실망했고’(sehr enttäuscht), (북한이)‘불합리한 결정을 내렸다’(eine irrationale Entscheidung getroffen)라고 평가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생각하며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 도발을 행한다면 전 세계적인 차원의 추가 압력과 추가 제재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함을 피력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Berliner Morgenpost는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에게 평화협정을 제공하다’(Südkoreas Präsident macht Nordkorea ein Friedensangebot)라는 제목을 달아 신 베를린 선언에 대해 소개했다. 이 기사는 문 대통령이 연설 중에 모노톤의 목소리로 ‘평화’(Frieden)와 ‘안전’(Sicherheit), ‘대화’(Dialog), ‘신뢰’(Vertrauen)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고 묘사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한다’(Sowohl der Norden als auch der Süden wollen eine friedliche Halbinsel)라고 언급하면서 그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으며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미래를 위해 일한다면 자연스럽게 재통일이 일어날 것이다’(Wir wollen Hand in Hand an einer Zukunft arbeiten. Die Wiedervereinigung werde irgendwann ganz natürlich passieren)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Berliner Morgenpost는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 지난 70년간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가에 대한 매우 회유적인 발언(sehr versöhnliche Worte)이었다고 평가한다. ‘햇볕정책에서 달빛정책으로’(Von "Sunshine" zu "Moonshine")라는 소제목을 통해 이번 신베를린 선언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햇볕정책의 기조를 밝힌 이래 세 번째로 독일에서 발표된 남한의 대북정책으로 소개한다(두 번째는 2014년 드레스덴에서 발표만 되고 실행되지 않은 북한구호정책을 말한다.). 이어 독일의 녹색당(die Grüne) 소속 정치인 오미드 노우리포우어(Omid Nouripour)의 말을 인용해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현실정치를 향한 중요한 단계’(großen Schritt in Richtung Realpolitik)지만, 과거의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에 의존경향이 높다는 점이 우려(Südkoreas Präsident sei also auf die Kooperation mit Xi Jinping und Donald Trump angewiesen.)된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참석은 신베를린 선언이라는 대북정책 발표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위에서 소개하지 않았지만 메르켈 총리와의 회담이나 쾨르버 재단에서의 연설, 한ㆍ미ㆍ일 정상회담 결과 등과 관련한 몇몇 단편 기사에서는 G20이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및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비판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이번 행보는 새로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평화협력이라는 점을 밝히고 다른 국가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데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고 본다.

다만 한 가지, G20정상회의가 회원국 간의 경제 협력에 본디 목적이 있었던 만큼 경제 분야에 관한 한 우리나라와 여러 국가 간의 회동 내용을 다룬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G20 정상회의 관련 기사를 검토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북한의 주변국으로나마 비교적 뚜렷하게 인지되고 있는 것에 비해 경제 분야에서는 흐릿한 인상을 지닌 대한민국의 뒷모습을 느꼈다면 지나친 발언일까. 세계 경제에 선명한 존재감을 심어 줄 새 정부의 약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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