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는 이색적인 집회가 열렸다. <최저임금 1만원 쟁취!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정책 대전환 촉구!>을 요구하면서 지난 5월 27일부터 6월 14일까지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민주노총 집중농성이 진행중이었는데 그 중 하루를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을 위한 한마당으로 정한 것이었다.

<이주노동자의 삶, 정말 안녕하신가요?>라는 제목으로 열린 한마당은 최근 논란이 되었던 양돈장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사망사건과 장기구금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4~50여명의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함께 참여했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는 밀양 깻잎밭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캠페인과 국민인수위원회에 이주노동자 관련 진정을 접수하였다. 마침 광화문광장에서는 양차선을 통제하고 6개 지자체가 참여하는 <지역축제의 거리>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이주노동자들이 든 피켓을 보고 함께 응원을 하며 서명을 하기도 했다.

캠페인 이후에는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한 팀을 이뤄서 최저임금 멀리뛰기, 몸으로 말해요, 얼음깨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동지애를 다졌다. 몇 년동안 집회와 행진 외에는 이주노동자를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던 다른 한국인 노동자들도 이주노동자들과 준비된 다과를 먹으며 서로 웃음꽃을 활짝 피기도 하였다.

6월 4일 이주노동자 한마당에 참석했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A씨는 평소에 한국인노동자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너무 즐거웠다며 주변 한국인들과 SNS친구를 맺기도 했다. 며칠 이후에 A씨는 회사에 문제가 있어서 노동조합에 상담이 필요하다며 사무실을 찾아왔다.

유창한 한국어실력을 가지고 있는 A씨는 가장 먼저 작은 수첩을 하나 보여줬다. 수첩에는 처음 이 공장에서 일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매일 몇시부터 몇시까지 일을 했는지에 대해 빼곡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잔업수당, 야간수당을 얼마 받아야 하고 실제 받은 임금과 자신이 받아야할 임금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도 따로 기록할 정도로 꼼꼼해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수첩 (사진=박진우)

누가 대신 계산을 해준거냐고 되물어보니 A씨는 웃으면서 방글라데시어로 된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매해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고 한달에 최저월급이 얼마인지를 방글라데시어로 번역한 자료였는데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곧바로 SNS상에 번역이 되어서 공지가 된다는 것이었다.

A씨는 1년 반 넘게 아침7시에 출근해서 저녁 퇴근시간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유리제품을 화학약품 처리하는 공정을 반복해야 했다. 이로 인해 경추의 염좌 및 긴장, 신경뿌리염증을 동반한 경추간판장애 등을 입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무리한 활동시에 통증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때때로 야근도 하면서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고된 노동을 했지만 실제 월급으로 들어온 것은 150만원에서 170만원 사이였다. 같이 일하고 있는 한국인노동자들은 최소200만원에서 300만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아가는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업주의 마음에 따라 고무줄처럼 본인의 잔업수당 금액이 늘었다 줄었다하는걸 보면서 A씨는 문제제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업주에게 제대로 수당을 계산해달라고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건 남들은 알아서 잘 일하는데 넌 왜 자꾸 불만을 가지느냐, 자꾸 그러면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게 하겠다라는 으름장 뿐이었다.

A씨와 함께 온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B씨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B씨는 2월 월급명세서와 통장을 보여주었다. 2월 월급명세서에 찍힌 월급 금액이 5월 달에 입금이 되어있었다. 3월부터 월급은 언제 들어왔는지 되물으니 3월부터 5월까지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무려 3달이나 임금 체불을 한 사업주는 사업장을 바꿔달라는 B씨의 말에 언제 돈을 준다는 이야기도 없이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했다. B씨 역시 계속 월급이 안 나와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회사를 마음대로 나가는 순간 미등록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참고 또 참다가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A씨와 B씨의 사례는 전국적으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다. 이렇게 직접 노동조합이나 관련 단체를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상담을 통해 노동부에 진정을 넣거나 사업주에게 임금체불액을 돌려받기도 하지만 많은 숫자의 이주노동자들이 권리구제 방법을 아예 모르거나 알더라도 참고 일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용허가제와 같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탄압하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몇몇 나쁜 사업주들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결코 임금체불 사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구조적인 모순에 있다.

이주노동조합에서는 이주노동자 당사자의 힘으로 고용허가제와 같은 제도를 바꾸기 위해 매월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순회 집회를 기획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기획으로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숙식비 지침 철회! 이주노동자 수원역 결의대회>를 6월 25일 2시 수원역 롯데리아 광장 앞에서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경기이주공대위 동지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2012년 9,378명 240억여 원, 2013년 9,625명 281억여 원, 2014년 12,021명 339억여 원등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액은 해가 갈수록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은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이주노동자 수원역 결의대회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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