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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변덕에 매인 동북아, 한국이 중재자로 나서야문정인 논란이 보여준 동아시아 '대화 로드맵'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7.06.19 11:58

정국은 예정된 수순으로 흘러가고 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사퇴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임명 ‘강행’됐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동상이몽’하는 중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동의, 추경, 정부조직법 등 국회 협조가 필요한 문제에서 청와대는 든든한 지지 여론을 바탕으로 결국 밀리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강경화 장관의 임명 강행 논란은 그가 일을 잘하는 걸로 해소할 수 있다. “일 잘하는데 야당은 왜 그랬느냐”라는 소리가 국민의 입에서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강경화 장관이 대응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달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문제다. 인사청문회에서는 다소 전문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 이벤트를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상당한 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의 발언이다. 문정인 특보는 현지시간 1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발사 등 추가 도발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축소를 협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청와대는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학자로서 개인자격의 발언이며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보수’를 내세우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당장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났다. “북한 김정은의 특보냐”는 반응도 나왔다. 보수언론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사드 문제로 한국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멘토’라는 인사가 한미정상회담을 10여일 앞두고 지나친 발언을 여과 없이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일부 보수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력한 공화당 소속 의원들을 만나주지 않았다는 사례까지 보도하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러니 청와대가 문정인 특보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미국을 방문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특보가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제5차 한미대화 행사에서 오찬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의 한미관계는 미국 정치권이 한국 정부를 못 미더워 해서 또는 한국 정부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준다고 해서 훼손되거나 복구되지 않는다. 한미관계의 운명은 당혹스럽게도 오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덕에 달려있다. 6월 말까지 무슨 파열음이 나더라도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중국과 ‘경제전쟁’의 직전가지 갔던 미중관계가 정상회담 이후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상기해보라.

현재 북한과 관련한 미국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에 들어갔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송환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 문제이다. 북한은 오토 웜비어가 식중독에 걸렸다가 수면제를 복용한 후 의식불명의 상태가 됐다고 밝혔으나 미국의 의료진들은 보톨리누스 중독의 근거가 없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상태다. 그런데 이 의료진들은 북한에 의한 가혹행위의 증거 역시 발견해내지 못했다. 외교적으로 보면 애매한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미국 내 여론에 미치는 파장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인을 다치게 한 북한을 혼내줘야 한다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북한 내에 아직 3명의 미국인이 억류돼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또 어떤 피해를 당하기 전에 구해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어찌됐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거나 전쟁을 감수한 군사작전을 펼쳐야 한다. 후자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결국 북미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대화 채널은 유지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청와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지도자 간의 신뢰 제고를 위해 웜비어 문제를 언급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그림이면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수가 있다. 북미 간 ‘인질협상’의 중재자로 한국 정부가 나설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이 이 점에 합의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 상 사드 등 나머지 쟁점도 쉽게 풀릴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서 관건은 과연 한국 정부가 실제로 ‘중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한국이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인데,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대북 강경책을 지속해온 때문에 북한이 남북대화는 거부하고 북미대화를 요구하는 상황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문정인 특보의 발언은 북한을 향한 일종의 ‘사인’으로 읽힐 수 있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도 ‘도발 중지’를 시작으로 하는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미 간의 대화가 어려워지는 이 때에 한국 정부와 통해야 미국과 성공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북한이 인식해야 한다. 청와대는 문정인 특보 발언에 사전 조율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어쨌든 비공식적 차원에서라도 실질적 차원의 ‘대화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한국 정부가 동아시아 정세의 방관자가 아닌 주체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기본 태도이다. 대북문제에 개입할 수단을 한국 정부가 갖추고 주변국들의 조율에 나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미국의 전략자산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한반도에 전개될 필요가 없어진다. 또, 일본이 갖고 있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도 감소할 것이다. 따라서 방식에는 문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문정인 특보가 말하는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의 외교적 ‘모험’을 필요로 하는 일일 수 있다. 모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영구적인 형태로 도출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이런 모험이라도 감행해야 할 만큼 동아시아 정세는 답답한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보수 세력도 허망한 종북 타령만 반복할 게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초당적 협력과 대처가 필요하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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