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장관들을 모아놓고 “정권은 유한하나 조국은 영원하다”고 한 말을 되새겨보게 되는 요즘이다. 당시 발언은 “조국은 영원하다”는 부분에 방점이 찍혔지만 최근 정국은 “정권은 유한하다”는 대목을 상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추경 예산 편성을 위한 국회 시정연설 일정을 소화했음에도 장관급 공직자 후보자들에 대한 야권의 태도가 여전히 미적지근하다는 점이 그렇다. 어떤 경우든 정권에 협조할 생각이 없는 자유한국당은 그렇다 쳐도 나머지 정당들까지 이런 태도라면 청와대의 ‘결단’은 불가피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키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의 경우 일정 정도 내부 기류의 변화가 감지되는 측면이 있긴 하다. 13일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TBS라디오와의 전화연결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는 적격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동영 의원은 국민의당 내에 반대 7, 찬성 3 정도의 의견 분포가 존재한다고도 발언했다.

이 발언에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박지원 의원도 이른바 ‘K트리오’(김상조 김이수 강경화) 임명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혀왔다는 점을 더해 보면 국민의당이 극적으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결국 이후 장관 인사에 대한 배려, 추경 예산안 처리 및 정부조직법 개정에서의 입장 반영 등과 엮여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함정’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른바 ‘통치력의 약화’일 것이다. 청와대가 국회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 후보자를 임명하면 “독선과 불통”이라고 할 것이고 일정한 협의를 통해 국민의당을 설득하면 “거래”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지면을 보면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사사건건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13일 지면에도 <장관 발표 때마다 나오는 ‘내로남불’>이란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장관 후보자 낙마를 정치적 성과로 치부하는 야당의 고질병 증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청와대 민정수석은 전 정권 시절 음주 운전 사고를 낸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해 ‘미국 같으면 애초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위장 전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라고 썼다. 이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8월 이철성 경찰청장에 대해 페이스북 등을 통해 비판한 바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공론을 조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언론이 모든 문제를 “똥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의 기준으로만 설명하고 비판하려드는 것은 현대인들을 지적인 정체 상태로 만드는 고질적 문제다. 공직 후보자의 음주운전이 문제라면 그것에 대해 논하면 된다. ‘내로남불’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 의도의 ‘불순함’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판단을 끝내고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고찰을 거부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언론이 이런 프레임을 즐겨 꺼내드는 것은 본인들의 정파성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실제로 음주운전의 경우는 공직 후보자로서 부적격 사유라는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음주운전 이력에 대해 “‘고대 출교 사건’의 해결을 위해 복권 약속을 받아낸 뒤 학생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달래는 과정에서 술을 마셨다”고 해명했으나 과연 이게 적절한 수준의 해명인지는 의문이다. 음주운전 경력이 장관 임명 과정에서 ‘양해’의 대상이 되는 건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급박한 상황 등 극단적인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대엽 후보자 내정은 ‘부적격 인사’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가 없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에 마련된 사무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에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논문표절 거기에 음주운전에 이르기까지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가 주로 우측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소재가 되고 있다면 정책에 관련한 부분은 좌측에서의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가 그렇다. 송영무 후보자의 경우 과거 천안함의 폭침 가능성은 낮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보수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드 배치 등의 문제에 있어서 반대쪽에서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송영무 후보자는 과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지스함에 탑재되는 SM-3, 사드, PAC-3 및 SM-6 등으로 다층방어체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한 바 있다. 이 중 사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후보자 시절부터 반복해서 주장해왔는데, 송영무 후보자의 내정은 그럼에도 결국 사드 배치 자체를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이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배치하는 것보다 연기하는 게 낫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배치를 하는 것으로 결정하면 충돌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드 배치 문제가 끝까지 애매모호한 상태로 유지되더라도 송영무 후보자가 주장하는 SM-3 미사일 도입에서 비슷한 논란은 또 벌어질 수 있다. 사드는 레이더 전파 유해성 논란으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논란이 확대된 측면이 있지만 본질은 ‘미국 중심의 미사일 방어체계(MD) 논란’의 연장선이다. SM-3는 사드보다 더 미국의 MD체계에 가깝다. 실제로 MD체계란 무엇이며 이것이 초래할 외교안보적 문제는 무엇인가와는 관계없이 ‘논란’은 예고돼있다.

최근 보도를 보면 기획예산처 출신들의 승승장구에 대한 ‘모피아 배려’의 차원에서 금융위원장 후보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거론된다고 하는데, 이 역시 해묵은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책임론’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이미 지난 5월 중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의 공직자 임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가 당시 결정이 내려지던 때 주무부처의 실무책임자였다는 것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기용은 또 다른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유사역사학’ 관련 대목이다. ‘소박한 역사인식’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도종환 후보자와는 달리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다소 본격적이다. 물론 금융위원장의 업무는 이런 문제와는 별개이다. 그러나 ‘정치적 불똥’이 도종환 후보자 쪽으로 튈 가능성은 다분하다.

어느 정권이든 초기에는 대개 ‘허니 문’ 기간이 있다. 문재인 정권 역시 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정권을 향한 일부 야권과 보수언론의 악의적 공격이 거듭되고 있으나 국민의 지지가 튼튼한 것이 이 점을 뒷받침 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정권은 유한하기 때문에 ‘허니 문’을 등에 업고 감행한 무리수는 후에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산에 정상까지 오른 후에 남은 것은 내려가는 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이 기간을 이후를 대비한 ‘저축’에 비유하기도 한다. 좌우의 압력이 예정된 상황에서 지나친 정치적 지출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수위 없이 출발한 정권의 한계도 있지만 그럼에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쯤에서 경제적 판단을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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