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다. 시사교양 관련 프로그램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요즘처럼 촬영장비가 저렴하고 효율적인 넌리니어 편집장비를 사용하는 환경에선 인건비 비중은 크다.

방송사엔 표준제작비란 게 있다. 방송사마다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기준으로 표준제작비는 대략 4천5백만 원 정도다. <아마존의 눈물>이라든가 <북극의 눈물>, <누들로드>, <차마고도> 같은 특별한 경우엔 표준제작비의 몇 십 배 정도다. 그런데 방송사 내부 정규직이 받는 인건비와 같은 월급 그리고 자체 장비 사용료는 표준 제작비 산정에 들어가지 않는다.

독립PD는 50분짜리 한편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평균적으로 2천만 원을 받는다. 물론 필자와 같은 특권층(?)은 4천만 원 혹은 5천만 원을 받기도 한다. 독립PD가 받는 제작비엔 자신의 인건비는 물론이고 장비사용료 제작진행비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제작 기간이 1년이든 3년이든 방송사에서 일방적으로 책정한 제작비 안에서 비용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방송을 틀어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방송사는 모든 권리를 가져간다. 의무는 오롯이 제작사와 독립PD의 몫이다.

▲ MBC '아마존의 눈물' ⓒMBC
최근 들어 일부에선 그나마 제작비도 주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삥을 뜯는다. “기획은 맘에 들어. 근데 요즘 방송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어디서 협찬을 물어와. 그러면 편성을 해보도록 하지.” 독립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협찬금이란 걸 구해온다. 1억 원의 협찬금을 약속받았다. 그런데 독립PD에게 돌아오는 제작비는 잘해야 5천만 원이다. 나머지 5천만 원은 방송사가 ‘전파송출료’란 명목으로 삥을 뜯는다.

방송사도 직접 협찬금을 구한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아마존의 눈물>이다. 전체 제작비 20억 원에서 방송발전기금 4억 원 정도의 규모로 대략 알려지고 있다. 그 돈은 오롯이 제작비로 들어간다. 독립PD들처럼 삥을 뜯기는 일은 없다. 아마존에서 20억 원의 돈을 쓰는 제작진들의 신파 같은 고통을 보며 시청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엄청난 감동으로 가슴을 끌어안는다. “명품이야!”란 찬사와 함께….

방송사의 제작진이 벌레에 물어뜯기고 밀림을 헤매는 사이, 그들의 통장은 고액의 출장료와 함께 월급으로 채워진다. 주지해야 할 것은 출장료와 월급은 별개란 것이다. 즉 월급에 출장료가 플러스 되는 것이다. 그 출장료가 제작사의 독립PD 연출료 보다 많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설령 독립PD의 출장료를 제작비로 산정하면 인정이나 해줄까?

독립PD는 그 보다 더 험악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 보장도 없이 목숨을 내걸고 일하지만 통장은 늘 가물다. 결국 명품이란 것은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어요”, “우리 조연출이 죽어가요”란 20억 원의 신파다. 일부 식자는 거기에 ‘인문 다큐멘터리’란 화장품을 발라준다. ‘인문다큐’의 개념조차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자. 세련된 ‘몬도가네’정도에 ‘인문다큐의 명품’란 훈장을 주는 건 아닐까? 국내 시청률 25%면 모든 게 다 용인된다. 그 20억 원의 명품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다면, 그럴 확률은 지극히 적어보이기에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글로벌콘텐츠는 결국 국내 전시용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한 편 제작비가 2억 원이었던 <인간의 땅>은 3년에 걸쳐 제작됐다. 다섯 편이면 10억 원이다. 10억 원엔 3명의 독립PD인건비와 촬영감독료, 모든 장비 사용료, 현지 출장 진행비, 그밖에 스태프 비용이 포함된다. 참고로 박봉남PD가 3년 동안 <인간의 땅> 제작에 들어가면서 얻은 수입은 4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연봉으로 치면 1천 3백만 원이다. 그는 45살로 두 아이의 아빠다. 여의도 방송가에서 박봉남PD는 스타급 독립PD다. 스타급이 이 정도다. 여기서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아마존의 눈물>을 만든 MBC의 PD가 받은 출장료는 얼마일까? 적어도 말이다. 박봉남PD가 <아이언 크로우즈>를 만들면서 받은 연봉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땅>은 KBS 내부의 양식 있는 몇몇 PD에 의해, 일부 저작권이 독립PD에게 이양된 상태다. 그렇게 할 수 있었기에 5부작 <인간의 땅> 가운데 <아이언 크로우즈>가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이란 쾌거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최근 유럽에서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하고 있는 <신의 아이들>의 이승준 감독, 관객동원 300만이란 신화를 일군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은 방송가의 독립PD다. 이승준PD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난을 겪고 있다. 이충렬PD는 전대미문의 흥행으로 그나마 많이 편해졌다. 이 두 사람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길 듣다보면 눈물만 나온다.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들은 영국의 BBC와 같은 영상 콘텐츠 강국을 희망한다. 그래서 열심히 BBC와 NHK를 벤치마킹하며 ‘명품’을 만든다. 그들이 정작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정당한 배분이다.

시청자들이 감동하며 보는 ‘명품’속엔 여의도 방송가의 비정규직 프리랜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보이지 않는 착취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방송사는 항상 남의 진실만 들춰 낼뿐 자신들의 진실은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는 그 악취를 전혀 맡지 못한다.

방송FD, 라디오통신원, FM라디오작가, 카메라조수, 라디오DJ, TV구성작가, TV리포터 등 안 해본 것 없이 방송가에서 21년 동안 구르며, 다큐멘터리 방송과 영화를 제작하는 비정규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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