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연일 터져 나오는 ‘막말’ 논란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은 막말을 잘 하는 사람을 지도부로 뽑기로 결정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태도는 막말의 문제를 넘어 정치에 대한 인식을 평가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0일 문제 삼은 ‘막말’은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의 발언이다. 이철우 의원은 전당대회 관련 19일 제주 퍼시픽 호텔에서 진행된 타운홀 미팅 일정에 참석해 “대통령 선거는…대통령 선거까지는 안 갈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거나 중도 사퇴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철우 의원의 이 발언은 지난해 말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했다는 말과 함께 엮여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철우 의원은 당시 “탄핵이 가결돼 내년 7월 대선을 하면 통째로 야당에 갖다 바치자는 얘기와 같다”, “대통령을 뺏기면 야당은 샅샅이 전범 잡듯 나설 거다. 이 정부에서 설쳤던 사람들은 국민 손에 끌려 나갈 수 있다”, “대통령이 조기 퇴진하되 탄핵 대신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고 있으면 세월호 학생들처럼 다 빠져 죽는다”고 했다.

막말을 따져보자면 마찬가지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출마자인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홍준표 전 지사는 최근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신문과 방송을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 시키고 청와대 특보 자리 겨우 얻는 그런 언론이 있더라”고 말해 중앙일보와 대립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일 홍준표 전 지사는 중앙일보와의 갈등을 두고 페이스북에 “아직 자유한국당이 살아있다는 모습 보여주는 효과가 있어서 그리 나쁘지 않다”고 쓰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홍준표 전 대선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철우 의원과 홍준표 전 지사의 발언을 묶어서 평가해보면 어떨까. 홍준표 전 지사가 중앙일보를 물고 늘어지는 의도는 명백하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원유철 의원 등과 대립구도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억울하게 여기는 자유한국당 핵심 지지층에는 긍정적인 인물로 어필해보겠다는 것이다.

아직도 자유한국당 핵심 지지층은 JTBC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이 홍석현 전 회장과 정치적 음모를 꾸며 최순실 씨의 태블릿PC 관련 보도를 해 정권을 야당에 갖다 바쳤다는 가짜 뉴스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 홍준표 전 지사의 발언은 이 시나리오를 그대로 재론한 것에 불과하다.

이철우 의원의 발언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당시 야당이 정권을 탈취해간 것이며 자신들도 결국 똑같이 당하고야 말리라는 믿음을 반영한 발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재판에는 아직도 열성 지지자들이 나타나 “대통령께 경례”를 외친다. 이철우 의원의 발언은 자유한국당이 바로 이러한 억울함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세계관의 소유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국정농단으로 민주공화국의 원칙과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진실을 거부한다. 정치를 명분과 당위에 의한 것으로 보지 않고 권력을 향한 ‘쟁투’로만 파악한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사실상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 자체를 도구적으로만 보는 기만적 인식이 깔려있다. 이러한 인식은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정치를 자멸하게 만드는 자기파괴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홍준표 전 지사가 말하는 자유한국당의 향후 행보에 대한 전망은 이런 우려에 근거를 더한다. 홍준표 전 지사는 20일 당내 초재선 의원들이 주최한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운동권 정부’로 규정했다. 홍준표 전 지사는 또 연말 쯤 되면 국민들이 운동권 정부에 등을 돌릴 것이고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흡수될 것이며 바른정당 역시 상당수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결국 양당구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대선 과정에서 진보 대 보수 구도를 만들면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 것과 사실상 똑같은 얘기다. 문재인 정권에 실망한 시민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든 오로지 보수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구도가 홍준표 전 지사가 기대하는 대로 형성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런데 적어도 진보 대 보수의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큰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새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제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취임 3주년을 앞둔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에 교육정책과 관련한 92개 제안을 내놨다. 이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외고, 자사고 폐지에 관련한 부분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자사고 지정 및 지정취소 시에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게 돼있는 대목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이는 중앙정부로 공을 넘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외고와 자사고 폐지 방침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외고 자사고 폐지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주장하는 사안이다. 당장 외고 자사고 교장들이 대응에 나설 태세이기 때문에 당분간 교육계는 이 문제로 양측이 충돌하는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희연 교육감은 또 친환경무상급식을 고등학교와 사립초등학교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는데, 이는 ‘무상급식’이란 단일 이슈로 치러진 거나 마찬가지였던 2010년 지방선거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최소한 다음 지방선거에서 교육정책을 둘러싼 진보 대 보수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구도는 홍준표 전 지사가 상상하는 ‘운동권 대 보수’의 구도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교육정책에 있어서는 ‘개혁 대 구태’의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주사파 운동권 정부’라는 것은 결국 북한을 소재로 한 이념적 공격을 하겠다는 의미다. 앞으로 자유한국당은 더욱 거친 태도로 ‘종북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런 태도야 말로 ‘구태’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런 기만적 정치에 몰두한 책임을 결국 지게 될 것이다.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정치세력들은 이들과 구별되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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