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이 탐구한 한국인의 원형, 그 두 번째

'그럼 그렇지', '어쩔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이 말만큼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을까? 냄비근성이니 속물근성이니 하는 갖은 수식어들이 결국은 우리를 ‘그런 속성'으로 귀결시키는 결론에 우리는 거부감 없이 동조하고 스스럼없이 인용한다. 이렇게 우리를, 우리 민족을 편의적으로 재단하는 우리의 '관성'에 대해, EBS 강의에서 도올 김용옥은 식민지적 경험의 부작용 혹은 6.25와 같은 동족상잔 전쟁의 소산이라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도올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 <동주> <박열> 포스터

얼마 전 출간된 <식민지 트라우마>에서 유선영 씨는 '피식민지 민족은 힘의 격차가 불러온 폭력적 사태들에 직면해 열등감, 히스테리와 공격성, 수치와 죄의식 등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 감정, 정신의 상흔들이 민족의 심연에 그리고 역사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의지와 상관없는 역사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에게 사실 우리는 이렇게나 자부심을 가질만한 민족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동주>와 <박열>의 이준익 감독이다.

2015년에 이어 2017년 이준익 감독이 들고 온 인물들은 식민지 일제하를 살아갔던 청춘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준익은 이제는 많이 마모되고 상흔으로 인해 자기방어기제만이 강화된 오늘날 사람들에게 한국인, 그 아름다운 인간형의 원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동주>로 시작된 일제 하 젊은이들의 사상과 실천

시작은 <동주>였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흑백의 차분한 톤으로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조국을 잃고 간도로 이주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거기서 자란 청춘들의 삶에서부터이다. 고향을 잃고 떠난 사람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고향을 만들어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일제에 짓밟힌 본래의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곳. 하지만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조국을 잊지 않는다. 그 시대에도 대단했던 부모들의 교육열로 창씨개명을 피해 그들을 일본으로 보내지만, 거기서 그들은 입신양명 대신 시대를 온몸으로 앓아낸 시인으로, 자신을 내던진 독립운동가로 성장해 나간다.

영화 <동주> 스틸 이미지

'동주를 만나러 갔는데 몽규를 만나고 왔다'는 평처럼, 영화 <동주>는 그 시대를 시로 앓던 동주란 순수 문학청년 못지않게, 동주만큼 문학을 사랑했지만 조국을 위해 기꺼이 문학도, 자기 자신도 내던졌던 순수한 송몽규를 조우하게 된다. 영화의 행간을 통해 그가 무장독립운동에 뜻을 두었고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 무람없이 송몽규란 인물을 통해 설득된다. 사상이 먼저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청춘의 삶, 그 선택과 실천으로서의 사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대를 순수하게 아파했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돌아보며 아파했던 그 청춘들을 통해 우리는 일제시대 사상운동을 했던 젊은이들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공과 나의 일신상의 이익을 넘어, 시대를 아파하고 고뇌하며 거기에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이타적인 한국인의 원형을 찾게 된다. 그 원형은 이제 2017년 <박열>을 통해 조금 더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된다.

2017년의 죽비와 같이 다가온 <박열>

<동주>를 통해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시대에 고스란히 자신을 던져 아파했던 순수의 결정체 같던 동주와 몽규를 발견했다면,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식민지라는 시대를 호탕하게 살아냈던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영화 <박열> 스틸 이미지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천왕제의 정부가 위기에 빠지자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방식으로 일제는 그 책임을 한국인에게 몰아 관동대학살은 방조했고, 그것도 모자라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박열 등을 대역모 사건의 배후로 조작하고자 한다.

일제에 의해 설계된 사건의 프레임으로 보면 분명 피해자이고 희생자가 되어야 할 박열은 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옥죄어 오는 일제의 법망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여 '자신만의 프로파간다'로서 황태자 암살 사건을 활용한다.

조작된 사건을 기꺼이 자신이 했다며 재판 과정을 오히려 이용하기 시작한 박열. 그는 가장 말을 안 듣는, 가장 버릇없는 조선인으로 단식 투쟁 등의 갖가지 수단을 활용하며 일제를 당황케 하며 재판을 통해 끝까지 자신의 강고한 의지를 천명해 나간다.

그런 박열의 모습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재판정'을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장으로, 감옥을 투쟁의 장으로, 조서나 항소이유서를 시대를 대변하는 사상서로 만들었던 학생 운동의 전설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사회운동을 했던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했던 그 영웅적 모습을 이제 '박열'이라는 걸출한 한 인물을 통해 영화는 복기해낸다.

영화 <박열> 스틸 이미지

일제의 조작과 회유, 폭력적 탄압에도 굴종하기는커녕, 그것을 기꺼이 자신의 의지와 사상을 널릴 알릴 수 있는 기회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일본의 압제 하에서 고통 받는 조국의 민중에게'희망을 심어주는 투쟁의 장으로 삼았던 박열. 그의 아나키즘은 을로서의 삶에 지쳐가는 2017년의 우리에게 동주와 몽규의 순수함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 속 시원한 인간형이다.

동주를 보러 갔다가 몽규를 보고 왔듯, 박열을 보러 갔다가 가네코 후미코를 보고 왔다는 평이 나온다. 그렇듯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가 보이는 동지애적 사랑과 평등한 관계, 그리고 자신들을 겁박하는 제도와 권력에 대한 열렬한 저항의지로 표현되는 두 사람의 아나키즘은, '독립'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넘어 제도화되고 규격화된 삶에 길들여진 모든 사람에겐 '죽비'와 같은 신선한 충격이다.

그렇게 그간 우리가 편향된 역사 교육을 통해 바라보았던 일제하 사회주의는 몽규를 통해, 아나키즘은 박열을 통해 그 시대 청춘들이 살아가는 한 방식으로 오늘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장 순수한 독립의지에 대한 표현으로, 혹은 일제의 그 모든 제도와 권력에 대한 철저한 거부로 그들이 선택했던 사상과 실천 방식들을 이제 우리는 몽규와 박열이라는 인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냄비 같던’, 더 심하게는 '엽전'이라 폄하했던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들의 순수하고 호탕한 원형을 숙제처럼 받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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