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품에 대한 열기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뜨겁다. 지난 여름 내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의 학력 위조 파문에 이어,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품 구입에 재벌 그룹의 비자금이 사용되었다는 추문이 드러나면서 미술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중섭과 박수근의 위작 사건으로 미술계의 고질적인 문제까지 다시 불거지면서 미술품 경매 시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이라도 한 듯, '시즌제 드라마'를 표방하고 미술품과 경매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MBC 시즌드라마 <옥션 하우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 MBC 시즌드라마 <옥션 하우스> ⓒMBC
<옥션 하우스>가 남다른 이유는 이 같은 시의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시의성 짙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밤 11시 40분이라는 사각지대에 편성된 이유가 결정적이겠지만, <옥션 하우스>의 시청률은 영 신통치 않다. 하지만 어차피 그 시간대에 편성한 것은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만큼 시청률은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의 다양성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시청률인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옥션 하우스>가 유달리 남달라 보이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작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옥션 하우스>는 4명의 작가와 연출이 함께 공동 작업을 해서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각 3회씩 담당하여 제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개성의 작가와 연출이 한 팀을 이뤄 작업하는 만큼 드라마의 통일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하나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색깔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물론 공동 제작 방식이 <옥션 하우스>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여러 명의 작가와 연출자가 모여 공동으로 제작하는 방식은 이미 지난 2005년 봄에 방송된 MBC 주말연속극 <떨리는 가슴>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다.

<옥션 하우스>는 '시즌제 드라마'를 표방한 공동 제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예술과 인간의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경매장의 예술 작품 거래를 주관하는 경매사들의 이야기는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드라마 속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윌 옥션'은 뉴욕의 '소더니', 런던의 '크리스티'에 버금가는 미술품 경매회사이다. '윌 옥션'의 신입사원 '차연수(윤소이 분)'와 미술품 전 분야에 걸친 스페셜리스트 '오윤재(정찬 분)', 좋은 작품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냉철한 경매사 '민서린(김혜리 분)', 보석과 엔티크 스페셜리스트 '정나경(김민선 분)', 고미술과 와인 스페셜리스트 '나도영(정성운)'이 펼쳐가는 미술품 경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굳이 미술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매 회 완결되는 이야기 구조 역시 <옥션 하우스>의 매력이다.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5명의 주인공들이 펼쳐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렇게 제공된 정보는 다음 회에서 그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 정보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이해하는 단초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제3화 '해바라기'는 차연수가 위작화가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민서린이 윌 옥션의 신뢰도 문제를 제기하며 차연수에게 회사를 나가라고 요구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차연수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끝내 고객의 신뢰를 얻는 에피소드를 다룬 3화의 내용은 미술계의 위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제4화 '비밀과 거짓말'에서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처럼 각 등장인물을 구심점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엮여 있는 극적 구조는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극적 구조의 단조로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 MBC 시즌드라마 <옥션 하우스> ⓒMBC
11월 25일 방송된 제9화 '언더비터의 가을' 역시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색다른 극적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단막 드라마와 연속 드라마의 중간적 형태를 취하면서 드라마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획득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5명의 경매사들의 서로 다른 상황을 '따로 또 같이' 보여주는 방식의 극적 구조는 각 인물들의 입장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부모 잘 만나 어려운 것 없이 미술을 전공한 '정나경'과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 고객에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차연수'가 한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로 뒤틀린 '민서린'과 '오윤재'의 대립,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촉망받는 미술학도에서 미술품 경매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나도영'의 아픔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하나의 상황을 각 인물의 입장에서 상반되게 보여준 극적 구조의 참신함은 기존 드라마의 관습적인 구조와 비교되면서 적잖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예술'과 '자본'의 대립 구도에서 비롯한 긴장감, 그리고 고가 미술품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21세기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한 미술품에 대한 사회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옥션 하우스>는 분명히 주목할 만한 드라마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여러 명의 작가와 연출자가 공동 작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각 등장인물의 성격에 균열을 일으키고, 미술품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꺼리에 극적 긴장감을 일으키기 위해 추리물과 스릴러물의 형식을 남발하는 것은 <옥션 하우스>의 제작진이 극복해야 할 문제다. 그래야만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문제화된 '미술품'과 '경매시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로 <옥션 하우스>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일요일 밤 늦은 시간, 월요일 아침을 걱정하면서 <옥션 하우스>를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이라는 작품을 경매 시장에 출품한다면 과연 얼마나 호가할 수 있을까? <옥션 하우스>에 위탁하면 알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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