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알린 <추노>가 심호흡을 깊이하고 있는 듯합니다. 11회와 12회 모두 조금은 지난한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다음 주를 기대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시청자들과의 호흡에서도 제작진들의 노림수는 동일하지 않을 듯합니다. 주연들이 스스로의 캐릭터에 갇혀 식상해지며 역설적으로 조연들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반정을 꿈꾸는 송태하와 사랑을 쫓는 대길

다시 함께 하게 된 어제의 용사들은 원손을 데리고 목적지로 향합니다. 청나라에게 인조 15년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던 인조는 철저하게 친명배금정책을 펼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 인조에게 친금(후에 청나라가 된 금)을 보인 소현세자가 달갑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고, 그로 인해 소현세자가 죽임을 당하고 연이어 소현세자의 자식들까지 죽임을 당합니다.

마지막 남은 원손을 죽이려는 음모는 좌상 이경식이 인조의 명을 받들어 은밀하게 진행된 일임이 밝혀집니다. 12회에서 반정을 이끄는 무리들이 등장하며 <추노>의 극적인 흐름이 인조의 왕위 등극으로 인해 소외된 대북파들의 반란으로 읽혀집니다. 후금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그들과 소현세자는 인조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정적이었으니 말이지요.

'삼전도의 굴욕'과 친명을 내세운 인조와 서인 정권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음을 당했고 소현세자의 동생이며 인조와 생각이 같은 봉림대군이 조만간 등장합니다. 적통인 원손을 세자로 책봉해 반정을 꿈꾸는 조선비 일파와 그들 세력과 대립하는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과의 대립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추노>입니다.

권력에 대한 야망이 지대한 조선비가 송태하를 장군으로 모신 이유는 소현세자를 최측근에서 보필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군인으로서 자신의 가족들까지 버리는 충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송태하는 그저 자신들의 반정에 필요한 중요한 무기일 뿐입니다.

그런 송태하가 알 수 없는 여인네를 데려와 거병을 앞두고 혼례를 치른다는 사실이 못마땅 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 거사를 그르칠 것 같은 송태하에 대한 불신은 이후 극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을 듯합니다.

좌상이 건 낸 거금을 받고 추노 중인 대길과 패거리들은 송태하를 쫓기는 하지만 '동상이몽'속에서 와해되어갑니다. 그 어떤 것보다 앞서는 대길의 언년이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그들의 거사가 그르칠 위기에 몰립니다. 어렵게 찾아 들어간 반정의 중심에서 송태하와 언년이의 행복한 모습을 본 대길은 모든 것들을 자포자기 합니다.

죽음까지 감내하면서 찾았던 여인이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려는데 힘들지 않은 이라면 10년의 세월을 찾아 헤매지도 않았겠지요. '혁명에 낭만 따위는 필요 없다'는 조선비의 말과 '추노에 낭만 따위는 필요 없다'는 일맥상통합니다.

언년이를 둘러싼 송태하와 대길은 혁명과 추노에 적일 수밖에 없는 낭만을 꿈꾸고 그 낭만에 취해 있는 인물입니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혁명과 추노보다도 앞서는 것이 사랑하는 여인입니다.

어린 동자승이 추노 패거리인 왕손이를 보며 '구천을 헤맬 상'이라고 하는 말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동자승의 이 말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추노 패거리들의 마지막을 암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무표정하게 긴 대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동자승의 존재감은 대단했습니다.

언년이와 선영의 눈물

여주인공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다해는 억울할 듯합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역할에 충실할 따름이건만 모든 질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상황이 황당하기도 하겠죠. 12회에서 보여 진 언년이의 역할은 송태하와 대길이라는 인물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는 바보스러운 팜므파탈의 모습이었습니다.

대길은 죽었고 생사를 함께하며 진정한 남자로 생각한 송태하와 결혼을 앞둔 그녀에게 중요한건 사랑입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위해 그녀는 목숨도 버릴 용의가 있습니다. 아직 만나지 않은 대길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송태하를 받아들인 그녀에게 다시 악재가 찾아옵니다.

송태하를 반정의 중요한 무기로 사용하려는 조선비는 언년이를 눈엣가시로 생각해 송태하와 떨어지게 만들려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길과 조우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사를 앞두고 사랑이냐 충정이냐의 기로에 선 송태하로서는 그 어느 것도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끈이기에 그의 딜레마는 <추노>의 중요한 흐름으로 작용하겠죠.

이런 사랑에 휩싸여 거사의 방해물이 된 언년이와 모든 것을 잃은 채 송태하를 쫓는 철웅의 아내인 뇌성마비 선영은 비교됩니다. 둘 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남자들이 사랑하는 언년이와는 달리 남편마저도 자신 평생의 과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버림받은 선영은 그래서 비교되는 인물입니다.

좌상으로 인조의 명을 받들어 일을 처리하는 이경식의 아픈 손가락인 여식 선영은 남편을 한없이 감싸지만, 이경식을 경멸하기 시작하는 남편에게마저 버림을 받습니다. 그녀의 역할이란 한정적일 수밖에는 없지만 주인공들의 반대에 선 이경식과 황철웅의 중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자임할 듯합니다.

설화에 이어 선영에게 까지 존재감이 밀리고 있는 언년이 혜원의 역할론은 중요합니다. 중요한 인물들인 송태하와 대길을 이어주는 중요한 끈인 혜원의 역할에 따라 <추노>의 완성도가 결정 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12회까지 보여 진 혜원의 역할은 미미함을 넘어 화제가 되었던 '민폐 캐릭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송태하와 결혼을 앞둔 혜원은 다시 한 번 누군가에게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고, 그녀로 인해 주인공들을 궁지로 몰아넣음으로서 시청자들에게는 허탈한 존재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능동적인 역할로 주목을 받았던 설화와 뇌성마비로 눈에 띠는 연기를 펼치는 선영에게도 묻히는 역할의 존재감은, 이다해라는 배우를 30%를 넘는 대박 드라마 <추노>에서 가장 빈약한 캐릭터로 만들고 있습니다.

너무 사랑을 받아 존재감이 사라져 가는 언년이 혜원과는 달리 버림받고 멸시받아서 도드라지게 주목받는 설화와 선영의 역할은 <추노>가 의도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존재감입니다. 짧은 대사와 일그러진 얼굴로 연기하는 선영이, 밝은 웃음을 지으며 사랑에 기쁜 눈물을 흘리는 혜영보다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들 역할의 힘입니다.

나쁜 남자 철웅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선영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송태하와 대길을 사지로 몰아넣는 혜원은 제작자가 만들어낸 희비이며 시청자가 발견한 탄식입니다. 나락으로 빠진 혜원이 <추노>에서 중요한 역할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오늘 등장한 동자승보다 못한 존재감은 아쉽기만 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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