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찰리 채플린이 남긴 명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는 가족 영화다. 금산에서 조그마한 이발소를 운영하는 모금산(기주봉 분)의 일상은 지극히 단조롭다. 손님들 머리를 다듬는 행위를 제외하곤 사람들과 딱히 어울리지 않는 모금산은 그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자처한다.

그렇게 외톨이를 자처하며 별일 없이 살아가는 듯 했던 모금산에게 중대한 사건이 생겼다. 보건소 의사는 모금산이 위암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봐야겠지만, 모금산의 위암은 기정사실이 된 것 같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으니, 단단하고 견고해보였던 모금산의 지루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동안 데면데면하던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고, (마치 찰리 채플린을 보는 듯한) 종종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더니, 서울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아들 모 스데반(오정환 분)과 아들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 분)을 불러들어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흑백 무성영화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이미지

그동안 아버지와 별 왕래가 없었던 아들은 아버지가 젊은 시절 배우를 꿈꾸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돌출 행동을 일삼는 것이 영 꺼림칙하다. 어색한 부자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영화 촬영을 이끌어가는 이는 스데반의 여자친구 예원이다.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것 같이 못미더운 스데반과 달리, 예원은 똑똑하고 당차며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진취적인 캐릭터이다. 15년 전 엄마를 여의고, 모성애의 부재 속에 살아가던 스데반에게 예원은 자꾸만 기대고 싶은 엄마 같은 존재이면서도, 아내가 죽은 이후 세상과 단절된 외톨이로 살아가던 모금산의 말 못할 사정을 헤아리는 속 깊은 큰딸 역할까지 해낸다.

틈나는 대로 큰아주버니 금산에게 반찬을 갖다 주는 금산의 올케의 말을 빌러,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모씨 부자를 누군가(여자)의 도움이 없으면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결핍된 존재로 그려내고자 한다. 아내(엄마)의 죽음 이후 부자 관계는 심각하게 단절됐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자꾸만 어긋나게 되는 아버지와 아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폭발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의외의 사건'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극적 장치'였는지 궁금하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소재, 이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꼭 독립 영화에서도 봐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꼭 그 '의외의 사건'으로 가뜩이나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이미지

장면을 구성하고 컷을 나누는 데 있어서 아쉬움이 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몇몇 사려 깊은 장면과 이미지만으로도 사람들의 뇌리에 따뜻하게 기억될 영화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장면을 꼽으라면, 모금산이 아들 스데반의 어린 시절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갑자기 사레들린 씬, 요즘 에세이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시네마베리테 기법(등장인물의 대화, 인터뷰 등 녹음한 뒤 그에 맞는 시각적 소재를 촬영 편집)을 활용한 모금산의 내레이션 시퀀스이다. 이 두 장면만으로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감독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찰리 채플린의 단편들을 모아서 보는 것 같은, 극중 모금산의 단편 영화는 그것만 떼어 놓고 봐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무조건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를 강요하지 않는 태도도 좋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섣불리 봉합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화자(감독)의 태도가 다소 무책임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건 고작 100분 남짓한 영화 안에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끌리는 장면도 많은 반면, 아쉽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관객들이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를 보고 잠시나마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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