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KTV <길위에 묻다>의 한장면이다.

올해는 TV가 시청자들에게 뼈아픈 질문들을 간혹 던졌다. 봄에는 MBC <고맙습니다>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들추고 잘못된 상식들을 일러줬다. 겨울이 다가 오자 KBS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전과자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어떤 대답을 할지는 미리 정해져 있다. "에이즈에 걸린 봄이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겠어요"와 "전과자를 바라보는 편견을 깨야겠어요"라는 상식적인 대답이다.

그러나 이런 정답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물음이었다. 봄이는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걸린 너무나 예쁜 꼬마다. 인순이는 실수 아니 사고로 사람을 죽였고, 돈없고, 빽없다 보니 감옥에 다녀온 사회의 희생양이다. 심지어 둘다 착하다. 밝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세상이 에이즈인과 전과자에게 가지는 진짜 편견은 사실 따로 있다.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 죄값이고, 누군가에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이니 그런 취급을 해도 당연하다는 태도다.

KTV <길위에 묻다>가 돋보인 이유는 그렇게 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동욱(안재환 분)은 생명보험에 들기 위해 건강검진을 했다가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를 보며 시청자들은 먼저 어쩌다가 에이즈에 걸렸냐라는 1차원적인 궁금증이 먼저 일었다.

진단결과를 받아들고 동욱이 아내에게 고백했다. 살면서 낯선 여자와 잠자리를 한적이 몇번 있었다고 했다. 군대에 있을 때 휴가 나와서 그런적이 있었고, 회사를 다닐 때 술마시고 2차 간적도 있었다고 얘기했다.

에이즈의 주요 감염원이 혈액, 정액, 질 분비액이라고 했으니 그때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 때부터 시청자는 더 큰 갈등을 하며 보게됐다. 우리가 가진 편견의 실체는 더욱 추악했다. <고맙습니다>를 보며 흘리던 눈물과는 달랐다.

일단 그들은 봄이나 봄이 엄마처럼 늘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동욱을 쫓아내려고 할 때, 그는 법적으로도 그럴 수 없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집주인이 당장 방을 빼라고 달려들때 그의 아내는 계약기간이 남았다고 소리지른다.

어쩌면 이게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일상 생활에서 감염이 되지 않음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자신을 몰아낸다면 화내는게 당연한거 아닐까?

동욱은 "(에이즈에 걸리고)졸지에 외계인이 됐다. 초록색 피가 됐어"라고 울부짖었다. 결국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드라마를 지켜보며 '왜 에이즈에 걸렸냐'라는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알게됐다.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억울하고, 성관계를 통해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생각도 편견일 뿐임을 알았다.

이제는 여타 다른 병처럼 만성질환으로 분류되어 약만 잘 챙겨먹으면 된다는 병. 키스를 해도 옮지 않는 다는 병. 그 병을 놓고 걸린사람이나 주변 사람은 에이즈가 아니라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더 떨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길위에 묻다>는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한 개인을 파멸시킬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동욱의 아내 희수(박다안 분)는 새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이혼하지 않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엄마는 '아버지 없는 딸'라는 세상의 편견에서 희수를 보호하고 싶어서 그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봄이가 걱정이다. 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귀엽지 않은 봄이를 세상은 품어줄까? 자신은 성관계 때문이 아니라 수혈 때문에 에이즈에 걸렸다고 하면 뭔가 달라질까?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이었다. 그날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현재는 치료약이 발달해 당뇨병 환자보다 평균수명이 높았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의 20%가 사회의 냉대 때문에 자살하고 있다고 한다.

<길위에 묻다>는 지난해 11월 27일~28일 EBS에서도 방송됐던 드라마다. E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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