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국회를 방문해 30여 분 가량의 시정연설을 했다. 이것이 취임 선서 이후 최초 국회 연설, 추경예산에 대한 최초의 시정연설 등의 의미들도 크겠지만 더 큰 의미는 국가 생존에 관한 대통령의 절실한 호소였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평균재산 18억쯤 되는 국회의원님들은 사는데 딱히 곤란할 일이 없지만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당장 일자리를 잃고, 아무 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극단의 문을 열게 된다.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이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깎아내렸다. 애초에 듣기나 했을까? 아마도 듣기도 전에 논평부터 준비했다는 의심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것이 한 달도 되지 않은, 인수위도 없이 일단 숨 가쁘게 시작해야 했던 정부의 발목을 잡아온 야당들의 일관된 자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싫어도 적어도 예산 11조를 쓰겠다는 내용의 연설이라면 좀 들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연설 (사진=KBS 화면 캡처)

대통령의 시정연설 후 눈물을 짓는 청년들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 청년들은 상당히 시니컬하다. 누구에게 쉬 감동받지 않는다. 보통이라면 딱딱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감동은커녕 애초에 관심조차 갖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냉소적 그들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청년들도 더는 정치를 외면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대통령의 일자리 추경예산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된 것이 반가우면서도 문득 서글픈 대목이다. 자존심 센 그들이 이제는 정말 너무도 힘들어서 기댈 누군가를 확인하고 싶은 때문은 아니었을까.

청년 실업율 11.2%. 꿈과 야망을 가지라고 말하기에는 당장 현실에 발 딛고 설 힘조차 없는 그들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쿨한 것이라고 치부하던 그들이 고리타분하게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까지 챙겨듣고 눈물 짓게 된 현실의 팍팍함과 미래의 암담함을 야당 의원님들께서는 좀 알아야만 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듣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깊은 신음을 든는다는 심정이었어야 한다. 그럴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는 청년세대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 담겨 있었다.

구의역 참사 직후 시민들이 사고 현장을 찾아 추모와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포스트잇을 붙였다. (사진=연합뉴스)

소위 보수주의자라는 사람들이 국민 월급 올리는 것에 불만을 표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매년 고소득층의 소득은 늘고, 반대로 저소득층의 소득은 훨씬 더 많이 줄고 있다. 군대에 간 청년들 모두의 부모가 한 달에 용돈을 마음껏 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어쩌면 그 아들이 군대를 가서 당장 끼니가 걱정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OECD 11위 나라인 한국에 여전히 학교 급식이 필요한 이유를 끝까지 이해 못하는 부자라면 역시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당장 군인 월급을 올려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복지며 또 안보의 기초라는 것이다.

야당들은 일제히 공공부문 일자리에 예산을 쓰겠다는 사실에 이구동성 비판을 쏟아냈다. 정말 답답하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말이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은 장기 불황에 들어서 있었다. 그렇지만 기업의 이익은 증가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법인세 등은 인하됐지만 투자 및 고용에 돈을 쓰지 않아 생긴 기형적 이익이었다. 그런데도 일자리 확대를 민간에게만 맡기자는 것은 여전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자는 꼴이다.

인구절벽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나마 옅은 청년층을 잘 지켜내는 것이 국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 없이 안보며, 경제며 무엇 하나 온전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청년을 위한 복지정책은 그대로 안보이며, 경제인 것이다.

가장 먼저 소방관 수를 늘리겠다는 추경예산의 쓰임새에 주목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은 국가가 해야 할 안전의무를 너무도 절실하게 느꼈다.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근본적인 동시에 중요한 것은 재난 속으로 뛰어 들어갈 구조대가 어디에나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방대원 수를 늘리는 것과 그들의 안전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안전한 나라를 위한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복지 공무원, 근로감독관, 경찰, 집배원 등 민생 현장에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인원을 더 확보하는 일은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시민 모두를 안전하게 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을 갖추려는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는데 나라의 안전도 함께 올라간다.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이번 추경심사는 자유한국당 없이 여당과 야3당이 심사에 들어가기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은 당연한 듯 심사에도 불참하고 추경 자체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장관 임용 후 본예산에서 종합적으로 심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장관 임용을 가로막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할 말일까? 웃자는 말로 알아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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