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퍼랑 펜치를 놨다. 도저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항상 고객으로부터 평가당하는 처지에, 건수와 월급이 비례한 소위 ‘근로자영자’가 고객과 월급을 등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했다. 6월 16일 우리는 LG유플러스 광주광산서비스센터를 멈춰세웠다. 인터넷 설치기사, 수리기사, 스케줄러, 내근직 모두 일을 놨다. 전 직원이 ‘업무거부’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속이 잡혀 있는 고객에게 연락을 드렸다. “저희 월급이 몇 달이 밀려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오늘 당장 못 찾아뵙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약속을 잡고 꼭 찾아뵙겠습니다.” 사정을 듣더니 격려하고 응원하는 고객들도 있었지만 반대도 있었다. “LG유플러스는 고객을 이딴 식으로 대하느냐?” “월급 밀리든 말든 그건 당신들 사정이지 왜 고객에게 피해를 주느냐?” 그때 우린 꼭 죄인 같았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게 다 사장님이 도망친 탓이다. 사장님은 5월 말일자로 사업을 접겠다고 했고 월급과 퇴직금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곤 사라졌다. 두 달치 월급과 퇴직금을 꿀꺽했다. 4대보험도 몇 달 동안 납부하지 않았다. 단체협약으로 정한 통신비도 안 줬다. 교육출장비도 주지 않았다. 노동조합비를 월급에서 공제하고서는 조합에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고객에게 상품권 프로모션을 시켜놓고 그것도 나 몰라라 했다. 월급을 주겠다고 한 날을 몇 번이나 어겼다. 이제는 연락조차 안 된다. 알고 보니 사업자도 동서(처제의 남편) 명의였다. 사장님의 나쁜 짓을 적기에는 칸이 모자란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떼인 돈을 받아낼 수 있을지다. 요 며칠 여기저기에서 가압류가 들어왔다. 확인한 것만 억 단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답답한 마음에 사장님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주소를 하나 확보했다. 찾아가보니 원룸이었다. 아쉽게도 인기척이 없었다. 돌아가려던 참에 우연히 우편함에 우편물이 수북이 쌓인 것을 봤다. 발신자는 대부분 대부업체들. 망했다. 사장님은 작정하고 판을 깔았다.

임금 체불, 단협 위반 같은 짓을 하는 파렴치한 작자는 눈앞에 있는 사장이고 이런 사장들은 전국에 깔렸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가짜다. 진짜 사장은 따로 있다. 홈서비스센터를 외주화해 영세업체들에게 중간착취를 허용한 ‘원청’ LG유플러스다.

떼인 임금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원청이고, 노조와 교섭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원청이고, 제대로 된 안전장비를 지급하고 비 오는 날 작업을 못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원청이고, 현장에 있는 노동자에게 위험한 상황을 판단하고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원청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원청이다. 원청 LG가 진짜사장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온몸으로 안다.

우리는 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이 되는 ‘하루살이’ 노동자다. 기본급이 138만원인 탓에 전공인 기술서비스보다 영업에 집중하는 ‘근로자영자’다. 건수를 올리며 자기착취를 경쟁하는 ‘부스러기’ 노동자다. 한 시간에 한 건씩, 이동하고 인사하고 전주타고 설치하고 설명하는 ‘불친절한’ 노동자다. 우리는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은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임금체불, 퇴직금 먹튀, 연차·근속 제로, 고객의 갑질과 욕설을 매일 버텨내는 노동자다.

며칠 전 KT의 인터넷을 고치는 노동자가 고객의 칼부림에 살해됐다. 인터넷이 불안정해 주식 단타를 못해 화가 났다는 게 피의자 말이었다. 그리고 오늘 SK브로드밴드의 노동자는 고객으로부터 “얼마 전 인터넷기사가 설치하러 갔다가 죽은 것 알고 있지 않느냐” “누구든 오면 죽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가 와서 전신주 작업을 못하는 탓에 불가피하게 인터넷 설치 날짜를 옮겨야 한다”고 사정을 이야기한 직후였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아니, 진짜사장이 우리더러 이렇게 살라 한다. 망할 놈의 하도급 체계에서 권리 없는 노동자로 일만 하라고 한다. 돈은 우리가 벌어다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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